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아동학대 근절, 선생님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2020.07.02 15:02:42

이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

학대·가난·병… 아동이 절실한 도움 필요할 때 만나는 곳
안전권·주거권·놀이권 등 아동 권리 향상 위한 옹호기관


법률상 부모 ‘징계권’ 폐지 추진… 체벌 없는 훈육 필요
코로나발 사각지대 우려…학생 관찰 통한 학대신고 기대
인성교육 효과 큰 감사편지 쓰기 공모전 많은 참여 당부

 

 

“힘이 들 때 내가 너의 우산이 돼줄게”
 

우리는 종종 자신을 우산에 비유한다. 우산은 단순히 비를 막는 도구를 넘어 어려움과 난관으로부터 상대를 지켜주고 보호하는 중의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대표 아동옹호기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우산’도 같은 의미다. 둥근 우산은 비바람 등 위기로부터 모든 어린이를 보호하고 감싸 안는 ‘포용력’을, 우산대는 언제 어디서나 어린이들을 지지하고 꿈을 펼쳐준다는 뜻이다. 
 

2010년 부임한 이제훈 회장은 재단 명칭을 기존 어린이재단에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으로 바꾸고 이후 10년 동안 12만6000명이었던 정기후원자를 51만 명으로, 600억 원에 못 미치던 기금 규모를 1천700억 원대로, 3~4%였던 해외 사업 비중을 12%로 4배 이상 끌어 올렸다. 취임 10주년을 맞아 지난달 23일 서울 무교동 재단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재단의 규모와 인지도를 ‘폭풍 성장’시킨 공과에 대해 그는 “뜻에 힘을 합쳐준 직원 여러분과 한결같은 마음으로 도와준 후원자들 덕분”이라고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재단이 설립된 지 70년이 넘었다.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대의 아동복지재단이지만 아직 학교 현장에는 재단을 모르는 선생님, 학생들도 있는 것 같다. 간략히 소개해 달라.
 

“아동학대 피해를 받거나 갑작스러운 병으로 아프거나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 재능은 있는데 도움받을 곳이 없어 꿈을 포기해야 하는 아동 등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순간 만나게 되는 곳이 바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다. 어린이재단은 1948년 CCF(기독교아동복리회) 한국지부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현재 국내 163만여 명, 해외 75만여 명의 아이들에게 직간접적 도움을 주고 있다. 또 아동의 안전권, 주거권, 놀이권 등 권리 향상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과 옹호 활동을 펼치며 법과 제도 개선을 위해서도 앞장서고 있다.”
 

-결손아동 돕기 외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 같다.
 

“설립 초기에는 빈곤 아동 돕기가 주 사업이었지만 정부 재정상태가 좋아지면서 그런 역할은 점점 정부가 맡고 우리는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을 돕는 쪽으로도 눈을 돌렸다. 아동옹호 기관으로 목표를 정하고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우리 캠페인을 통해 지역에 놀이터를 마련하는 내용의 조례를 만든 지자체가 상당히 많다. 최근 “아이들에게 파란 하늘을 돌려주세요”라는 슬로건으로 시작된 캠페인도 비슷한 맥락이다. 미세먼지가 너무 많아 파란 하늘을 보기 힘든 아이들을 위해 다 함께 노력하자는 메시지다.”
 

-최근 경악스러운 아동학대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해결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재단은 2011년 ‘조두순 사건’을 이후 아동성범죄 공소시효 폐지 캠페인을 전개, 35만 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전달한 결과 13세 미만 아동 성범죄자의 공소시효 폐지를 이끌어낸 바 있다. 2016년부터는 ‘STOP! 자녀는 당신의 소유물이 아닙니다’라는 캠페인을 통해 인식개선에 앞장서오고 있지만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 재단은 현재 부모의 자녀에 대한 징계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법률상 ‘징계권’이라는 표현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학대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지 못하게 원천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체벌 없이 훈육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아동학대 근절에 현장 교사들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코로나19로 개학이 계속 미뤄지고 온라인 교육이 장기화되면서 코로나발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 교직원의 아동학대 신고가 1분기 632건이었지만 올해는 169건으로 73.3%가 줄었다. 선생님들이야말로 아이들의 상태 하나하나를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평소와 달리 우울해 보인다든지, 갑자기 학교에 안 나온다든지 등 이상 징후를 가장 빨리 감지하고 학대 여부를 신고할 수 있는 존재다. 앞으로 코로나발 사각지대에 대한 여러 추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가정폭력, 아동학대 신고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정황들을 빠르게 알기 위한 지역사회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또 아동의 경우 스스로 자신의 상황이 학대라고 판단 내릴 수 없는 경우도 있어 이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며 스스로 학대라고 판단 될 경우 선생님을 통해 신고할 수 있는 안전한 시스템도 마련돼야 한다.”
 

-전국 감사편지 쓰기 공모전이 올해 5회를 맞았다. 교총도 후원을 하고 있는데, 인성교육에 효과가 좋은 것 같다. 어떤 취지에서 시작한 사업인가.
 

