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통일리더캠프(국외) 참가기(1)

2016.07.27 09:16:00

“안중근, 윤동주 정신 우리가 이어 받을래요”

지난 주 5박6일간 중국을 다녀왔다. 통일부 통일교육원이 주관하는 대학생 통일리더캠프(국내) 참가 후 국외연수에 선발되는 영광을 안은 것이다. A팀 78명은 연길-하얼빈-대련 코스로, B팀 70명은 대련-하얼빈-연길 코스로 돌았다. 여기에 참가한 대학생은 국내 캠프 참가자, 모의국무회의, 예비교사반(교육대학생), 대학생 기자단, 온라인 소감문, 기타 추천자들로 구성되었다.

중국 방문, 이번이 다섯 번째다. 교감, 교장, 장학관, 원로교사 때 각각 중국을 방문하였다. 이 중 3회는 보훈처 보훈교육연구원 주관 국외독립운동 사적지 탐방이고 2014년 장학관과 올해 대학생 자격으로 방문한 것은 통일부 통일교육원 주관 통일리더캠프다. 전국 각 대학에서 모인 대학생 150명 중 내가 최고로 나이가 많다.

중국 방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6년 첫 번째로 백두산 천지에 올랐을 때이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지는 안개에 가려져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소원’ 합창이 울려퍼질 때 신비한 천지의 모습이 잠깐 드러났던 것이다. 2014 캠프에서는 통일 담당 장학관 자격으로 참가하였는데 두만강 접경에서 중국 군인의 제지를 받아 잠시 검문이 있었는데 그는 카메라에 담긴 북한의 모습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였다.

올해 참가한 캠프는 사드(THAAD) 배치로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사이가 좋지 않아 북중접경지역 대신 중국 내륙을 답사 코스로 잡았다. 아무래도 접경지역에서는 북한에 의한 참가자들의 신분의 위험 요소가 잇기 때문에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코스에 고구려 역사 유적을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출발 전일, 통일교육원에서는 참가자를 대상으로 사전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서덕철 학교통일교육과장은 이번 캠프가 통일에 대해 공부하는 좋은 기회라면 건강과 안전 관리에 신경 쓸 것을 당부하였다. 통일교육원 김진환 교수는 ‘통일, 왜 해야 할까요?’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였는데 “우리에게는 안중근(1879.9.2∼1910.3.26), 윤동주(1907.12.30∼1945.2.16)의 영혼이 함께 하고 있다”며 그들의 정신을 우리가 이어받자고 강조하였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우리는 연길공항에 도착하여 첫 방문지로 용정시 남쪽에 있는 명동촌(明東村) 윤동주 생가를 찾았다. 입구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天, 風, 星, 詩라는 네 글자는 윤동주가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인임을 알려주고 있다. 1900년경 윤동주의 조부 윤하연이 지은 기와집인데 윤동주가 사용하던 방에는 커다란 꽃바구니와 ‘윤동주 서거 71주기 추모’ 종이 현수막이 붙어 있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입구부터 앞마당에는 윤동주의 시비가 세워져 있어 그의 시를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




윤동주는 식민지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이다. 항일운동의 혐의를 받고 1945년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유고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품으로는 <서시>, <별 헤는 밤> 등이 있고 <자화상>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등장한다. 명동촌 송길련 촌장은 옛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그 당시 명동학교 공부에서 송몽교, 윤동주, 문익환이 선의의 경쟁자였다고 알려준다.

다음으로 우리가 찾은 곳은 대성중학교. 교명 아래에 붙은 ‘용정시 청소년 애국주의 교육기저’라는 글씨는 이 곳이 어떤 학교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즉, 일제강정기 때 민족교육의 산실로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를 배출한 곳이다. 지금은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용정시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의 중등 교육은 바로 옆에 있는 용정중학교에서 맡고 있다. 현지 가이드 말에 의하면 용정시 인구의 60%가 우리 민족이라고 한다.

이어서 우리가 찾은 곳은 비암산 일송정(一松亭). 우리 가곡 선구자에 나오는 곳이다. 목재 계단을 밟으며 처음으로 올랐다. 정상에는 정자 모양처럼 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일제강점기 우리 독립투사들이 이 곳에 모여 독립의지를 다지던 곳이다. 일제가 이것을 막으려고 사격장으로 활용했고 소나무를 여러 차례 고사시켰지먄 우리 조상들은 새 소나무를 옮겨 심으며 독립운동의 지조와 절개를 지켰던 것이다. 우리 탐방단은 조별로 단체 점프샷을 찍으며 이곳에서의 기록사진을 남겼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