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를 보면 인간은 오래전부터 무엇인가를 기록으로 남긴 흔적을 볼 수 있다. 그 흔적은 동,서 역사를 막론하고 많다. 다양한 재료들을 이용하여 기록한 것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이후 EU의 향방에 세계인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언어, 문화, 역사로 나뉜 유럽 대륙 국가들이 공동의 경제연합을 결성하려는 노력은 사실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놀랍게도 유럽경제공동체(EEC)를 만든 로마조약(Treaty ofRome)은 백지문서였다. 1956년 6월 벨기에 브뤼셀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 6개국이 모였고 9개월 동안 비밀작업을 거친 끝에 비준을 서둘렀다. 하지만 청소원들이 실수로 조인식에 사용될 용지와 등사지를 모두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래서 주최자들은 부랴부랴 조약문서 대신 국가수반들이 서명할 수 있게 백지를 준비했고, 취재진의 접근을 막았다. 2007년에 이 백지문서가 마침내 폭로됐다.
기록의 역사는 매우 오래전부터 있었다. 1901년 프랑스의 한 고고학자가 오늘날 이란의 후제스탄 주에서 회색 현무암으로 된 높이 2.25m의 비석을 발견한다. 이 비석의 상부에는 국가를 통치하는 함무라비 왕이 왕좌에 앉아 법과 정의와 구원을 관장하는 메소포타미아의 신 샤마시를 맞이하는 듯한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비석 양편에 긴 글이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기원전 1754년께 만들어진 세계 최고(最古)의 성문법 함무라비법전이다. 282개의 법 조항 가운데 절반가량이 채무와 다른 사업상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고, 나머지 3분의 1은 가정사에 관한 문제들을 다룬다. 많은 조항들이 법의 지배 아래 정의 실현을 향한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1215년 작성된 마그나카르타(자유의 대헌장)는 군주의 권력을 제한하고 자유민에게 부여된 일정한 자유를 보장한 최초의 문서로서 잉글랜드 만민법의 토대로 여겨진다. 이 헌장은 잉글랜드와 그 너머에서 일정 기간 지속되며 헌법의 지배를 이끌어낸 역사적 과정의 시작이었으며 대의제 정부, 만민법, 재판권 같은 기본적인 보호책을 등장시켰다. 현존하는 마그나카르타 사본 네 개 중 두 개는 런던의 영국도서관에 소장돼 있고, 하나는 솔즈베리대성당, 나머지 하나는 링컨성당에 소장돼 있다.
노예제 문제는 건국 이래 줄곧 미국을 괴롭혀왔다. 그럼에도 미국은 이 문제를 회피하며 각 주가 결정하도록 미뤄뒀지만, 남북전쟁은 사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1863년 1월 1일까지 “노예로 억류되었던 모든 사람들은 자유로우며 지금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선언하는 최후통첩을 하기로 결정했다. 노예해방선언은 노예제를 단번에 종식하지 못했지만 남북전쟁의 양상을 바꿔놓았다. 거의 20만 명의 흑인 병사가 자유를 위해 싸웠다. 노예제의 최종적인 폐지를 알린 미국의 가장 중요한 문서 가운데 하나인 이 선언문 원본은 워싱턴 D.C. 소재 미국국립기록관에 보관돼 있다.
역사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서술 방식이 달라진다.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잘못된 역사는 정의롭지 못한 주체에 의해 생산되고 확대돼 이용될 수 있다. 하지만 문서는 어떤 역사서보다 엄정한 사실을 전달하고, 스스로 역사가 되기도 한다. 오늘 우리가 사는 삶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입시에 반영되는 생활기록부도 예외는 아니다. 한편, 개인의 기록이 진실여부를 떠나서 자서전이라는 이름으로 남는다. 왕조, 국가에 따라 역사를 기록하는 기관을 설치하녀 나름 기록한 것을 후대들은 그 나라의 역사로 배우면서 해석을 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사는 삶이 거의 기록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부끄럼없이 기록되는 삶을 남기는 것이 우리 개인에게 남겨진 과제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