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타전되는 국제 뉴스에서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이 급박한 정세의 한복판에 있음을 느낀다. 얼마전까지 중동이었다면 지금은 한반도이다.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분수령에 서 있다.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120년 전 개화기는 우리에게 큰 분수령이었다. 융성과 쇠퇴의 두 갈래에서 스스로 후자의 길을 선택했다. 바다 건너 열강의 신문명에 무지했기 때문이다. `제 생활에만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모든 세상 일에 무관심한`이란 말이 가슴을 섬뜩하게 한다. 과거와 달리 중국은 팽창하며, 일본은 부흥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의 핵실험은 열강의 군화가 한반도를 밟게 할 명분까지 주고 있다. 이를 생각하면 소름 끼치는 국제정세의 구도다. 역사의 되풀이를 막으려면 안테나를 세우고 열강의 움직임을 경계해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는 단재의 절규는 역사란 지난 과거가 아니라 다가올 미래의 준비라는 가르침이리라. 일제가 군함과 전투기를 생산해 동북아를 침탈하고 러시아가 9288㎞의 철도를 건설해 극동으로 진출할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일본이 화혼양재를 외치며 산업화에 매진할 때, 조선은 위정척사를 부르짖으며 과거로 회귀하지 않았던가? 산업혁명이라는 인류 문명사적 대변혁기에 미래를 알지 못한 민족에게는 설 땅이 허락되지 않았다. 조선은 역사를 잊은 것이 아니라 미래를 버렸을 따름이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중일 양국은 우릴 침략하고 수탈했던 국가다. 이 둘이 국민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유능한 지도자에 의해 각각 10년짜리 국가 대개조를 이뤄가고 있다. 지금 주목할 점은 앞으로 10년 동북아를 이끌 각국 리더십의 지배구조다. 반면 1년여 남은 한국은 정권 말 현상이 완연하다. 권력 주변은 낙하산을 뿌리며 레임덕을 자초하고 있다. `국가 개조`는 언감생심이다. 다른 나라들이 `곧 바뀔 정권`이라고 인식하는 한 외교도 더 이상 의미를 찾지 못한다.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한 몸 보신에만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우리는 80년 전 춘원 이광수가 자전적 소설 `그의 자서전`에 쓴 글의 의미를 다시 보고 깨달아야 한다. "조부나 아버지나 삼촌이나 다 아무짝에 쓸데없는 인물들이었다. 조상의 유업을 받아가지고 놀고먹는 그리고 가난해져서 쩔쩔매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다만 제 생활에만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모든 세상 일에 무관심한 사람들이었다. 자손이 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할 수 없다." 개항 직후인 1892년 태어난 춘원은 열 살 때 부모를 여의고 다섯 살, 두 살 누이와 세상에 남겨졌다. 사랑했던 막내 누이는 종처럼 팔려가서 죽었다. 열강의 군화에 조선이 짓밟히던 시대였다. 그는 젊을 적 신문사 기자로 일할 때도 조부 세대의 무능에 조선이 쇠락했음을 통탄하는 사설을 썼는데 이 글이 나의 가슴에 와닿는 것이 우연은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