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맨스의 딴 나라 이야기 '불야성'

2017.01.30 11:56:12

지난 해 11월 19일 배우 유아인과 이준이 광화문 촛불시위에 참여했다. 1주 전 이미 100만 명 넘는 시민이 참여한 촛불시위는 이후 규모가 계속 커졌다. 190만, 232만 명이 되더니 마침내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이루어냈다.

대통령 직무정지를 불러온 최순실 정국이 온나라를 요동치게 하던 그 무렵, 그러니까 2016년 11월 21일 MBC월화특별기획 ‘불야성’이 방송을 시작했다. 수상한 시절인지라 정경유착이니 비선실세가 등장하고, 돈을 탐하는 욕망이 두 여배우 이요원(서이경 역)과 유이(이세진 역)의 워맨스로 펼쳐질 ‘불야성’도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웬걸 첫 회 6.6%(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한 시청률은 2회에서 7.2%로 반짝 상승했을 뿐 20부작 내내 4%대에 머물렀다. 새해 들어서는 3%대로 하락하더니 1월 24일 마지막회 시청률은 4.3%를 기록했다. 오히려 조기 종영되지 않고 20회까지 완주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의 저조한 시청률이다.

그러고 보면 아직 워맨스는 시기상조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워맨스는 우먼(women)과 로맨스(romance)의 합성어다. 매우 애틋한 감정으로 친밀하게 지내는 여자끼리의 관계를 뜻하는 말이다. 레즈비언과 다른 것은 성적(性的)인 관계가 배제된다는 점이다. 영화처럼 이른바 ‘여여케미’는 TV에서도 먹히지 않는게 확인된 ‘불야성’인 셈이다.

내가 보기에 ‘불야성’의 실패는 워맨스보다 잘못 잡은 방향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경은 88서울올림픽을 함께 성공시킨 세 사람 중 두 명으로부터 배신당한 서봉수(최일화)의 딸이다. 일본에 살던 이경이 한국으로 돌아와 박무일(정한용)과 장태준(정동환)을 무너뜨리는게 이야기 얼개인데, 세진은 그걸 멈추라며 말리려 한다.

그들이 대기업 회장이고 전직 대통령인지라 새파랗게 젊은 이경으로선 벅찬 상대다. 그래서 비현실적이고, 딴 나라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래도 복수와 함께 정상까지 오르려는 욕망이 긴박감있게 펼쳐졌다면 볼만은 했을 것이다. 이경과 세진이 악녀로서 다른 악을 까발리고 응징하는 그런 구도말이다.

처음엔 이경의 아바타가 되겠다던 세진은, 그러나 갈수록 뜯어말리기만 하는 캐릭터로 일관한다. 자연 맥풀어지는 전개가 되고, 도대체 말하려는게 뭐야 하는 회의마저 들게 한다. 그것이 사회 정의니 진실 등 인간의 도리를 말하려는 의도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시청자들이 느끼고 깨달을 몫이지 세진이 이경을 가르치는 것이어선 안 된다.

‘불야성’이 딴 나라 이야기일 뿐인 이유는 또 있다. 극중 장태준 같은 전직 대통령은 최순실 정국뿐 아니라 그 이전을 통틀어도 연상되는 그 누구나 무엇이 없다. 비현실적 캐릭터일망정 전직 대통령을 갖고 놀 정도라면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과 뭔가 좀 겹쳐오는게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불야성’엔 그게 없다.

또 하나 의아스러운 건 이경과 박건우(진구)의 관계다. 한때 좋은 감정을 지녔던 두 사람이 무슨 원수 척지며 헤어진게 아닌데도 너무 치열하게 부딪치고 있으니 말이다. 이 말은 이경의 끝없는 욕망에 대한 처절하거나 절실한 당위성이 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초반엔 일본에서의 옛 추억과 현재 화면이 혼재돼 자연스런 얘기가 좀 끊기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흙수저를 표방, 월세조차 걱정하던 세진이 어느새 그깟 돈 따위엔 초연한 모습이 된 건 또 다른 아쉬움이다. “완전 깨끄치 입었어”(‘깨긋이’의 올바른 발음은 ‘깨끄시’다. 2016.11.21. 1회)라든가 “세진씨도 그것 때문에 밤나스로(‘밤낮으로’는 ‘밤나즈로’가 맞음. 2016.12. 3. 14회) 따위 오류도 그렇다.

이래저래 ‘불야성’은 대박드라마 ‘선덕여왕’(2009년)의 이요원, ‘태양의 후예’(2016년)의 진구 캐스팅이 무색한 별 볼 일 없는 드라마로 남게 되었다. 월화드라마라고 했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텐데, 도대체 방송사가 내세운 ‘특별기획’이 무슨 의미인지 아리송하다.

그나마 건진 건 "내가 지은 죄는 고대로 짊어지고 갈 기다"(1월 24일 20회)라는 박무일 대사다. 재벌 총수로서 옥살이를 자처하는 모습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의 모르쇠 타령에 일정량 시사점을 주고 있어서다. 그 외 건진 것도 참신한 대사의 함축성이다. “눈에 보이는 신 그게 돈이야”, “감정도 돈이야, 아껴 써” 등이 그것이다.

 

장세진 전 교사, 문학⋅방송⋅영화평론가 yeon590@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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