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 반에는 특별한 아이가 하나 있었다. 조금 생소하긴 하지만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할 수도 있는 아이, 바로 탈북 학생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북한 출생은 아니지만 북한 사람인 어머니가 중국으로 탈북하고 거기서 만난 조선족 아버지와 함께 낳은 아이라서 법적으로 탈북 학생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정민(가명)이는 남학생으로 중국에서 태어나 다섯 살까지 살다가 우리나라에 온 탈북민이었다. 외모는 한국인과 전혀 다른 점이 없었고 우리말도 잘했다. 단지 글자를 잘 쓰지 못했고 학업 성적이 많이 낮았다. 그 외에는 다른 학생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쨌든 탈북 학생을 처음 만나 조금 긴장되었는데 교감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김 선생님, 학급에 탈북 학생이 하나 있지요? 그 학생이 탈북민인 걸 다른 학생들이 절대로 알게 해서는 안 됩니다. 어머니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어요.”
그 말을 듣자 긴장이 더욱 커졌다. 마치 대단한 특수임무를 맡은 기분이었다. 어쨌거나 엄청난 비밀유지와 보안을 요하는 일이 하필이면 내게 떨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누구를 원망할 일도 아니었다.
우려했던 일은 없었다. 학생들은 늘 정민이를 자신과 똑같은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다. 교우관계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학부모 상담주간이 되어 다른 어머니들과 달리 상담 신청에 묵묵부답이었던 정민이 어머니께 먼저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정민이 담임입니다. 정민이 어머니 되시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정민이의 학습 상황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정민이 기초 학력 평가 결과가 조금 낮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방과 후에 공부를 좀 하면 어떨까 해서요.”
기초 학습 부진 학생은 방과 후에 학습 코치를 받을 수 있어 거기에 참가하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어머니의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
“정민이는 초등학교 졸업하면 중국에 다시 와서 살까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별로 공부 못해도 신경 안 씁니다.”
억센 북한 지방 억양으로 그런 말을 들으니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당황스러웠다. 몇 번을 간곡하게 보충 학습이 필요하다고 설득하였으나 어머니는 완고했다. 결국 내가 두 손을 들어야 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며칠 후 다문화 학생 대상 대학생 멘토링 공문을 받았다. 정민이에게 좋은 기회다 싶어 알아보고 있는데 정민이 작년 담임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대학생 멘토링, 저도 작년에 참 좋아 보여서 신청하려고 전화드렸는데 결국 거절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자 지난번 전화에서 보충 학습을 거절당한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나머지 공부’ 같아서 싫다는 말에 결국 지고 말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나는 솔직히 약간 오기가 생겼다.
‘그래, 이번에는 꼭 설득을 하고야 말겠어!’
두려움과 망설임을 누르고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정민이 어머니는 몸이 불편한 아버지 대신에 외지 직장에 머물며 특히 야간에 일을 많이 하시는 형편이라 낮에는 전화가 잘 안 될 때가 많았다. 결국 퇴근 시간을 한참 넘겨 연결이 되었다. 이번에도 처음은 비슷했다.
“선생님, 저는 다른 아이 안 하는 특별한 것을 정민이한테 시키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나는 이번에는 지지 않았다. 마치 중요한 시험처럼 예상 질문과 답변을 작성해 옆에 놔두고 보면서 통화를 이어갔다. 전날 교육청 담당자에게 전화해 대학생 멘토링의 장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다.
“정민 어머님, 이건 나머지 공부가 아닙니다. 보통 학생들도 학원 다니고 과외 많이 합니다. 돈을 많이 주면서 대학생 과외를 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이건 그렇게 좋은 대학생 과외를 학교에서 더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하는 거예요. 돈 주고도 배울 것을 공짜로 하니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길고 끈질긴 설득 끝에 마침내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을 열기 위해 진심 어린 상담을 이어가다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 선생님이 우리 정민이를 위해 정말 많이 수고해주시고 제 입장을 잘 이해해주시니까 드리는 말씀인데요.”
원래 탈북민이고 소득이 많지 않아 정민이네는 기초수급대상자에 해당되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들어온 정민이 아버지가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어 신청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어머니는 아버지와 서류상 이혼을 결심하고 정민이에게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했다는 것이다. 즉 아버지와 함께 살고 부부 사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불법체류자인 아버지 때문에 지원을 하나도 못 받고 남들처럼 아버지의 성을 따르지도 못해 답답함과 억울함이 크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학교에서 각종 혜택이나 신청을 권하면 혹시라도 아버지의 신분이 탄로날까 두려워 모두 거절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뭔가 퍼즐이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알리고 싶지 않았구나!
