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돌아보는 교단 50년] 선생님 우린 어떡해요?

2018.02.19 09:31:05

1982년 7월17일 제헌절이라서 휴교를 기회로 선생님들은 오랜 격무에 시달리다가 잠시 야유회를 갔다가 와서 헤어지려고 하는데 난데 없이 날아든 사고 소식은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고 말았으니......

“ 자 ! 손들 씻고 와서 점심을 먹기로 하자. 오늘은 3분단과 함께 먹을 차례예요”


하고 선생님이 손을 씻고 오셔서 점심을 먹으려고 보니 작은 방 마을의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얘들아, 현이, 희아, 옥이, 경이 네 사람은 어디를 갔니?”

“선생님 그 얘들은 뒷산 땅굴에서 먹는대요. 날마다 지네들끼리 모여서 거기서 점심을 먹는대요.”

한꺼번에 와르르 아이들이 떠들어대는 소리였습니다.

“식사는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해야 한다.”

날마다 점심시간이면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이 있어서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셨지만 오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네 사람 작은 방 마을의 아이들은 유난히 함께 몰려다녔습니다. 아니 몰려다닌다는 말 보다 되레 한데 묶어 다닌다고 해야 옳은 표현일 것입니다. 심지어는 화장실에도 한꺼번에 몰려다닐 정도이니 말입니다.

휴전선의 서부 전선 철조망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 고장은 학교에서 20여m 떨어진 뒷산에 군용 벙커(땅 속에 숨어서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게 만든 군사 시설)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 컴컴하고 눅눅한 곳에 몰려가서 점심을 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벌써 몇 번째나 주의를 주셨습니다. 또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분단별로 모여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선생님과 함께 먹는 분단을 정해서 차례로 모여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아가며 빠져나가기 때문에 같은 분단에 함께 모이지 않도록 따로따로 나누어 앉게 해주었습니다. 함께 어울리는 것을 줄이려고 청소 분단도 따로따로 되게 바꾸기도 했지만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함께 모여서 의논하고 공부하고 또 다른 아이들과도 어울리고 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공부가 끝난 뒤 선생님은 네 명의 아이들을 남겼습니다.

“너희들 네 사람은 참 친하게 잘 지내는 구나. 그런데 어디서 점심을 먹었니?”

하고 물었습니다.

“뒷산에서 먹었어요. 선생님과 같이 점심을 먹는 것이 우린 싫단 말이에요. 아이들과 함께 먹는 것도 싫고 그냥 우리 넷이서만 먹고 싶어요.”

하고 경이가 머리를 숙인 채 말을 했습니다.

“그래? 너희들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점심시간에 바른 자세로 잘 먹는 것을 보고 싶었는데, 너희들은 내가 곁에 있는 것이 싫은 모양이로구나.”

하고 말씀하시자 제일 덩치가 커다란 옥이가

“선생님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공부 못한다고 자꾸만 꾸중을 듣는 우리들과 함께 노는 것을 꺼려하고, 미워하고, 놀리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끼리 노는 게 좋아요. 우리들이 지네들 노는데 껴들면 싫어하고 저리 가라고 막 욕하고 그래요.”

“아, 그랬었구나. 그러면 내가 아이들에게 얘기를 해야겠구나. 아이들이 함께 놀아주면 너희들도 함께 어울려 놀 수 있겠지?”

“그럴 필요 없어요. 그러면 아이들에게 오히려 놀림감이 되어요.”

하고 한사코 싫다고 하였습니다.

얼마 후 선생님은 학급에서 우수하고 모범생이 될만한 명랑한 아이들을 골라 하나씩 짝을 지어서 좀 더 친하게 잘 대해 주고 어울려 지낼 수 있도록 하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네 명의 짝꿍패는 더욱더 단단하게 굳어져 갔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짝꿍패들이 한데 어울려 깨어질 줄 모르자 그네들을 더욱 싫어하고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6월 초순 어느 날, 결석이라곤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던 아이들인데 갑자기 현이가 결석을 하였습니다. 왜 결석을 하였는지 물어 보아도 짝꿍패들도 모른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너희들 어쩜 그럴 수가 있니? 그렇게 몰려다니던 친구가 결석을 했는데 까닭을 모른다니?”

