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안중근 기념관 시계는 오전 9시 30분

2016.07.28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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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2일차, 하얼빈역 기념관의 안중근 의사를 뵙는 날이다. 연길서(延吉西)역에서 고속철을 타고 하얼빈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여기는 땅이 워낙 넓어서 3∼4 시간 이동은 기본이다. 1∼2시간은 옆동네 잠깐 가는 것이고. 하얼빈까지 4시간이 소요된다. 시속 200km로 계산하면 대충 거리가 나온다.

차창을 통해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일까? 바로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이다. 가끔 논이 잠깐 보이긴 했지만 밭농사의 주작물은 옥수수다. 똑같은 옥수수 같지만 맨위 수술을 보면 품종이 다르다. 그런데 줄맞추어 심은 옥수수의 키는 일정하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것을 전부 사람이 직접 파종했다는 것이다. 와, 그 노동력? 허리가 한참 구부려졌겠다. 영농 기계화가 필요한 순간이다.

거사장소에 가까워지니 왠지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마치 내가 그 날의 안중근 의사가 된 것 같다. 이 하얼빈역, 두 차례 온 적이 있다. 한 번은 개찰하여 거사장소 표식가지 보았다. 한 번은 우리 국회의원 발언으로 한중 관계가 안 좋아 역 밖에서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말았다. 이번엔 안 의사 기념관에 들어가 대형 유리를 통해 거사정소를 자세히 볼 수 있다.




이 기념관에는 안 의사의 하얼빈 11일간의 행적, 체포 장면, 여순 감옥에서의 생활, 붓글씨 작품 등이 남아 있다. 그 당시 상황을 재연한 동영상도 보았다. 방문객들이 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안중근, 이등박문 격살 발생지’ 확인이다. 억대의 인구 중국인이 미처 해내지 못한 것을 안중근이 해낸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우리나라 30대 청년이 일본 총리를 저격한 사건이니 세계사에 남을 일이다.

이 기념관에서 잊지 못할 일 하나가 만들어졌다. 우리 A팀 8조의 동영상 촬영이다. 내가 이등박문 역할을 맡아 안 의사에게 저격을 당해 쓰러지는 장면이다. 한 번은 카메라 NG로 2회 촬영을 하였다. 쓰러지는 장면을 실감나게 하려다 보니 왼쪽 무릎에 작은 찰과상을 입었다. 안 의사는 러시아 헌병을 헤치고 10보 전방 45도 각도에서 이등박문의 가슴에 한 발, 배에 두 발을 정확히 맞추었던 것이다. 1909년 10월 29일 오전 9시 30분. 동양평화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기념관 시계는 거사 시각에 멈춰 있다.

현지 김교옥 가이드는 작년에 만들어진 이 기념관의 배경을 이야기 한다. 우리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총리의 유대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말한다. 국제관계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기도 한다. 중국하면 6.25 당시 중공군의 개입이 떠올라 우리의 적이지만 오늘날은 G2로 부상하였다. 적으로만 대할 수도 없고 우리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국제 관계의 현실이다.




제3일 오후, 일제의 만행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본 731부대 유적지를 방문했다. 건물이 검은색이라 분위기가 어둡다. 일본은 2차대전에서 왜 세균부대를 청설했을까? 사람을 죽이는데 비용은 적게 들이고 대량 학살을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비인도적인 국가적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3천 여명을 대상으로 1000여 가지 세균 및 생체 실험을 했다고 하고 그 흔적을 없애려 150여 명의 마루타를 처형했으니 인류가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731부대장 ‘이시 이시로’. 그도 자기가 저지르고 있는 엄청난 죄를 알았는지 본명을 숨기고 가짜 장례식도 치뤘다고 한다. 이 부대의 만행, 쥐를 기르면서 페스트를 퍼뜨리려 하였고 소, 말, 양, 원숭이, 낙타를 사육하면서 인간과 비교 실험을 하였다. 예컨대 말의 피를 인간에게 주입하고 인간의 피를 말에게 주입하는 실험을 하였다. 일본이 진정으로 반성하려면 중국이 자료를 수집하고 전시하게 할 것이 아니라 만행의 감추어진 자료를 솔직히 꺼내 놓고 인류에게 사죄를 해야 할 것이다.

오후엔 소피아 성당을 관람했다. 러시아 건축 양식을 받은 하얼빈의 대표적인 건축물인데 안에 들어가 보니 지금은 성당이 아니라 사진 전시장이다. 바로 하얼빈의 과거 중요 역사와 문화가 흑백사진 수백 점으로 남겨져 전시되고 있었다. 중국 하얼빈의 영욕의 역사가 전시되고 있는데 무더위 속에서도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기록 사진으로 소피아 성당 내부 모습으로 천장, 그림, 입구 등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래도 시간의 여유가 있어 성당 밖의 동서남북에서 성당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소피아 성당은 두 번 째 방문인데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지 모른다. 그러니 기록을 충실히 남기는 것이다. 이게 여행자 리포터의 사명이고 의무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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