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5분 스피치

2004.04.08 15:00:00


점심식사 후 바로 시작되는 5교시는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시간이다. 공교롭게도 5교시에만
수업이 들은 학급이 있었다. 하루는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5분 스피치' 시간을 마련했다. 아이들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들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학교생활, 친구관계, 이성교제, 성적, 가정환경 등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도 다양했다. 순서대로 발표하던 중, 효주의 차례가 되었다. 부모님 곁을 떠나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였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몇 해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많이 아프십니다. 당장 요양이 필요한데도 매일같이 힘든 농사일에 매달려 계십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낮에는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하시고 밤에는 읍에 있는 식당에 나가 허드렛일을 하십니다."

목소리가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그렇지만 특히 어머니는 쉬는 날이 없습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아들 대학 공부시킬 수 있다고 악착같이 일하십니다. 지난 주말 집에 다니러갔을 때, 어머니께서 '공부하다 배고프면 빵이라도 사먹으라'며 용돈 몇 푼을 제 손에 꼭 쥐어주셨습니다. 사실 아버지 약값도 충분하지 않은데…."

감정이 복받쳤는지 효주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닭똥 같은 눈물을 연신 쏟아내고 있었다. 순간, 교실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덩치가 황소만한 녀석들까지도 엉엉 소리를 내며 따라 울었다.
그 날에서야 효주의 얼굴에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어찌보면 숨기고 싶은 치부였을지 모르나 오히려 자신의 속마음을 보여준 효주가 고마웠다. 또한 친구의 슬픔을 함께 나눌 만큼 깊고 순수한 동료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도 대견스러웠다. 교실을 나서며 바라본 하늘은 아이들의 마음을 닮았는지 눈이 부실만큼 푸르렀다.
최진규 충남 서령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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