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두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서강대 총장)은 14일 이원희 교총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대교협 대학입학전형위원회와 실무위원회가 2012학년도 입시 방향을 연구하고 있어 내년에는 연구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기본적 방향은 점수위주의 선발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소질과 잠재능력을 고려한 선발방식을 확대해나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일부 대학이 2012학년도 입시 방안을 밝힌 것에 대해 “대교협 지침에 앞선 입시안 발표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언론의 정제되지 않은 성급한 보도로 수험생과 학부모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근 입시안 경쟁적 발표 성급… 수험생-학부모 혼란
입학사정관 확대 등 2012전형 기본안 내년 중 선보여
“3불 용어 의미 없어…‘점수’ 아닌 ‘다양한’ 선발 할 것”
이원희=고려대 고교등급제 논란이 언론 집중 보도 이후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는데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가 소극적이고 안이한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손병두=고려대 문제에 대해 저희가 신중하게 접근한 것은 입시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칫 입시중단으로 이어져 더 큰 문제가 발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입학전형이 종료된 후에 다루어나가는 것이 최선이겠다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지난 2월1일 언론을 통해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한 고려대 의혹이 다시 제기되어 당초의 일정을 앞당길 필요가 생기게 된 것이지요. 아직 모든 입시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입시일정이 마무리단계에 있다는 점도 고려되었습니다. 빠르면, 이번 주 중으로 윤리위원회가 개최돼 이 문제를 다루게 될 것입니다.
이원희=의혹을 분명하게 밝혀 다시는 이런 논란에 휩싸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12년 입시 자율화에 대해 벌써부터 말이 많습니다. 연세대가 대학별 고사를 치르겠다고 밝혀 ‘본고사 부활’ 논란이 있기도 했고, 고려대는 수능 5배수 1차 선발 후 학교장 추천과 활동경력 등을 반영해 뽑겠다고 했습니다. 대교협이 두 대학의 앞선 입시안 발표에 곤혹스러워 했다는 이야기도 들리는데요.
손병두=곤혹스럽다기보다는 개별대학에서 발표한 사항에 의해 마치 2012학년도부터 ‘본고사’가 부활되는 것으로 비칠까봐 걱정이 됩니다. 개별대학들이 입시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입시자율화가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입시에 대한 개별대학의 발표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2학년도 입시는 대학들 간 자율협의로 수립되게 되는 ‘2012학년도 입학전형 기본사항’에 적용을 받아 실시되게 될 것입니다.
이원희=‘2012학년도 입학전형 기본사항’이 나오기도 전에 대학들이 이렇게 입시안을 흘리는 것을 보면 대교협의 역할에 대해 대학들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도 합니다만.
손병두=물론 대학에서는 “이제 자율화인데…”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가 대입 자율권을 준다고 하더니 대교협이 간섭을 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도 교육부가 없는 대신 주마다 대학 연합체가 교육의 품질을 논의합니다. 입시는 워낙 중요한 문제니까 중지를 모으고 서로 보완해서 자율화 여건을 성숙시켜야 합니다. 만약 어떤 대학이 기본 안에 어긋나는 입시안을 내놓는다면 대교협은 윤리위원회에서 제재를 가할 것입니다. 현재의 대교협 권한으로도 유형적 제재 수단이 충분히 있으며 적절하게 발휘될 것입니다. 여기에 언론 등 무형적 제재까지 따른다면 대학들이 섣부른 입시안을 내놓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원희=그렇다면 대교협이 구상하는 2012학년도 입시의 틀은 무엇입니까.
손병두=입시는 이해관계가 많고 전 국민이 관련돼 있기 때문에 대교협은 정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2012학년도 입시는 입시자율화가 한 단계 더 진전된 상태에서 실시되는 것인 만큼 기본 틀을 마련함에 있어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현재 대교협 내부에서는 2012학년도 이후 입시 기본방향에 대한 연구를 수행 중에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수능이나 학생부 성적과 같은 점수위주의 선발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소질과 잠재능력을 고려한 선발방식을 확대해나간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이제는 점수로만 학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처럼 학교 추천이나 입학사정관의 종합 평가, 학생들의 에세이 등으로 인재를 뽑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원희=일부 대학들의 점수 지향 전형 안은 고교 교육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빚어진 측면이 크다고 봅니다.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에 따라 확대될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성은 이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무성이 수반돼야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입학전형에 있어 대학은 자율성 행사만큼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감소, 점수경쟁방식의 선발에서 벗어난 교육적 경쟁을 통한 인재양성 책무성을 다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입학사정관의 역할은 크다고 봅니다. 지난달 대교협 총회에서 회장님께서도 입학사정관제를 확대하겠다고 하셨는데 구체적 방안이 궁금합니다.
