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교단수기 금상] 호야꽃을 닮은 너에게

2017.09.20 18:12:25

집에 식물을 몇 가지라도 키우는 사람이라면 흔히 듣는 ‘호야’라는 화초가 있다. 보통은 큰 화분에 곁다리로 흔하게 심겨져 오는 식물이라 그냥 키우다가 큰 식물이 죽어버리면 같이 내다버려지는 경우도 다반사인 식물이다. 그런데 호야는 흔치는 않지만 마치 작은 별꽃들이 모여 있는 것처럼 커다랗고 둥근 수국모양의 꽃을 피워낸다고 한다.

집에서 몇 년을 키우던 호야가 꽃 핀 적이 없어 ‘올해는 꼭 꽃을 보고 말리라’ 다짐을 하고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보니 호야가 덩굴을 지저분하게 뻗어낼 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잘라 다듬는데 그리 하면 안된단다. 보기 싫고 볼품없는 그 덩굴이 뻗어나서 그 자리 어디쯤에 꽃눈이 나오기 때문이란다.

교단에 선 지 벌써 14년째 접어든다. 이쯤 되면 어떤 교사든 아픈 손가락들을 몇 만났을 것이고 어여쁜 아이들도 손가락 수를 훨씬 넘겼으리라. 생활지도부 교사를 오래해서인지 돌아보면 유독 아픈 손가락들이 많았다. 어떤 분이 ‘이 선생은 매일 그런 녀석들 돌보느라 더 예쁘게 클 수 있는 아이들을 못 봐주는 경우가 많다’며 골고루 관심을 주라고 하신다. 일면 맞는 말씀이지만 성향 탓인지, 시야가 넓지 않아서인지 못난이들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담임이 되면 매년 하는 일 중 하나가 한 달에 한 번 학급편지를 보내는 일이다. 한 달 동안 아이들과 소통한 내용을 ‘편지’ 형식으로 담임이 보내면 학부모들이 회신하여 보내는 아날로그 방식이다. 부모님들의 회신은 아이들 지도에 참고하곤 한다. 

3월 첫 달 부모님 회신을 정리하다가 마음에 커다란 돌 하나를 얹어 놓는 듯 무거운 마음을 발견했다. 

‘우리 지훈(가명)이는 착한 아이입니다. 첫인상이 강하다고 해서 선생님들의 선입견만으로 우리 아이를 판단하거나 미워하지 말아 주십시오.’

새 학기에는 의례적이지만 ‘잘 부탁드린다!’나 ‘건강에 대한 부탁’ 선에서 회신이 오가는데 첫 학기 3월 학급편지에 우리 아이를 선입견으로 보지 말라고 쓰신 그 아버지의 답장은 쉽게 못 풀어 낼 수학문제처럼 답답함이 들게 했다. 

육아 휴직 뒤 복직한 터라 작년에 지훈이가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가 없어 다른 분들에게 정보를 찾았다. 지훈이는 수업 시간에 ‘수 틀리면’ 친구들에게나 교사에게 욕을 하고 불손하게 대들었다고 한다. 또한 작년에 동급생 친구들을 여러 번 괴롭히고 때려 1학년 때 학교폭력대책위원회 징계를 두 번이나 받는 전력이 있는 녀석이었다. 

이 녀석의 화려한 전력을 직접 확인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4월 어느날, 같은 반 친구가 다른 친구와 놀다가 실수로 실내화가 발에서 미끄러져 빠졌는데 하필이면 그게 지훈이 자리 위에 있던 선풍기를 맞고 머리 쪽으로 튕겨 맞았다고 한다. 화가 난 지훈이는 자기보다 덩치가 두 배는 큼직한 상대방 아이를 흠씬 두들겨 패 주었다. 내가 달려가 확인했을 때에는 이미 상대 친구의 눈과 뺨에 멍 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뒤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버님께 연락을 드려 내교하시도록 했고 아버님은 불쾌감이 가득한 얼굴로 학교에 오셨다. 4층 상담실까지 구둣발로 올라오시고 입에는 껌을 씹으시면서. 