“학교에서 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생님들이기에 더욱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교육 정상화 차원이라고 할까. 학생들이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생님이 존경받는 풍토가 생기면 학교는 더 달라질 것이다. 교사의 정당한 훈육도 못 참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늘어나면서 교권침해가 심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선 공교육이 있을 수 없다. 적어도 학교 안에서는 선생님이 더 책임을 지고 교육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 감사편지 쓰기가 이런 부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선생님 또한 얼마나 감동을 받겠나. 선생님이 존경받는 만큼 아이들을 더 사랑하고 살뜰히 보살필 수 있을 것이다.”
 

-재단이 활동을 넓히기 위해선 무엇보다 후원금 모집이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 정의연 사태 등으로 공익단체들이 역풍을 맞고 있다. 기부문화 발전을 위해 어떤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나.
 

“우리 같은 NGO 단체들은 후원금을 얼마나, 제대로, 올바르게 썼느냐, 즉 회계 투명성이 생명 같은 것이다. 정의연 사태는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지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들로는 회계가 투명하지 않은 것이 가장 문제다. 불투명한 회계에 대한 불신과 일부 단체들의 일탈행위들이 선량한 NGO 단체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로 후원자들도 자신의 후원금이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변화를 만들고 있는지 좀 더 관심갖고 지켜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오랜 시간 재임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나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2011년 중국집 배달일을 하며 매달 70만 원의 월급 중 10만 원을 기부했던 ‘철가방 우수씨’ 이야기가 기억난다. 고아로 자라 어려운 생활을 하다 결국 범죄로 감옥 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어린이재단에서 발행하는 잡지를 보고 본인처럼 어려운 환경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돕는 이야기를 보고 감동받아 출소 후 재단을 찾아와 아이들을 돕겠다고 했다. 본인은 고시원 쪽방에서 지내면서도 아이들 후원만큼은 꾸준히 했던 분인데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연고가 없는 분이라 재단에서 그분의 장례를 치렀는데 스토리가 알려지면서 대통령 영부인을 비롯해 국회의원, 시민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빈소를 찾아왔다. 이밖에도 일생 동안 김밥 장사를 하며 모은 돈 3억 원을 기부하고 본인 사후에 남는 5000만 원의 전세보증금도 재단에 기부하겠다는 유언을 남긴 박춘자 할머니 등 감동적인 사연들이 정말 많다.”
 

-교총도 장학안경 기증, 고려인 후손 돕기, 탈북청소년 쌀 기증 등 사회적 배려계층을 위한 다양한 교육 희망사다리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앞으로 양 단체가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많을 것 같은데.
 

“교총과 더 많은 협력을 기대한다. 어린이재단이 하는 일이 아이들을 올바르고 건강하게 키우는 일인 만큼 선생님의 도움이 절실하다. 감사편지 쓰기 공모전도 인성 함양 차원에서 하는 대표적인 사업인데, 인성교육은 학교에서도 많이 신경 쓰고 노력하는 부분이지 않나. 우리 같은 NGO 단체에서 선생님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깨닫게 하고 다양한 사연을 수집하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 교총도 이런 캠페인을 학교 현장에 잘 알리고 참여를 독려했으면 좋겠다. 이밖에도 기후변화, 미세먼지 등 환경 악화에 대한 교육을 함께했으면 한다. 지금 같은 방식이면 10년 20년 후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얼마나 비극적이겠나. 먼 미래를 생각하면서 아이들이 행복한 미래를 준비하는 일, 결국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매우 중요하다. 학교 현장에서 이런 교육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재단에서 하는 캠페인에 관심 갖고 함께 활동했으면 한다.”
 

-코로나19로 학교 현장이 매우 혼란스럽다. 끝으로 일선 선생님들께 당부하고 싶은 말은.
 

“아이들의 등교가 줄어들면서 선생님들도 교실의 빈자리를 느끼는 것만큼 학부모와 학생들도 선생님의 빈자리를 크게 느낄 것 같다. 코로나19 사태 앞에서 온라인 수업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가장 큰 변화를 몸소 겪고 있는 대한민국 모든 선생님들께 존경을 표하고 싶다. 대한민국 아동과 청소년들의 인성을 책임지는 최전선에 계신 선생님들이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고 확신한다. 어려운 시국이지만 코로나19 극복을 통해 일상을 되찾고 학생은 선생님에게, 선생님은 학생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따뜻한 학교생활이 우리 앞으로 다가올 날을 기대한다. 그때까지 모두 건강과 웃음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더불어 7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전국 감사편지 쓰기 공모전에 많은 참여와 홍보를 부탁드린다.”

 

이제훈 회장
△1940년 출생 △서울대 사학과 졸업 △중앙일보 편집국장 △중앙일보 사장 △한국 BBB운동 회장 △한국자원봉사포럼 회장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이사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회장 등

 

인터뷰=이재곤 편집국장
정리=김예람 기자 yrkim@kfta.or.kr

김예람 기자 yrkim@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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