손병두=입학사정관(admission office)은 학생이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전형자료를 전문적으로 해석하여 대학이나 모집단위별 특성에 맞는 잠재력 있는 학생을 선발해내는 전문가입니다. 시골 학생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도시 학생에 비해 몇 점 떨어지더라도 이 학생의 학업성취도가 좋다면 수능만이 잣대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정부의 입학사정관 지원 예산이 대폭 늘었고 대교협도 입학사정관 교육 훈련 및 선진국 노하우 전수 등에 집중 투자할 계획입니다. 입학사정관제 성공의 관건은 전문가 훈련에 있습니다. 외국의 입학사정관과 교류하면서 전문적으로 훈련하고 지도해서 누가 봐도 전문가라고 인정할 만한 입학사정관을 많이 키워내는 것이 선진국형 입시의 지름길입니다. 현재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 대학들이 약 52개 대학인데, 정부의 재정 지원 확대와 대교협의 입학사정관제 운영을 통해 앞으로 더 많이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원희=사정관제도는 공정성과 윤리적 책임감을 갖춘 입학사정관을 확보, 제대로 육성하는 토대가 구축돼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대학에 대한 신뢰구축이 우선돼야 할 텐데요. 지금처럼 3불 폐지냐, 아니냐 등 소모적 논란이 계속되어서는 대학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고교와의 소통은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입시제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3불정책 등과 관련한 정제되지 않은 언급은 자제해야 한다고 봅니다. 회장님께서도 얼마 전 “3불 정책은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도입 되었지만 사실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제도”라면서 “폐지되거나 없앤다고 해도 아무런 부담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하신 것(4일 KBS1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민경욱입니다’)으로 보도되기도 했는데요.
손병두=저도 회장님과 생각이 같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3불을 폐지하거나 없앤다는 뜻이 아닙니다. 3불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는 현재에도 공교육은 아직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고, 사교육비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3불의 폐지 여부가 아니라 3불이라는 용어 자체가 입시 제도를 의미 없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학들이 수능이나 내신만이 아니라 학생의 소질과 잠재능력, 봉사활동 등 학생이 갖고 있는 전체적 능력을 평가해 선발하는 제도를 확대시켜나가게 되면, 과거와 같은 형태의 국영수 중심의 문제풀이식 시험이나 고등학교를 등급화 시키고 서열화 시키는 방식은 자연스럽게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아까도 지적했듯이 점수위주의 선발에서 벗어나 학생의 소질과 잠재능력을 고려한 다양한 학생선발방식으로 바꾸어나가겠다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원희=말씀하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대입 전형안 마련 과정에서 '고교-대학간 대입 협의체' 구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게 저희 교총의 시각입니다. ‘고교·대학간 대입 협의체’ 구성에 대해 대교협은 어떤 입장을 가지고 계시는 지 궁금합니다.
손병두=입시 문제가 대학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다양한 관련기관들이 모여 보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입시 제도를 만들어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저희 대교협은 지금도 입시의 기본 룰을 정함에 있어서 고교의 의견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대학입학전형위원회의 위원으로 시도교육감이나 고교 교장, 학부모 단체 등 중등교육 관계자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되고 있는 대교협법 개정안에 ‘교육협력위원회’ 구성 부분이 들어있는데, 만약 이 법이 통과되면 교총에서 생각하고 있는 ‘고교-대학간 협의체’ 구성은 자연스럽게 반영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원희=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교육협력위원회’ 구성에 있어 대학, 교과부, 교육전문가 뿐만 아니라 현장교원 및 교원단체 관계자, 학부모 등 다양한 관련 집단의 참여를 보장해 교육협력위원회가 공교육 정상화는 물론 대학과 고교, 학생․학부모간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회장님도 저희와 뜻을 모아주셨으면 합니다.
▶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전국 4년제 대학들이 학사, 재정, 평가 등에 대해 상호 협력하기 위해 1982년 설립한 협의체. 1984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법이 제정되면서 전국 4년제 대학의 총장을 회원으로 하는 법정 기구가 됐다. 회원 대학은 창립 당시 97개교에서 현재 198개교로 늘어났다. 현 정부의 대입 자율화 방침에 따른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그동안 교과부가 가지고 있던 대입전형기본계획 수립 권한이 지난해부터 대교협으로 넘겨졌다. 2009학년도부터 대교협 산하의 대학입학전형위원회(위원장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가 입시에 관한 사항을 총괄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대교협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입시 원칙을 어긴 대학을 제재하는 권한도 교과부에서 대교협으로 넘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