선생님이 꾸지람을 하시자, 희아는 죽어 가는 소리로

“현이 아파서 병원에 갔대요,”

한 마디 하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왜? 어디가 얼마나 아픈 거지?”

선생님께서 물으셨지만 고개만 흔들 뿐 서로 눈치만 보는 게 뭔가 석연찮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물으면 물을수록 말이 없어지는 짝꿍패들의 버릇을 잘 알고 있으니 선생님도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자 현이가 핼쑥한 얼굴로 엄마와 함께 교실에 들어왔습니다.

“식중독이었던지 토하고 배가 아프다고 야단을 해서 일요일 내내 병원에 가서 누워 있다가 지금 오는 길이에요.”

현이 엄마의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짝궁패들의 눈빛은 아픈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닌 잔뜩 겁먹은 모습들이었습니다. 다행히 현이는 이튿날부터 학교에 나오고 별다른 일은 없이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보내면서 이 아이들을 따로 불러 교실정리를 함께 좀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대장 격인 옥이를 따로 불러서 조용히 물으셨습니다.

“옥아, 너희들 무슨 일이 있었니? 모두들 물어도 네가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무슨 일인지 말해 줄 수 없겠니?”

“.........”

“선생님이 알기로는 전번 토요일에 너희들 끼리 무슨 일이 있었고, 그래서 현이가 아픈 게 아니라 그 일 때문에 병원에까지 가게 되었다고 하는데 무슨 일인지 선생님한테 이야기 해 주는 게 좋지 않겠니?”

이렇게 달래 보았으나 옥이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딱 한마디 하고서는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그래 ? 그렇게 절대로 이야기 할 수 없는 일이라면 할 수 없지만, 선생님이 이제 대략은 알게 되었는데 더 이상 감추고 그럴 필요가 있겠니? 얘기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하고 달래도 보았지만 아무 말도 없이 얼마 동안을 생각하고 궁리를 하는 듯 하더니 선생님과 눈이 맞추지 못하고 있던 옥이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학교에서 돌아가 숙제를 하려고 모두들 옥이네 집으로 가서 모여 한바탕 떠들고 있을 때 옥이 어머니가 논에서 돌아오시더니 악을 쓰면서 호통을 쳤다는 것입니다.

“생겨 쳐 먹은 것이 꼭 돼지 같아 가지고 저렇게 공부도 못하는 것이 집안일이라도 좀 도와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 너 같은 것을 어디에 써먹겠니? 차라리 나가서 되져 버리면 저런 꼴이라도 안보지. 이 망할 놈의 계집애야.”

하고 욕을 하는데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는 머리를 쥐어뜯기기도 하고 매를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꾸중을 잔뜩 들은 것을 본 짝꿍패 아이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면서 집 뒤의 산으로 피해 달아났습니다.

여기에 모여 앉은 아이들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들은 공부도 못하고 집안일도 도와드리지 못하는 아무것에도 쓸모없는 것들이 아니냐?”

하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의 걱정만 들어온 우리 같은 것이 살아 봐야 부모님들의 걱정거리 밖에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다들 그렇다고 서로 이야기를 끝내었습니다.

“아무리 잘해 보려고 해도 우린 틀렸나 봐. 부모님 걱정을 덜어 드리려면 차라리 우리가 죽어 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나는 정말 바볼까? 나는 공부도 못하고 집안 걱정거리나 되고, 친구들도 잘 어울려 주지도 않고, 이런 꼴로 살아서 무얼 하니? 엄마 말대로 정말 죽어 버리면 좋겠어.”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자 아이들은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 것이 아니냐? 얼른 죽어 버리믄 부모님의 걱정거리도 덜고 우리도 남의 눈치나 받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 아니냐?”

하는데 마음이 모아졌습니다.

아이들은 몰래 집안으로 들어가서 옥이가 무언가를 찾아 들고 다시 집을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학교 뒷산의 벙커로 가서 옥이가 손에든 쥐약을 꺼냈습니다.