앞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 드리고 난 뒤에도 아버님은 그 상황에 대해 ‘아이가 깔끔해 실내화가 자기에게 온 것을 못 견뎌서 그런 것 같다’며 계속 아이를 두둔하셨다. 학교에 오실 때부터 지훈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기세로 오신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버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다시 학생 지도 원칙을 말씀드리고 지훈이가 상대방 친구에게 사과하는 것이 맞다고 계속 설득했다. 그리고 앞으로 아이를 대할 때 아버님이 속상하셨던 부분들을 헤아려 지도하되 원칙은 한결같다고 단호하게 내 입장을 전달했다. 

아버님은 그 말씀을 믿고 돌아가신다고 했다. 돌아서서 가는 지훈 아버님의 구둣발에는 아직도 화가 누그러지지 않았는지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지훈이가 교무실로 불려가는 느낌이 들면 거부감을 가질까봐 일부러 내가 수시로 교실로 가는 방법을 택했다. 어떤 날은 운동장에도 가고 급식실에서도 의도적으로 자주 마주쳤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라 운동장에도 종종 가서 살펴보며 그 때마다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사탕도 입에 넣어주고 어깨도 두드려주었다. 그리고 정말 큰 일이 아니면 소소하게 일어나는 학교 문제들에 대해서는 상담노트에만 적고 지훈이와 직접 해결하는 방향을 택했다. 그렇게 ‘너를 도와줄게’라는 신호를 적극적으로 보냈다. 

담임 경력이 쌓이면서 초임 때와 사뭇 달라진 태도가 하나 있다. 초임 때에는 아이의 잘못이 생길 때마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고 이런 일로 지도를 했노라 매번 말씀드렸다. 그렇게 해서 내가 열심히 지도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가정 내에서도 그렇게 지도해 달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나 역시도 세 아이의 학부모가 되니 우리 아이 담임선생님 번호가 갑자기 뜨면 ‘아픈지, 다쳤는지, 싸웠는지’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날아다닌다. 그래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버님께 전화를 드리는 것을 줄이고 나와 지훈이만 알고 넘어가는 비밀을 늘렸다.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방과 후 남아서 이야기를 하다가 지훈이와 ‘꿈’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별 생각 없을 줄 알았던 지훈이가 한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미용업에 종사하시는 엄마, 아빠처럼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은데 자신은 손재주가 없다고 아버님이 말씀하셔서 하지 말아야 되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와 소통 할 수 있는 창구 하나를 뚫고 나서 그 날 아버님과 지훈이의 꿈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님과 이야기를 나눈 뒤 내린 결론은 미용과 관련된 실습 지원은 부모님이, 실제적인 학과 정보나 미용 관련 자료 수집은 담임이 도와 스크랩을 해가며 진로탐색을 해 보자는 것이었다. 

아버님과 통화 후 전화를 끊을 무렵에 “선생님, 지난번에 제가 찾아갔을 때에는 제가 좀 흥분을 해서 죄송합니다. 지훈이 이야기만 들으면 그냥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것 같아서요. 학교에서 매일 미움만 받는 것 같아서 제가 좀 죄송한 상황을 만든 것 같습니다. 그 날 일부러 선생님 마음 좀 상하시라고 신발도 안 벗고 껌도 씹었는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며 사과를 하셨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지훈이를 키워보기로 마음먹었다. 학업 실력이 저조해 영어 단어 하나도 외우기 힘든 아이랑 하루에 다섯 개씩 영어 단어도 외우고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남아서 미용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부모님은 학원에 보내주시고 미용 관련 단어나 미용도구, 유명한 헤어디자이너 몇 사람들을 롤 모델로 해서 그들의 활동을 수집하고 스크랩을 하는 것은 나와 지훈이가 했다. 꿈을 구체화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지만 아이를 통해 나 역시도 미용의 역사나 헤어 스타일링 용어 등을 같이 배우니 즐거움도 생겼다.   

