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파면이 남긴 것

2017.03.20 14:24:26

헌법재판소의 현직대통령 파면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역사적 과정을 지켜보면서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 법이 너무 허술하거나 미흡하다는 점이다. 마침 3월 2일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일명 우병우 방지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소식이 들려와 반갑다. 국회 청문회 등의 증인 출석을 회피하면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이다.

말할 나위 없이 개정안은 최순실 국정농단사건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벌어진 증인 출석 회피 문제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 마련되었다. 특히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서 증인 채택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의도적으로 출석요구서 수령을 피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뒤늦게 청문회에 나온 바 있다.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법안이라 일명 ‘우병우 방지법’으로 불린다.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은 국회의장이나 관련 위원장이 경찰관 등 관계 기관에 증인과 참고인의 주소, 전화번호 등 정보 제공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증인이 고의로 출석요구서 수령을 회피할 때 부과하는 벌금도 기존 1000만 원 이하에서 10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로 대폭 조정했다. 고의로 동행명령장의 수령을 회피하는 경우에는 국회모욕죄로 처벌된다.

그러나 약해 보인다. 청문회에 정당한 이유없이 나오지 않으면 벌금 따위가 아닌 징역형으로 처벌해야 한다. 청문회를 깔보거나 우습게 생각하는 관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위증죄도 마찬가지다. 제법 엄한 편이라는데 실제 그렇게 처벌받은 사례는 없다고 하니, 툭하면 증인이나 참고인들이 거짓말을 해대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다음은 특검법이다. 사상 초유의 일이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특검에 의해서 피의자가 되었다. 수사대상이 대통령인 경우 특별검사 임명권은 가령 국회의장에게 부여되어야 한다. 이미 그렇게 돼있었더라면 특검연장이 불발돼 많은 국민 마음을 안타깝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과 특검에 의한 청와대 압수수색 불발도 검토해볼 문제다. 지금처럼이라면 앞으로도 수사대상이 대통령인 경우 미완이나 미제로 그칠 수밖에 없다.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하다면서 그 위에 군림하는 최고 권력자라면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이 파면선고되는 지금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다. 임기 만료 6개월 전부터 국가기록원에 의해 시작되는 대통령기록물 이관도 궐위에 따른정비가 필요해보인다.

생각해보자.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대통령과 한패인 권한대행에게 그런 권한이 있는 건 명백한 오류 아닌가. 특검수사로 어느 정도 뻥 뚫려가던 가슴속에 다시 무거운 돌덩어리를 얹히게 한 것이라 할까. 물론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특검의 취지를 최대한 살려 대다수 국민 요구에 부응하자는 이유에서다.

대통령 파면과 함께 즉시 청와대를 나오게 강제할 필요도 있다. 사저 보수란 현실적 이유라곤 하지만 탄핵당한지 만 이틀이 지나도록 일반인이 청와대에 머문 셈이 되어서다. 이미 박정희 대통령 유고로 궐위상황을 겪은 바 있는데도 언제 떠나야 하는지 명문화된 조항이 없었다는 건 일견 의아스러운 일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가령 대통령측 대리인단 변호사는 19명인데 반해 국회측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국회측이 더 이상 선임하지 않아 그런 듯 보이지만, 일단 그 수가 너무 많다. 대통령측 대리인단 행태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 꼭 그짝이다. 각자 대리 어쩌고 하여 많은 혼란을 준 만큼 인원을 줄일 필요가 있다.

변론시간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국회측은 1시간 남짓인 반면 대통령측은 무려 5시간 넘게 진행했다.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1시간 이내로 변론하라면 거기에 따라서 엄격하게 해야 하지 않나. 아무리 대통령 탄핵이란 중대 사안일지라도 난장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선 지시를 어길 경우 청문회처럼 마이크를 끄는 등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막가파식 대리인단을 퇴정 조치하지 않은 것은 빌미제공 등 헌재의 정치적 판단으로 보이긴 한다. 아무튼 헌법재판소에서조차 피청구인 대리인단 변호사들이 그렇게 자유롭게 행동하는 참 순한 나라인데 어떻게 최순실 국정농단 같은 사건이 터지고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았는지, 종국엔 대통령까지 권좌에서 물러나게 했는지 얼른 이해가 안된다.

이제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다. 조국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이제 헌정사상 처음인 현직 대통령 파면의 불행을 털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 굳세고 힘차게 나가야 한다. 더 튼튼한 민주공화국을 위해 미비한 법률은 없는지 보완해야 할 제도는 없는지 꼼꼼히 챙기고 실행해야 할 때다.
장세진 전 교사, 문학⋅방송⋅영화평론가 yeon590@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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