누구보다도 남의 일에 동정을 잘하고, 남을 위해 희생하기를 마다하지 않은 경이가

“나도 그래, 집에 가면 맨날 욕이나 먹고 동생편만 들어주는 엄마, 아빠가 미워 ! 나도 죽어 버리고 싶어.”

하자 모두들 나도 나도 하면서 함께 죽어 버리자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약은 두 병 뿐이고 사람은 네 명이나 되니까 반병씩을 나누어 먹기로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병의 주둥이 부분을 칼로 자르고 우선 옥이와 현이가 반쯤씩 마시고 나면 나머지 반씩을 경이와 희아가 마시기로 하였습니다.

옥이와 현이가 병을 입에다 대고 플라스틱으로 된 병을 힘을 주어 누르자 입안으로 약이 흘러 들어가는지 꿀꺽 삼키는 소리가 났습니다. 이것을 보고 있던 경이는 더럭 겁이 났습니다.

“안돼!”

경이는 현이의 손을 덮쳤습니다. 그러나 벌써 현이는 약병의 2/3쯤을 먹었다가 나머지 반쯤은 흘려버렸습니다. 겁이 난 경이는 약병을 빼앗아 멀리 던져 버리고서 학교의 숙직실로 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아저씨, 현이가 아파서 그러는데 잠깐만 누워 있다가 가면 안 될까요?”

마음씨 좋은 학교 기사아저씨는 아이들을 숙직실에 눕게 하고 밖에 나가서 학교를 돌아보고 왔습니다. 잠시 후에 돌아온 아저씨는 아이들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보고

“너희들 왜 이 시간에 학교로 왔어? 집에 안 갈거니 ?”

“집에 가기 싫어요.”

“꾸중 들었구나? 그럼 저녁도 안 먹었겠구나.”

“.........”

“그럼 잠깐 기다려라. 응”

아저씨는 자전거를 타고 몇 백 m나 떨어져 있는 이웃마을의 가게에 가서 빵과 음료수를 사 가지고 와서 먹으라고 주셨습니다.

“자 ! 이것들을 먹고 더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가거라. 집에서 들 걱정하시지 않겠니? 너희들 잘 되라고 꾸중 하셨을 거야.”

하고 타이르는 것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에 머리가 아프다던 현이가 토하고 야단이 났습니다. 걱정이 된 아저씨는현이를 자전거에 태워서 집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왔으면 집으로 보낼 것이지 왜 그런 빵 같은 걸 사다 먹여 가지고 토하고 야단이 나게 해요?”

까닭도 모르는 아저씨는 현이 어머니에게 욕을 먹고 투덜거리면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현이는 계속 토하고 야단이 났었고, 병원에 가서도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원인도 모른 채 주사를 맞고 토하지 않은 약만 먹고서 좀 나았습니다.

 

이야기를 모두 다 듣고 난 선생님은 작은 방 마을의 짝꿍패 아이들을 모두 숙직실로 불러 들였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고 이해해 주어야 참으로 바른 길로 이끌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네 아이들과 마주 앉아 말문을 열자 옥이가

“나는 공부도 못하고 못 생긴데다가 부모님의 속만 썩여 드리는 큰딸이 되어 가지고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도와 드리지도 못하니까 어머니의 말씀대로 죽어 버릴 생각을 했어요.”

하고 말을 마치자 희아가

“부모님도 없는데 할머니만 괴롭혀 드리고, 작은 아빠, 작은 엄마만 귀찮게 하면서 공부도 못하고 살아서 무엇 하겠냐는 생각에 그랬어요.”

“공부 못한다고 자꾸 꾸중만 듣고, 또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었는데 잘 어울려 주지 않아서 속상했어요.”

현이가 말하자 가만히 앉아만 있던 경아가

“남동생과 단 둘인데 엄마가 계집애는 시집가면 그만 이라고 자꾸만 차별 대우를 하는 게 싫었고, 사람은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것이니 지금 죽으나 나중 죽으나 마찬가지일 뿐 아니라, 이왕 죽을 거라면 고생할 필요 없이 일찍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고 거리낌 없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말했습니다.