“저를 믿고 어려운 말씀 해주셨으니, 반드시 기대에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대학생 멘토링이 시작되었고 뒤이어 한국교육개발원에서 탈북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 공문이 왔다. 이번에는 조금 홀가분한 마음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지난번 통화 이후 신뢰 관계가 좋아진 정민이 어머니는 나를 믿고 정민이의 상담에 흔쾌히 동의를 했고 전문 상담사가 정민이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나도 무언가를 해야 했다. 해마다 학생들과 책 쓰기 동아리를 하며 학생들의 책을 만들어왔기에 올해는 정민이와 함께하리라 마음먹었다. 어머니의 동의를 얻어 정민이를 책쓰기 동아리에 넣고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민이가 싫어했고 어려움도 많았다. 또래 남자애들처럼 활동적인 정민이는 방과 후에 동아리 활동하는 것도 싫고 글쓰기도 죽기보다 싫다고 했다. 나는 그런 정민이를 설득하며 책에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썼다. 만화책을 좋아해서 만화책을 구해다 주고, 만화책으로 인해 책을 조금 더 친숙하게 생각하게 되자 글밥이 적고 재미가 있는 ‘윔피키드’,‘39층 나무집’ 같은 책을 추천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동시집을 같이 읽혔고 동시 쓰기에 대한 것도 가르쳤다. 물론 예산을 편성하여 정민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최대한 많이 사주며 즐거운 경험을 늘리도록 했다. 중국 태생인 정민이 입맛에 맞는 가지밥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시라는 게 특별하고 대단한 게 아냐. 그냥 평소에 늘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번쩍님’만 오면 그게 시가 되는 거야.”
문학적 창작 영감을 나는 ‘번쩍님’이라고 했고 그 말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다른 아이들처럼 정민이도 차츰 시의 재미에 물들어갔다. 그리하여 정민이와 함께 우리 반 아이들과 일 년 동안 써온 작품을 모아 책을 만들기로 했다. 올해는 인성교육 중에서도 특히 효도에 관한 것을 교육하여 그에 관한 시를 써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기 때문에 효도 작품집으로 결정했다. 결국 우리 반 작품집 『효도, 어디까지 해 봤니?』를 출간하게 되었다.
“김 선생님, 아이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운 일을 해냈으니 내가 직접 격려를 좀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교장 선생님은 우리 반 아이들을 교장실로 불러 직접 책을 건네주시고 준비한 간식도 나눠주셨다. 그러면서 아이들 작품을 하나하나 낭송하게 하시고는 여러분이 작가라고,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셨다. 아이들은 교장 선생님의 칭찬을 받고 부푼 마음에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걱정과 두려움으로 맞았던 탈북 학생, 그러나 정민이와 함께하면서 내가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소중한 비밀을 지켜주며 내가 할 수 있는 테두리 안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 그리고 그 비밀이 만든 보물이 여기에 있다. 작은 노력이지만 교사로서 해야 할 일을 했고 그 결과로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다. 그리고 정민이 덕분에 내년에도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바로 우리 반 책을 또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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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교단수기 공모 - 은상 수상 소감
다산 선생의 가르침을 따라 할 일을 하겠습니다.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선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모든 것인 정민이를 비롯하여 소중한 비밀을 주신 정민이 어머니, 아들이 철없는 불혹이 된 것도 못 보고 가신 나의 어머니, 그리고 책 만든다고 밤을 샐 때마다 지치지도 않고 야식을 만들어주는 고마운 아내, 눈에 넣기에는 좀 큰 두 딸, 인생의 은사이신 서울교대 이재승 교수님, 대구교대 양선규 교수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안타까운 것은 코로나 때문에 주인공인 정민이도 아직 만날 수 없어 기쁜 소식을 전하기만 하고 작은 보답도 하지 못해서 가슴에 빚이 남은 것입니다. 이렇게 목이 빠지게 기다릴 줄 몰랐던 개학이 오면 정민이를 찾아가서 “네 덕분에 쌤이 큰 상을 탔다!”며 꼭 안아주고 싶은데 그때도 사회적 거리로 2미터 떨어져야 하면 어떡하나요? 마스크 안 쓰고 가지밥도 같이 먹을 수 있을까요? 그런 날이 과연 오기나 할까요?
가난한 사람의 가난하고 초라한 글이 큰 상으로 돌아와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길고긴 교직 생애에 다시없을 기쁨이자 크나큰 격려라고 생각하며 고맙게 받겠습니다. 늘 해오던 일인데다 살신성인을 보여주시는 위대한 선생님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상까지 타니 정말 과분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이 상을 받을 때 우리 대구 출신 세계적인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을 휩쓰는 쾌거까지 같이 겹쳤으니 대구가 이렇게 대단한 곳임을 세계에 드러내는 데 저도 한 몫 한 것 맞겠죠?
앞으로도 또다른 ‘정민이’를 수없이 만날 것이고 제가 할 일도 비슷할 것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만든 책이 쌓여가면서 계속 이 길을 가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거기에 이 상으로 더 큰 힘을 불어넣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제자들과 함께 책 만들고 글쓰고 기뻐하며, 그렇게 초당의 다산 선생을 따라 걷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