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OECD 평균의 두 배를 넘는다. 하루에 36.1명이 자살한다. 그나마 최근 조금 감소한 것이다. 1990년대 초 만해도 최대 자살국은 일본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평균보다 낮고 영국과 같은 수준이었다. 영국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낮고 또 하락하는 추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995년을 지나 1997년에 이르면서 미국보다 높고 OECD 평균을 넘어 거의 일본 수준에 이르렀다. 2003년~2005년에는 10만명 당 23.7명으로 증가해 일본을 훨씬 추월해 버렸고, 2008년 이후에는 10만명 당 43.7명까지 증가해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1997년 일본은 최고점을 찍은 후 점차 하락해 이제는 OECD 평균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반대로 크게 증가했다. 1990년대 자살국이라는 일본의 오명을 이제는 우리가 뒤집어 쓰고 있는 형편이다.
왜 우리는 이토록 생을 포기하는 자, 즉 ‘생포자’가 많은가? 우리나라에서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하게 된 배경은 금융위기다. 흔히 외환위기라고 불리는 1997년 금융위기, 2002년 카드사태,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이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 가히 금융자살이라고 일컬어도 될 정도로 금융위기는 자살을 증가시켰다. 금융위기는 기업과 가계의 파산을 가져오고, 이로 인한 부채, 실직, 이혼, 삶의 만족도 저하, 우울증 등은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특히 그동안 고령층의 자살률이 높았는데 2019년을 기준으로 70대는 10만명 당 49명, 80대는 10만명 당 84.5명이 자살했다. 왜 이렇게 높을까?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우리나라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OECD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상대적 빈곤율(=전체 인구 중 중위소득의 50% 이하의 소득으로 생활하는 인구의 비율)은 2018년 기준 16.7%로 회원국 중 네 번째인데, 고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43.4%로 회원국 중 압도적인 1등이다. 거의 절반의 고령층이 빈곤 위험에 처해 있다. 고령층 가운데 공적연금을 받는 비율은 46%에 불과해 OECD 평균 약 63%에 한참 미달한다. 이렇게 어려운 처지에 몰려 있다 보니 질병에 걸리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경제적 어려움이 추가로 발생하면 쉽게 무너져 자살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높은 자살률은 좀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가장 높았던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영국과 미국의 자살률은 큰 변동이 없었다. 사실은 변동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안정적이었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게 되는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금융이다.
성장하는 경제에서 금융은 미래의 소득을 보장하는 수단이 된다. 예금은 예금이자를 낳고 주식은 배당금과 자본이득을 낳는다. 내가 일을 하지 않더라도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으면 기업이 수익을 낳고, 그 수익의 일부가 내 수익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2019년 기준 미국의 가계는 전체 자산의 71.9%를 금융자산으로 보유하고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은 28.1%만을 보유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가계는 전체 자산의 35.6%만을 금융자산으로 보유하고 64.4%를 부동산 등 실물자산으로 보유했다. 미국뿐 아니라 선진국일수록 대체로 금융자산 비중이 비금융자산 비중보다 더 높다. 국내에서도 최근에는 금융자산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낮고 과거에는 부동산 등 실물자산의 비중이 80%를 넘어 거의 90%에 이르렀다. 특히 현재에도 고령층일수록 금융자산 비중은 극히 낮다. 또 소득, 지역, 나이에 따른 금융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처지가 금융을 포기하는, 즉 ‘금포자’가 됐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정도다.
금융자산을 많이 보유한다는 것은 실직을 당하거나 은퇴를 하더라도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금융자산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노후 대책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후대비가 돼 있지 않으니 금융위기가 오면 ‘생포자’의 벼랑 끝으로 쉽게 내몰린다. 부동산 등 실물자산을 보유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부동산은 국민의 절반만이 자가로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고 가격 또한 지나치게 높아 상대적 빈곤율에 직면하고 있는 가계가 노후 소득을 위해 구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금융자산 비중을 높일 수 있을까? 금융을 알고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금융을 알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금융 공부를 해야 한다. 복리이자율, 주식수익률, 인플레이션, 위험분산, 장기투자 등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른이든 학생이든 수학을 포기하는 ‘수포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수학이 탄생하게 된 절반의 이유는 경제와 금융거래다.
수열, 지수, 확률, 통계, 미분 등이 모두 금융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는다. 그런데 요즘 고등학교에서는 수포자가 60%에 이른다고 한다. 금포자가 생포자가 되는 현실이다. 수학이 금융생활에서 갖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수포자가 되는 것은 스스로 금포자가 되는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생포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금포자가 되지 않아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수포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라이프&경제면이 올해부터 김자봉 한국금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함께 경제와 수학을 접목해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돕는 칼럼을 선보입니다. 또 구민수 경남 충무초 교사와 ‘알뜰살뜰 교사의 돈 공부’ 코너를 통해 선생님들에게 딱 맞는 금융정보를 제공해드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