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텃밭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2016.07.29 16:37:00

나는 올해 수원시로부터 일월공원 텃밭을 분양 받았다. 그 면적은 그리 크지 않다. 이 작은 텃밭이 나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매일 방문하여 자라는 농작물을 바라보고 관찰하고 가꾸면서 삶을 가다듬는 것이다. 텃밭은 노동의 공간이 아니라 치유의 공간이 되고 있다.

텃밭에는 고추 10그루, 방울토마토 5그루, 가지 3그루, 옥수수 6그루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얼마 전에는 텃밭 가장자리에 들깨 모종 10여개를 심었다. 어린 아이들 장난 같은 텃밭 가꾸기가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여기서 수확하는 농작물은 우리 집 식구가 먹고도 남는다. 수확물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

어제도 텃밭에서 한 시간 이상을 보냈다. 거기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크게 하는 일은 없다. 쪼그리고 앉아 잡초 제거가 주된 일이고 작물을 관찰하는 것이다. 가뭄 때에는 조리에 물을 떠다가 땅이 흠뻑 젖도록 물을 주기도 한다. 가지 잎이 벌레의 침입을 받아 구멍이 났을 때에는 새벽에 기습 방문하여 벌레를 제거하기도 하였다.




내가 공원텃밭을 자주 찾는 이유는 농작물 가꾸고 수확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텃밭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텃밭은 자연의 순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고 자연은 나에게 ‘이렇게 인생을 살아라’하고 무언의 암시를 준다. 농사를 짓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이다.

어제는 양념장에 찍어 먹을 고추를 따면서 보통 때와 느낌이 달랐다. 얼마 전까지는 고추를 딸 때는 고추 끝을 살짝 들면 ‘톡’하고 꼭지가 떨어진다. 그 소리와 촉감은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한 번에 20여개를 딴다. 그러나 이제는 그게 되지 않는다. 그 촉감을 받을 수 없다. 고추는 주인에게 알려 준다. “이제 그만 따 드세요. 저도 열매를 맺으면서 후손 씨를 만들어야 해요” 아, 그렇구나! 고추열매 껍질이 두꺼워지고 아삭한 느낌이 사라지고 말았다.

작은 고추 나무 하나하나가 바로 ‘때(시기)’를 알고 있는 것이다. 농작물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사계절의 흐름을 꿰뚫고 있다. 언제 줄기를 뻗어 잎을 매달리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지. 언제까지 아삭 고추를 맺다가 언제부터 붉은 고추 매달 준비를 해야 하는지. 지금이 7월인지, 8월인지 그들은 알고 있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도 떠나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그 자리에 더 머무르려고 한다. 그러다가 때로는 커다란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떠나야 할 때 떠나는 이의 모습은 아름답다. 박수 받을 때 떠나라는 말도 있다. 나설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사람은 삶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다. 자기 분수를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 자신을 잘 모른다. 그래서 어느 철학자는 ‘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것이다.

텃밭은 ‘더불어 사는 삶’을 가르쳐 준다. 텃밭에는 내가 심은 농작물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잡초도 자라고 어린 단풍나무도 자란다. 가지나무에는 무당벌레가 날아와 앉고 옥수수잎에는 이름 모를 나방이 앉아 쉬고 있다. 방울토마토에는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먹이를 기다리고 있다. 발갛게 익은 토마토에 구멍을 내고 살아가는 벌레도 있다. 아, 내가 심었다고 모두 내 것이 아닌 것이다.

이곳에서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 추수한 것을 모두 자기가 갖는 사람은 별로 없다. 수확물을 이웃과 함께 한다. 어느 보호사는 독거노인에게 음식을 만들어 제공한다. 우리 이웃집은 얼마 전 나에게 감자, 옥수수, 파, 늙은 오이를 건넨다. 농사를 조그맣게 지었다는 것이다. ‘아, 땅을 가꾸는 사람들은 흙이 가르쳐 주는 섭리를 아는구나!’ 혼자 중얼거려본 말이다.

텃밭은 정직하다. 주인이 가꾼 만치, 정성을 쏟은 만큼 보답한다. 땅에 퇴비를 주지 않은 밭의 농작물은 벌써 생을 마감했다. 투자하지 않고 좋은 결과만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준다. 주인의 발걸음이 끊어진 텃밭은 잡초가 농작물을 덮어 보기에도 흉하다. 가까이 있는 공원텃밭을 방문해 보라고 독자들에게 권유하고 싶다. 공원텃밭에서 삶을 배운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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