“너희들 얘기를 듣고 보니 정말 너희들이 어떠한 심정인지 알 것 같구나. 나도 어린 시절에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으니까 말이야. 부모님의 무관심, 꾸중, 친구들의 미워함, 집에서의 차별 대우, 이 모든 것들이 너희들을 슬프게 하기에 충분했겠지? 우선 부모님이 너희들을 미워하고, 꾸중하고, 차별대우를 한다고 했는데 그게 정말이라면 안 되지? 그러나 실상은 정말 너희들이 미워서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너희들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앞날을 걱정해서 그러시는 것은 아닐까? 만약 너희들이 아파 누워 있다면 너희 부모님은 어떻게 하시더냐? 꾸중을 하시느라고 너희들에게 욕을 하시기는 했지만 막상 너희들이 앓고 누워 있으면 병원엘 간다, 약방엘 간다 야단을 하시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부모님이 너희들을 진정으로 미워서 그러시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아니겠니? 현이야 ! 이번에 네가 아팠을 때 너희 부모님이 너를 정말 미워하시더냐 아니면 참으로 너를 걱정하시더냐? 너희들은 부모님의 심정을 좀 더 이해해 드려야 한단다. 오직 너희들의 장래를 생각하시는 부모님을 말이야.”

하는 선생님의 말씀이 계속 되는 동안 아이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서 조용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현이는 실감이 나는지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으로 선생님을 쳐다보았습니다.

“너희들은 부모님이 계시니까 부모님의 고마움을 잘 모르고 있구나. 나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기 때문에 날마다 꾸중하시고 나무래 주실 부모님이라도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단다. 너희들이 학교에서 집에 돌아가 어머니가 안 보이시면 얼마나 허전하니? 난 영영 볼 수 없는 어머니를 생각한다면 살아 계실 때 효도를 못한 게 너무도 후회스럽단다.”

하시면서 선생님이 눈물을 글썽글썽 해지고 목이 메어서 울먹이시자 아이들은 왈칵 선생님의 목을 끌어안고 울음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선생님 저희들이 잘 못 했어요.”

얼마동안 눈물을 흘리며 훌쩍이는 아이들을 일으켜 눈물을 닦아주면서 선생님은

“자 ! 이제 우리는 잘 못을 깨닫고 새로이 태어난 셈이다. 이제부터라도 잘하기 위해서 앞으로 할 일을 의논해 보자.”

하시면서 덧붙여

“우선 너희들의 비밀은 지켜 주겠다. 너희들이 얘기하고 싶으면 부모님께 용서를 빌고 앞으로 할 일을 약속해라. 또 학급의 친구들과도 좀 더 여럿이 한데 어울려 지내도록 노력을 하기로 하자.”

하는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지키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짝꿍패들은 털어놓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는 듯 밝은 얼굴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뒷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궁리 끝에 경이 부모님을 먼저 만나 보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경이의 부모님은 두 분이 모두 대학을 나오셨고, 충분히 의논을 할 상대가 될만한 분들이라고 생각해서였습니다.

경이네 집으로 경이 몰래 편지를 보내서 멀리 읍내에서 조용히 만나자고 했습니다. 경이 부모님으로부터 읍내의 어느 곳으로 나와 주십사 하는 전화를 받고서 달려 나간 선생님은 이번 일을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가시면서 예쁜 옷이라도 한 벌 사 가지고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아들과 차별을 한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주의를 해주시고요.”

하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께는 잘 못 말씀을 드렸다가는 이야기가 새어 나갈 것 같아서 아주 조심스러웠습니다. 가정방문을 핑계로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찾아가는 방법을 썼습니다.

이웃 가을 뫼에 먼저 가서 두어 집을 돌다가 농사철이라 사람들을 만날 수 없으니까 할 수 없어서 그런 것처럼 작은 방 부락으로 넘어와 짝꿍패들의 집을 찾아가는 방법을 썼습니다. 이렇게 해서 현이네, 희아네를 돌고, 옥이네까지 들러서 직접적으로 얘기를 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꾸지람이나 체벌을 하기보다는 칭찬을 해가면서 달래어서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자고 부탁을 했습니다.

