명절이 되니 부모님이 보고싶다

2016.02.07 00:36:00

부모님이 안 계신 설 명절, 조용하기만 한데...

설 명절을 앞두고 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장을 보았다. ‘명절이 한 때’라는 말이 있다. 주차장은 자가용으로 꽉 찼고 매장은 사람들로 붐빈다. 발 디딜 틈이 없다. 아내의 정보기를 보조하는 남편들이 주로 카트를 밀고 다니는데 길이 막혀 이산가족이 생길 정도다. 그 만치 설 명절 쇠기 위해 장보러 나온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장보기를 마치고 장바구니를 드니 무게가 가볍다. 물가가 올라서 그런가? 아내에게 받은 영수증을 살펴보았다. 15종을 샀는데 무려 7만원이 넘는다. 제법 가격이 나가는 갈치 두 마리에 1만6천원, 한우 다짐육이 1만 2천원이다. 나머지는 나물류이다. 이것으로 올해 설을 나려는 것이다. 딸이 인턴으로 취직하여 대표이사가 선물로 보낸 정육세트가 있긴 하지만.

햇수를 헤아려보니 부모님 모두 돌아가신지 19년째이다. 아버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님이 필자 결혼 후 7년만에 돌아 가셨다. 돌이켜 보니 어머님이 살아 계실 때 명절이 행복했다. 가족을 이룬 자식들이 손주들을 데리고 모두 어머니 집에 집합하니 그야말로 명절 분위기다. 어머님 혼자서 미리미리 음식 준비를 다 하셨던 것이다. 자식들은 그냥 몸만 와서 먹고 가면 되는 것이니 그리 부담이 되지 않는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명절, 집안이 조용하다 못해 쓸쓸하기만 하다. 핵가족이다 보니, 성장한 자식이 따로 떨어져 살다보니 명절이나 평일이나 그게 그거다. 설날엔 떡국, 추석 땐 송편 먹는 것이 고작이다. 조상들의 전통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가다간 우리 자식 대에선 명절 음식기 끊기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생각해 보니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명절의 특징이 몇 개 있다.


첫째, 자식들이 모이지 않는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에는 가족 모임에 구심점이 있었다. 부모님이 구심점 역할을 하였고 모이는 장소는 당연히 부모님 집이었다. 명절에만 모이지 않았다. 자주 오는 자식은 매주 왔고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어머니 얼굴을 대했다. 귀하거나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어머니께 드리려고 달려가기도 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선, 작은 형을 중심으로 모였다. 큰형이 부산에 살고 있어서 수도권에 살고 있는 자식들끼리만 모였던 것이다. 그렇게 몇 번 모이다 보니 작은 형수에게 부담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집, 막내 여동생이 자진하여 가족 모임을 주선하였다. 바쁜 직장 생활 중에도 음식을 장만하여 구심점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오래 가진 못하였다. 몇 년 전에 이것마저 끊기고 말았다.

둘째, 삼촌, 고모, 큰아버지, 큰엄마 등 명칭이 사라졌다. 부모님을 중심으로 자식이 모일 때는 자연히 조카들도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3대가 모이니 그 인원만도 꽤 된다. 작은형네 가족 4명, 누나, 우리집 4명, 여동생 가족 4명, 막내 여동생 가족 4명 모두 18명이다. 식사할 때 커다란 교자상 두 개를 펼쳐야 한다.

3대가 모이니 화제거리도 풍부하다. 학교 선생님만 모두 7명이니 어른들은 주로 교육 이야기, 학교 이야기를 나누었다. 손자들은 한창 자라는 나이라 학업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조카들의 초․중․고 학년과 나이도 익히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내 자식만 아는 정도다. 친척 간에 관계가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이다.

셋째, 형제 자매 간에 오가는 정이 희미해져 간다. 그 전에는 명절 때 모이면 형과 누나, 동생들에게 나누어 줄 것을 준비했다. 지금도 여동생은 시골에서 가져 온 농산물을 오빠에게 준다. 필자도 추수하고 탈곡이 끝나면 적은 양이긴 하지만 그 해 햅쌀을 동생들에게 나누어 준다. 이런 것이 우애를 쌓아가는 것이다.

지금도 형제 자매간 오가는 것이 있지만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에 비하면 그 빈도가 낮다. 자식들간에도 자주 만나질 않으니 정이 멀어져 가는 것이다. ‘안 보면 멀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한 가지에 태어났어도 교류가 없으면 남과 같은 것이다. 가까워지려면 자주 만나야 정이 붙고 오가는 정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지난 달, 장인 어른이 돌아가셨다. 장모님은 요양병원에 계신다. 두 분이 살아 계실 때는 처남, 처제, 조카들과 자주 만났다. 자연히 처가 식구들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 이제 아이들 외가쪽도 구심점이 사라진 것이다. 설 명절을 맞이해도 모일 장소가 마땅하지 않다. 핵가족 시대의 단촐한 명절, 받아 들여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오늘 붐비는 시장을 보며 명절이면 친척들로 붐비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부모님이 보고 싶어진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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