물론 지훈이는 중간에 슬럼프는 간혹 겪었다. 필기시험에 떨어지고 와서 코가 쑥 빠진 날에는 위로의 짜장면도 사주고 며칠 있다가 다시 시작해보기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넉 달 남짓, 아이는 이제 교복 단추가 떨어져도 내게 갖고 와서 달아달라고 너스레를 떨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손이 많이 가는 아이고 감정의 기복도 있어서 때로는 대화의 줄을 이어가기가 힘든 때도 있었지만 확실한 것은 아이가 학교 안에서 나를 믿을만한 존재라고 생각해 마음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복도에서 아이들과 달리기를 하는 지훈이의 허리춤을 잡으며 ‘아들, 여기가 마라톤 하는 데야?’하고 혼내면 ‘죄송, 죄송!’하며 웃는 낯으로 대할 정도가 됐다. 엄마의 꾸지람에 화가 나 동네 담벼락을 주먹으로 쳐 피가 철철 나는데도 등교하지 않았을 때는 ‘선생님 기다리고 있을게, 야단치지 않을게 얼른 와’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교무실 앞에 와서 주뼛거린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아이를 몰아세우지 않고 약속한 대로 그냥 치료만 해주고 따뜻한 핫초코 한 잔 먹이며 어깨만 다독여줬다. 그때 지훈이는 내게 기대어 작은 어깨만 떨고 있었다. 서러움과 속상함이 얽힌 탓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면서 우리끼리 소소한 사건들도 제법 쌓이고 그 만큼 정도 쌓였다. 아이는 한 권의 ‘꿈’ 스크랩을 다 마치고 헤어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꿈을 구체화했다. 그리고 한 학년이 올라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나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됐다. 

떨어져 있으면서도 간간이 연락하고 격려도 하는 동안 지훈이는 소소한 사건 몇 개 외에는 무사히 중3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지금은 미용자격증 공부와 학원 수업을 병행하면서 좋아하는 ‘디제잉’학원도 다닌단다. 가끔 꿈에 대해 물으면 미용사와 디제이 사이에서 갈등 중이라며 자못 진지하다. 다행인 건 꿈이 없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간 이후에도 지훈이 아버님은 내 번호를 지우지 않고 서로 연락하며 지낸다. 지훈이가 꿈을 갖게 된 것도 감사하지만 교사에 대한 불만이나 선입견을 깬 계기가 됐다고 말씀하신다.

‘지훈아, 오늘 학교 땡땡이 안치고 잘 갔지? 날이 춥더라, 옷 따뜻하게 입고가.’ 했더니 ‘네 선생님, 저 이번 주에 미용시험 봐요. 싸랑해요. 쌤~’하고 답장이 온다. ‘와~ 이번에 시험에 붙으면 지훈이랑 피자 먹어야겠네?’ 했더니 ‘히히’ 답장이 LTE급이다.

뒤돌아보면 지훈이는 정말 호야 같은 아이였다. 우리 반 38명에 묻어 온 한 명의 호야. 지금 그 아이의 꽃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이제 덩굴을 뻗고 잎사귀를 내는 중이다. 그리고 나도 내가 이 아이에게 준 물과 햇볕이 헛되지 않을 것을 믿으며 꽃 피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더디지만, 때로는 거친 시간을 보냈지만 미래에 네가 피워내는 꽃은 얼마나 예쁠까? 여전한 일상이 아니라 역전의 일상을 기다리며 호야꽃보다 더 예쁜 네 꽃을 한 번 바라보고 싶구나. 기다림이 이렇게 즐거운 일인 줄 새삼 깨닫게 된다.

이지애 대전 도마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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