다행히 짝꿍패들은 조금씩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과도 제법 잘 어울려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주 만에 그렇게 감추어 왔던 사건의 이야기가 그만 온 동네에 알려지고 말았습니다. 현이의 입을 통해서 사실을 알게 된 현이 엄마가 옥이를 불러다가 따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현이네 집은 마을에 있는 유일한 구멍가게라서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집입니다.

“ 야, 이 기집애야! 죽고 싶으면 네 년이나 죽을 것이지, 왜 남의 집 아이까지 데려다가 약을 멕여? 생긴 것부터가 돼지 같이 생겨 가지고, 공부도 못하고, 말도 안 듣고, 못된 생각만 하니까 집에서도 그렇게 미움을 받지! 이 빌어먹을 ×아 !”

이렇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퍼붓고, 거기다가 현이네 이모까지 합세하여 잡아먹을 듯이 야단을 했습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되어 옥이는 마을에서 걸어 다니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옥이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논둑길이나 산길로 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이런 사실을 알고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래서 곧장 현이네를 찾아가서 현이 엄마를 만나

“ 현이 엄마! 딸의 잘못을 그렇게 온 세상에 떠드는 엄마가 어디 있습니까? 조용히 잘 넘겼고, 이제 아이들이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이렇게 떠들어 가지고 모두 알게 되었으니, 옥이의 가슴은 얼마나 아프고 또 하나의 상처를 남기게 됐지 않습니까?”

하고 얘기를 했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잘 못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울컥 화가 치밀어서 그만 앞뒤 가리지 않고 한 것이 정말 잘 못 됐네요.”

하고 사과를 했지만, 이미 다 알려져 버린 일을 감추기만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여 학급의 아이들에게 대강의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너희들이 좀 더 따뜻하게 친구들을 아껴 주고 사랑해 주는 마음씨를 갖고 정답게 대해 주었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 아니니? 앞으로는 더 잘 지낼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

하고 당부를 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선생님을 잘 따랐고 친구들 사이에 생긴 갈등은 물론, 가정에서 생긴 일까지 의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방과 후엔 아이들이 선생님 주변에 모여들어서 함께 의논하고 해결 해가는 즐거운 나날이 계속 되었습니다. 짝꿍패들도 스스로 자신들의 잘 못을 뉘우치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점차 향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경이는 이미 우등권에 접근하는 좋은 성적을 거두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즐겁던 나날도 잠시이고, 나쁜 소식은 여름 방학을 하는 날 오후 늦게 전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옥이가 시냇가에 나갔다가 물에 빠진 동생을 구하려다가 결국 세 자매가 모두 숨이 졌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불과 100여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시냇가에 공사를 하기 위해 파 놓은 웅덩이 옆에 건져 올려진 세 자매의 시체를 보면서, 선생님은 넋이 나간 듯 붉으레 스러져가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면서 서투른 담배를 꼬나 물고 서서

“ 푸우, 푸”

담배 연기만을 내뿜고 서 있었습니다.

‘아! 내가 아직도 어리고 교사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야.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한 죄는 교사로서 용서받지 못할 일이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시나 봅니다. 학교에서는 모든 선생님들이 모여서 교육청과 경찰서에 사고보고를 내고 여기 저기 연락을 취하는 등 어려운 일들을 함께 해주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사방이 깜깜해진 밤에 우리 선생님들은 세 자매를 묻어주기 위해서 나섰습니다. 아이들의 부모는 절대로 못 오게 잡아 앉혀 놓고 마을 어른 몇 분이 함께 나오셔서 도와주었습니다. 모두 함께 산으로 가서 깜깜한 밤에 여기가 어디쯤인지도 모르는 산 속에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어린 꽃들의 무덤을 만들어졌습니다. 아무런 표지도 않고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는 동네 어른들의 말씀에 따라 세 무덤을 만들어 주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모두 다 한 없이 무겁기만 하였습니다.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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