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어진 정통 대하드라마를 대부분 보았지만, 지금은 사극을 거의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난 1월 26일 방송을 시작한 SBS ‘사임당 빛의 일기’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지난 해 6월 촬영을 마친 200억 원대 대작일 뿐 아니라 ‘한류제한령’으로 중국 방송이 불발됐지만 일본⋅대만⋅싱가포르 등 9개국에서 동시방송되는 드라마의 위력은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라 할까.
또 하나 ‘대장금’(2003~2004년) 이후 무려 13년 만에 컴백하는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에 대한 기대감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서지윤과 신사임당 1인 2역의 이영애는 일단 조선시대보다 현대에서 더 빛나 보였다. 40대 중반의 아줌마가 맞나 할 정도의 워킹맘(일하는 엄마)으로서 연기는 엄지척이었다. 조선시대 복색으론, 미안한 말이지만 뚱뚱하고 얼굴도 넓적해 보인다.
그런 기대감은 1, 2회 15.6%와 16.3%(닐슨코리아, 전국기준)의 비교적 높은 초반 시청률로 화답되는 듯했다. 그런데 시청률은 3회부터 상승 아닌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전체 30부작 중 22회(4월 6일)까지 방송된 지금 한 자릿 수로 시청률이 곤두박질친 상태다. 얼마 전 인기리에 끝난 ‘김과장’은 물론 새로 시작한 KBS ‘추리의 여왕’에도 밀린 수모의 드라마가 되었다.
SBS는 시청률 하락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1~4회 방송분을 편집한 스페셜을 방송했다. 또 19~20회 재방송 대신 편집본 스페셜을 방송하는 등 시청률 올리기에 안간 힘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5회 연속 현대 이야기를 뺀 채 방송하는, 사전제작이 무색할 교육지책의 변칙도 선보였다. 그래도 시청률은 한 자릿 수에서 두 자릿 수를 오락가락,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사임당 빛의 일기’를 그만 보기로 한 것은, 그러나 시청률 때문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평균 시청률 4%대에 머물렀던 MBC ‘불야성’조차 끝까지 시청했으니까. 내가 ‘사임당 빛의 일기’를 MBC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처럼 중도에 시청 포기한 것은 기대 못미친 퓨전사극이란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박은령 작가는 “엄마이면서 아내, 예술가로서의 삶을 조화시키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면서 조선시대나 현재나 고단한 워킹맘의 삶을 그리고 싶었다”(경향신문, 2017.1.25.)고 말했다. 말한 대로만 그렸으면 이렇게 거역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현모양처이자 서화(書畫)에 능한 예술가로 알려진 신사임당이라 그랬을 것 같지만, 가장 거역스러운 건 이겸(송승헌)과의 사랑이다.
종친 이겸은 허구의 인물이다. “사임당이라는 한 여인을 사랑하고, 끝까지 지켜주는 남성으로 누가 봐도 멋진 캐릭터”(앞의 경향신문)가 맞지만, 오히려 그것은 자충수의 악재로 보인다. 24회까지 방송을 보면 결국 유부녀의 외도가 큰 이야기 축으로 전개돼서다. 조선시대에, 더구나 신사임당이 유부녀이면서 외간남자와 ‘놀아나는’ 이 퓨전사극을 어떻게 봐야할까.
물론 사통(私通) 따위 세속적 관계로 그려지는 건 아니다. 일종의 플라토닉 러브이고 처음엔 그마저도 계속 거부하는 사임당 모습이 그려지지만, 그렇다고 그 마음의 사랑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명백히 불륜의 모습이다. 급기야 남편 이원수(윤다훈)는 바람까지 난다. 그 시대 첩 두는 일이 자연스러웠던 것과 별도로 왜 그렇듯 ‘또라이’ 남편으로 형상화되었는지 알 수 없다.
연속적 긴장감을 반감시키는 등 현대와 조선시대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일개 참의(지금의 차관보) 따위 민치형(최철호)이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좀 아니지 싶다. 퓨전사극이라 그런가. 어떻게 윤경보(송민형)는 20년 넘게 계속 영의정인지 의아하다. ‘꼬치’라 발음해야 할 ‘꽃이’가 “봄 꼬시 필겁니다”로 나오는 오류는 차라리 애교에 속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