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향과 추석

2023.09.22 10:07:18

지난 8월은 여름 날씨 치곤 참 고약했다. 그래도 고추밭엔 붉은 고추를 따는 아낙의 손길이 바빴고, 영감은 참깨를 떠느라 속옷을 적셨다. 9월이 시작되었다. 늦여름과 초가을이 공존하여 가을이라고 하기엔 이르다. 그래도 계절의 시간은 흐른다. 들판엔 조생종 벼 수확이 한창이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추석이다.

 

추석 하면 모두가 떠올리는 낱말이 고향과 부모님이다. 그러면 고향이란 무엇인가? 사전전적 의미는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다. 또한 주관적 이미지의 고향은 시골의 따뜻한 풍경이나 옛 친구의 모습들이 가득하고 조부모의 모습이 떠오르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고향 가는 길을 떠올려 본다. 지금은 승용차가 대중화되고 교통수단이 발달하여 큰 어려움은 없지만 6,70년대 고향 가는 길은 큰 인내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고향 가는 길은 먼 기억의 시간이 곳곳에 매복하고 불가항력적인 그리움의 불꽃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길이었다. 이러한 고향 가는 길의 정감을 요즘 삶의 양식에서 MZ세대에게 이입시키기는 어렵다.

 

나는 추석 하면 떠오르는 말로 기다림, 기쁨, 즐거움을 꼽는다. 기다림은 무엇을 담고 있을까? 추석을 준비하면서 아이, 자식, 부모 중에서 제일 손꼽아 기다리는 대상은 부모님일 것으로 생각한다. 인적 드문 촌 동네 햇볕 좋은 날, 마당에는 가을볕에 고추가 말라가고 골목엔 잠자리만 맴을 돈다. 사람 소리, 아이의 소리가 그리워진다. 이런 마을에서 뙤약볕에 땀 흘려 말린 고추는 5일 장날 포대에 넣고 구부러진 허리로 지탱하며 고추방앗간 앞에서 줄 서 기다리는 어르신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얼마만의 기다림 끝에 빻은 고춧가루는 참기름의 고소함까지 더해져 주름진 얼굴에 흐뭇함이 묻어난다. 이런 힘든 하루 여정이지만 버스 승강장에서 모인 또래의 어르신들은 자식들 자랑에 여념이 없다. 아마 추석날 자식들에게 내줄 고춧가루와 참기름을 생각하면 마음이 뿌듯하신 것이다. 언제나 부모님의 추석 기다리는 마음은 힘든 것은 뒷전이고 내 자식, 내 손주 한 번 볼 것이라는 기대감에 마음은 산너울 구름 꽃으로 피어난다.

 

추석 기분이 한껏 부풀어 오르는 날은 전날 만남의 기쁨일 것이다. 둥근 달이 떠 있는 토담 넘어 감나무 옆 작은 텃밭의 빨간 고추는 누이의 두 볼 닮아 예쁘게 익어가고 전 부치는 고소한 냄새가 모락모락 코를 간질인다. 만월은 아니지만 적막에 물들었든 촌 동네 개 짖는 소리가 잦아진다. 이제 동네는 사람 소리가 나고 곳곳에 자동차들이 늘어난다. 코스모스는 달 바람에 한들거리고 고향의 진한 향이 도회에서 온 자식들의 코에 묻어난다, 정말 즐겁고 기쁜 날이다. 이런 날엔 남정림 시인의 ‘송편’이란 시가 옛 추억의 커튼을 열게 한다.

 

“뭉게구름 퍼와서 흰 반죽 만들고/ 별빛 가루 모아서 고소한 소를 채워/ 초승달 송편을 만들어요// 정겨운 한가위 달빛 아래/ 그대의 초승달과 나의 초승달이 만나/ 보름달도 차오른 밀어를 나누어요//”

 

어떤가? 오순도순 모여 가족끼리 서로 못다 한 이야기하며 아쉬움과 반가움을 반죽하며 기쁨을 빚어내는 모습이 선하다. 귀뚜라미 풀벌레 소리 주위를 적시고 하늘 한 가운데로 움직이는 달이 마당 가득 기쁨을 채워준다. 이 행복감은 시간이 지나도 추억으로 각인되어 영원할 것이다.

 

 

추석 하루가 사위어 간다.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겨자빛 들녘이 포근하고 다정했건만 이제 모두 자신이 서 있는 자리로 향하는 오후는 왜 이리 서걱거리는 빛이 진해질까? 떠나는 자식들에게 부모님은 언제나 애달고 아쉽다. 마음 언저리에 있는 말만 던지고 지금까지 준비한 고춧가루, 참기름, 토란 말린 것, 추석 음식 등을 바리바리 싸서 트렁크에 담아준다. 부모는 더 많이 주고 싶지만 자식들은 못마땅해한다. 마트 가면 다 있는데 뭐라고 이렇게 하시는지 지청구다. 자동차 시동이 걸리고 다음에 또 올께요란 말만 남기고 횡 하게 사라진 골목을 한참 바라보신다. 달은 꽉 찼건만 자식과 손주들이 머물다간 자리는 횡 하다. 다시 마당에 적막의 달빛이 내려앉고 추녀 끝 창문엔 부모님의 기침 소리 아련히 들려온다. 돌아오는 길 자식들은 자동차 뒤로 멀어지는 부모님의 허리 굽은 세월 움푹 팬 주름살이 밟혀 마음이 아플 것이다. 이게 추석날 갖는 아쉬움이다.

 

추석 고향. 고향은 어머님 품속과 같이 삶이 지치고 고달플 때면 찾아가는 쉬는 안식의 공간이다. 그러나 이런 고향의 정감을 우리는 점점 잃어가고 있다. 디지털 미래화 시대에 도시인의 삶은 고향이 없다. 그냥 나그네들의 집합소와 같은 곳이다. 사르트르 하이데거는 고향은 인간존재의 진리라고 하였다. 그만큼 고향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근원적 가치가 매우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삶의 경쟁에 내몰린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있어 고향 집 추석의 의미는 만들어 갈 그리운 미래이다.

 

이번 추석에는 부모님께서 싸 주시는 것에 지청구는 그만하고,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시간이 아닌 마음을 보듬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추석 지난 고향 가을은 낙엽의 향기 속에 그리움의 고운 이야기는 수채화 되어 가을을 수놓고 연보랏빛 쑥부쟁이꽃이 논두렁을 덮을 것이다.

 

장현재 경남 남해 삼동초 교사 qwe85as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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