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독자가 ‘공감’할 이야기 담았죠”

2021.09.09 15:32:10

스쿨 폴리스가 쓰고 청소년 작가가 그린
‘나와 내 친구를 위한 학교폭력 이야기’
실제 학폭 사례 모티브로 한 스토리…
Z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캐릭터 눈길
학폭 대처법과 처리 절차 쉽게 설명해

 

[한국교육신문 김명교 기자] 우리 사회가 학교폭력(학폭)을 사회 문제의 하나로 인식하기 시작한 지 10여 년이 지났다. 지난 2011년 한 중학생이 학폭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이때부터 학폭을 단순히 학생들끼리의 다툼 정도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인식이 퍼졌다. 학교전담경찰관(School Police Officer·SPO) 제도도 그때 만들어졌다.

 

하지만 학폭의 현주소는 어둡기만 하다. 매년 학폭 피해를 호소하는 학생이 늘고, 새로운 피해 유형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전담경찰관 이승은 울산북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경사는 “10년 전 그때처럼, 어른들의 관심과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경사는 최근 청소년 일러스트 작가 6명과 함께 학폭 예방 도서 ‘나와 내 친구를 위한 학교폭력 이야기(학교폭력 이야기)’를 발간했다. ‘오리 오린이’, ‘까마귀 남준이’, ‘알파카 알파고’, ‘해파리 세실·셀리나’, ‘외계인 민둥이’, ‘사막여우 호식이’ 등 캐릭터들이 대화하듯 학폭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른들의 시각에서 일방적으로 알려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Z세대의 취향과 관심사를 반영한 게 특징이다. 학폭 발생 시 대처 방법과 학폭 처리 절차 정보도 담았다.
 

‘학교폭력 이야기’는 울산북부경찰서(서장 진상도) 여성청소년계의 안심 학교 프로젝트로 기획됐다. 지역 학생들을 위해 경찰이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다가 아이디어가 나왔고, 책 출간 경험이 있는 이 경사가 집필을 맡았다. 그는 “‘내 친구 뽀로로’처럼 의인화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편하게 다가가고 싶었다”면서 “관내 청소년문화의집 웹툰 과정에 있는 청소년 작가들에게 협업 제안을 했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학생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먼저였어요. 경찰서로 초대해 사무실을 구경하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대부분 학폭 피해 경험이 있었던 터라 책의 기획 의도에 공감했고, 그 자리에서 참여하겠다고 결정했죠.”
 

이번 작업에 참여한 청소년 작가는 서보은(울산현대고 1학년·오리 오린이), 김미경(화봉고 3학년·까마귀 남준이), 이예원(효정고 1학년·알파카 알파고), 김정희(울산예고 2학년·해파리 세실과 셀리나), 오승혜(울산 생활과학고 1학년·외계인 민둥이), 지연주(울산애니원고 1학년·사막여우 호식이) 학생 등 6명이다. 
 

출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부분은 청소년 작가들의 의견이었다. 청소년 작가들이 캐릭터의 콘셉트와 이름을 정한 후 이 경사가 실제 학폭 사례를 모티브로 스토리와 콘티를 만들고 다시 작가들에게 그림을 의뢰했다. 이 경사는 “스토리를 짤 때도 미리 청소년 작가들에게 내용을 보내고 공감되지 않는 부분은 수정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면서 “주 독자인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고 공감하지 못하는 학폭 예방 가이드북은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작 중단 위기도 겪었다.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이라서 예산 지원 등 절차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 경사는 끝까지 작업을 마무리한 청소년 작가들을 위해서라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자비를 들여 편집하고 초판 10부를 인쇄했다. 울산교육청 장학사들에게 초판을 전달해 감수도 의뢰했다. 장학사들에게 “단숨에 읽을 정도로 재미있고 교훈적이다”. “청소년에게 충분히 권장할 만하고 감동적이다”, “울산 지역 모든 학교에 배포하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주변 학생들의 반응도 좋았다. 책을 읽고 나서 캐릭터 이름과 스토리를 줄줄 읊었다. 이후 울산북부경찰서 치안협의회와 울산지방경찰청 지역치안협의회에서 예산 지원에 나섰고, 울산 지역 학교 248곳과 유관 기관에 무료 배포할 책을 인쇄할 수 있었다. 청소년 작가들의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저작권 등록도 마친 상태다. 

 

까마귀 남준이를 그린 김미경 학생은 평소 좋아하던 조류를 캐릭터로 만들어냈다. “처음 디자인하면서 고민하던 시간이 제일 재미있었다”면서 “모든 사람이 좋아할 만한 그림체를 위해 열심히 그렸다”고 소감을 전했다. 
 

알파카 알파고를 작업한 이예원 학생도 “학폭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면서 학폭의 심각성을 더 알게 됐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알게 됐다”며 “오랜 기간, 많은 시간을 들인 그림이 실제 책으로 나온 것을 보니 신기하고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다. 
 

이 경사는 최근 발표된 학폭 실태조사 결과를 걱정했다. 울산 지역의 피해 응답률 자체가 지난해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피해 신고는 가족, 학교 선생님 순으로 했고, 학폭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이유로는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스스로 해결하려고’,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순으로 나타났다. 이 경사는 “학생들을 만나보면, 피해 사실을 주변에 얘기해도 소용없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얘기해도 도와주지 않는데, 경찰이 뭘 해줄 수 있냐고 물어요. 경찰에 신고하면 일이 커진다고 생각하더군요. 그래서 홍보하는 겁니다. 학폭 사건은 계속 일어나는데, 학생들은 도움을 청하는 것조차 힘들어합니다. 학교 안에 들어줄 사람이 많아져야 해요. 안 그래도 업무가 많은데, 학폭 업무를 선생님 1명이 담당하니까, 학생들과 충분히 라포를 형성하고 면담할 시간이 부족해요. 아이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한편, 이 경사는 블로그와 SNS 등을 활용한 학폭 예방 홍보에 나설 계획이다. 그는 “어른들의 노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낀다”면서 “책을 쓰는 데 사명감을 가진 이유”라고 귀띔했다.

김명교 기자 kmg8585@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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