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은 보람을 먹고 산다

2016.02.29 13:06:00

퇴임식을 찾아 온 39년 전 제자를 보며

필자는 지난 2월 하순, 교직 39년을 마감하는 명예퇴임식을 하였다. 경기도 교육계에서 초등교사를 출발으로 중학교 교사, 장학사, 교감, 교장, 도교육청 장학관, 교육지원청 과장을 역임하고 일선학교 원로교사로서 퇴임을 하였다. 5년의 정년을 앞두고 있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 퇴임을 자청한 것이다.

이 퇴임식장에 뜻 깊은 손님이 방문하였다. 과연 이 사람은 누구일까? 김전일, 바로 39년 전 초임학교 제자인 것이다. 1977년 대지초교에서 담임을 하였던 학생이다. 지금은 나이 49세로 어엿한 사업가이다. 다른 제자들은 직장이 있어 함께 오지 못하였다고 사정을 전한다.

이 제자. 학교 측의 배려로 필자와 함께 나란히 앉았다. 제자는 퇴임식에서 좌석만 지키지 않고 퇴임식의 주요 장면을 스마트폰에 담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기록 사진을 남긴 것이다. 왜? 바로 스승에게 전해주려는 것이다. 퇴임식장에 나 것만도 고마운데 알아서 움직이니 이보다 더 고마울 데가 어디 있는가? 과연 내 제자 답다!


퇴임식이 끝나고 학교 친목회에서 준비한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고 하니 사양한다. 사업 상 일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신 작은 선물을 전해준다. 퇴임식장에서 전해 준 화환은 최○○, 백화점 상품권은 재작년 결혼한 공무원인 이○○ 이라고 출처를 밝힌다. 본인이 하고 있는 건강식품도 건네준다.

제자의 결혼식은 바로 재작년 일이다. 교직생활 30년이 넘도록 제자 주례 한 번 보지 못한 것을 알고 있는 제자다. 초등학교에서는 6학년, 중고등학교에서는 졸업학년인 3학년을 담임하면서 인생의 멘토가 되어야 하는데 필자는 그러하질 못하였다. 초등학교에서는 6학년 담임을 단 2회, 중학교에서도 2회밖에 하지 못하였다. 야간대학에 다니고 학교신문을 매월 제작하다 보니까 학년 배정이 그렇게 된 것이다. 그 사정을 알고 있는 제자가 친구의 만혼을 맞아 스승의 체면을 살려준 것이다.

이 제자들과의 인연도 깊다. 6학급의 시골학교에서 3년간 담임을 하였다. 3학년부터 5학년까지 중임을 하였다. 교육대학을 갓 졸업하고 세상물정을 모르는 철부지 교사였는데 이들이 올바른 교사의 길을 안내해 준 것이다. 때로는 무리한 요구도 들어주고 학부모들의 사랑과 정성으로 철이 들도록 하였던 것이다. 초임교에서 3년간 근무하면서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교직 30년. 이들은 그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초임지의 인근 식당에서 세 명의 제자가 동부인하여 우리 부부에게 큰 절을 올린다. 커다란 축하 꽃바구니도 전달한다. 부족한 스승에 훌륭한 제자들을 만났다. 이 뿐 아니다. 필자가 제6회 한국교육대상을 수상하였을 때도 이들을 맞았다. EBS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주인공으로 촐연했을 때에도 이들과 초임지를 찾았고 함께 출연했다.

김전일 제자의 학창시절 모습은 어떠했을까? 한마디로 언행이 올바른 모범생이었다. 학급 반장을 도맡아 하고 친구들에게는 리더였다. 하루는 필자가 출근은 하였는데 몸 상태가 안 좋아 수업을 할 수 없게 되자 2km 떨어진 약방으로 달려가 용돈으로 약을 사온 적도 있었다. 전일이 할머니께서는 따끈한 찐고구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삶은 옥수수를 교직원에게 제공하여 따듯한 시골인심을 알려주셨다.

스승은 가르침의 보람을 먹고 산다. 교육이 즐거웠기에 초임지에서 여자배구부를 창단하고 여름철 토요일 오후에는 제자들과 천렵을 나갔었다. 조를 편성해 천렵국을 끓여 먹었던 것이다. 이들이 출전한 용인군 체육대회에서는 영예의 입장상을 받았다. 학교 인근 야산에 산불을 발견하고는 공부하다 말고 산불진화도 했었다. 가을 운동회 때에는 마을 대항으로 하여 온 동네 축제를 만들었다. 남교사가 적어 3일에 한 번 숙직을 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다.

제자들이 있기에 스승은 행복하다. 나의 가르침으로 학생들이 훌륭하게 성장한다면 이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보수나 사회적 지위만을 생각하고 교직에 임하였다면 진작 교직을 떠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교직만큼 위대한 직업도 없다. 날마다 위대한 인물을 키우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부교원인 필자는 아내에게 말한다.

“여보! 의사는 아픈 사람을 상대하고 검사는 범인들을 상대하고 변호사는 억울한 사람을 대하지. 우리들은 꿈과 희망이 창창한 푸른 새싹을 상대하니 얼마나 좋아! 제자들을 대하며 항상 젊게 살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이 있을까?"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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