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고도 느린 교육개혁, 그럼에도 꾸준한 실천이 필요하다. 백약이 무효라는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국민 다수가 16년간 초·중·고·대학 학생으로서 지낸 기간과 학부모로서 자녀를 대학까지 보냈던 16년간의 경험이 누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교육에 관해서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전문가 이상으로 할 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해 간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교육만 느리게 변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그렇다고 교육이 빠르게 변화한다고 해서, 교육이 잘 이루어질 것 같지도 않다. 유·초·중등 교육기간은 어린이가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우리 교육이 나라를 살리는 근간이 되기도 하였으나, 최근 교육은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듯하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커짐에 따라, 내 아이만을 위한 좀 더 특별한 교육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내 새끼만 좋은 교육을 받아 제일 좋은 대학에 가고’, 졸업 후 돈 잘 버는 직업을 독차지하려는 풍토가 만연하고 있다. 소위 ‘내 새끼 지상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교육은 나날이 출세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가정의 온 자산을 총동원하여 내 새끼를 일류 대학에 입학시키려는 ‘몰빵 교육’이 우리 교육을 멍들게 하고 있다.
교육의 틀부터 다시 짜야 한다
누구도 미래에 대해 단정할 수 없다. 다만 다가올 미래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는 있다.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과 학교 체제를 혁신하는 동시에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과감히 제거하는 실천이 이루어진다면 말이다. 그 출발은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과감히 ‘제거’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학교교육이 정상에서 벗어난 지금이야말로 치열한 입시 경쟁을 넘어 ‘교육본질을 추구하고, 개개인을 존중하고, 공동체로서 함께 살아가는 교육’을 중시하는 교육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우선 교육을 시대에 맞게 ‘재개편’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학제는 초등 6년, 중학 3년, 고등 3년, 대학 4년의 ‘6-3-3-4’제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미군정기부터 시작하여, 1948년 이후 확정된 낡은 학제이다. 더구나 유아교육 3년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우리 학생들은 장장 16년의 교육을 받고, 필수처럼 여겨지는 대학원을 거쳐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 요즘처럼 사회 변화가 빠르고 새로운 지식이 폭증하는 시대에 16년 학제는 너무 길다. 16년이면 강산이 여러 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이다. 적어도 ‘1~2년이라도 학제를 단축’하고, 유아교육을 포함하여 교육기관의 재학 기간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학교 ‘교육과정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교육부 고시 문서로 시시콜콜하게 교육과정을 규정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난 코로나19 사태에서 ‘방역만큼이나 어려웠던 것이 교육과정 운영’이었다. 지식이 폭증하는 세상에서 이것저것 규제가 많은 교육과정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교육과정을 지나치게 자세히 기술할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 「초·중등교육법」처럼 기본적인 부분만 폭넓게 규정하여, 이를 바탕으로 학교가 스스로 적합한 교육활동을 구성하고 펼칠 수 있도록 자율성과 전문성을 부여해야 한다.
셋째, 교원의 진정한 ‘교육의 전문성’ 회복이 필요하다. 교사의 전문성이나 중립성은 교육활동이나 수업 중에 발현된다. 다시 말해 교사의 본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교사의 본질적 업무는 교육과정·수업·평가·생활지도·상담 그리고 공동체 지도력 등이다. 이를 반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사는 본업보다는 ‘교육활동과 관련한 행정업무’나 ‘교육활동과 관련 없는’ 업무에 치여 정작 수업을 준비하거나 충실한 수업 진행을 못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교육전문가인 교사가 전문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요하고 있다.
넷째, 교원의 진정한 정치적 중립성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 「헌법」에 교육의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현재 만 18세에 이른 고3 학생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으로 인해 교사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을뿐더러, 선거에 입후보하려면 사표를 내야 한다. 이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하는 교사를 정치적 금치산자, 반쪽 시민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다섯째, 지난 코로나19 이후 혼합 학습, AI 활용 교육, 쌍방향 원격수업, 전자칠판, IoT 활용 교육 등 다양한 수업혁신 방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라기보다는 지엽적인 개선’처럼 느껴진다. 일종의 유행을 좇는 듯한 인상도 준다. 따지고 보면 그리 새로운 경향도 아닌데 말이다. 현재 상황에서 활용 가치가 커진 것만은 분명하다. 첨단 기기를 활용하여 보다 더 질 높은 교육활동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여섯째, 방과후학교·돌봄·보육·청소년단체 등의 분야에서 지자체(지역사회)와의 협력사업이 더 많이 확장될 필요가 있다. 서울시 중구청에서 운영하는 ‘중구형 늘봄교실’이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서울시 중구청은 교육청과 협약을 통해 돌봄교실 설치와 운영 전반을 담당하기로 하고, 학교는 장소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지역사회 내 어린이들에게 질 높고 안전한 돌봄을 제공하고, 학교는 업무 부담을 줄여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상생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일곱째, 새로운 교육체제 마련을 위한 ‘교육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나 인력이 모여도 이를 담을 인프라가 부족하면, 파행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AI와 제4차 산업에 대비한 교육을 펼치고자 하여도 낡은 학교 건물, 와이파이도 제대로 터지지 않는 교실, 노후화된 방송실, 휴게 공간이 부족한 학교, 사각형 모양의 비좁은 교실, 비위생적인 화장실, 급식실에서는 불가능하다. 미래 사회에 대비하고 예기치 못할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교육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여덟째, 학교가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행하기도 바쁜 상황인데, 각종 ‘교육 밖의 법령에 따라 의무적으로 추가된 교육활동’도 있다. ‘범교과교육’이다. 도박예방·인터넷중독예방·저작권·독도교육·화재예방·통일교육·다문화교육·자살예방·학교폭력예방·가정폭력예방·진로교육·인성교육·장애인식개선교육, 성교육 및 성폭력 예방교육 등이다. 초·중등학교 분야가 아닌 타 부처 사업을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지도하거나 홍보해야 하는 상황이 빈발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학교 본연의 업무인 수업과 교육과정에 지장이 초래되고 있어 범교과교육을 축소하거나, 학교가 선택하여 지도하거나, 해당 당국에서 직접 홍보하는 형식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지자체와 지역사회’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서울특별시교육청과 서울특별시, 자치구 등이 함께 시행하였던 ‘서울형 혁신교육지구’와 같은 교육협치 사업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초·중등교육의 풍부화와 질적 제고를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을 바꾸기 위한 현장 중심 교육개혁안을 마련하고, 실천하고, 점진적으로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교육대전환으로 나가야’ 한다. 더 늦기 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