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도 교육예산 30조 원 중에서 유아교육예산은 2143억 원으로서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만3∼5세의 유치원 취원율은 30%에 불과하다. 유아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들의 50%는 사립 유치원에, 30%는 국공립 유치원에 다닌다. 나머지 아이들은 미술학원 등 유사 유아 교육기관에 다니고 있다. 이것이 세계 경제 규모 13위라는 대한민국 유아교육의 현주소다. 유아교육 공교육화 등 산재한 유아교육 문제에 대해 정혜손 국공립유치원연합회 회장과 이원희 한국교총 회장이 지난달 19일 의견을 나눴다.
부처이기주의, 사교육기관 밀려 ‘학교’ 명칭 못 찾는 게 말 되나
연령별 일원화 후 통합… 0세~만2세 보육시설, 3~5세는 학교로
“공립 취원율 50%로 늘리고 단설유치원 확대를”
이원희=일제잔재로 지적된 ‘국민학교’란 명칭은 광복 50돌을 맞은 1995년에 ‘초등학교’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일제 잔재인 ‘유치원’의 ‘유아학교'로의 명칭 변경 작업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정 회장님께서는 그동안 ‘유아학교’로의 명칭변경을 꾸준히 주장해 오셨는데, 명칭변경이 어려운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정혜손=유치원은 1897년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시작할 때 쓴 이름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유치원은 유아교육법에 근거한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유치원으로 명명되고 있습니다. 사회 각 층에서 일제잔재를 뿌리 뽑고 있는데 아직도 유치원이란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나라 유아교육의 현 주소를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만큼 유아교육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정부나 국민 모두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유아학교로의 변경을 2004년 유아교육법 제정 당시 보육시설에서 무척 반대했습니다. 사설학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라는 명칭 때문입니다. 그러나 학교를 학교로 명명하지 못한다는 것은 기초교육으로서 유아교육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도 학교라는 이름을 부처이기주의나 사교육기관 때문에 부르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를 못했습니다. 반드시 일제잔재를 뿌리 뽑고 유아교육법에 명시된 유아학교를 이번 기회에 찾아야 합니다.
이원희=정 회장님 생각에 공감합니다. 유아학교 명칭변경을 위해 뜻을 같이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유아교육은 전 세계적으로 무상교육화 되는 추세입니다. 0세부터 5세까지의 유아교육을 교과부로 일원화하는 것이 그 해답이라고 교총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안을 담은 ‘유아교육 발전계획 5개년’ 시안이 2007년 철회되는 등반대가 만만치 않은 것 역시 현실입니다. 국공립유치원연합회의 입장은 어떤가요.
정혜손=인적자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도 우리나라는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산 국가입니다. 앞서 저출산을 경험한 선진국의 경우 이원화된 보육과 유아교육을 통합해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로 일원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복지정책으로 유명한 스웨덴 정부는 1997년, 노르웨이는 2006년, 영국은 1999년부터 교육과학성으로 이관해 집중관리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 중 중국, 대만, 홍콩에서도 2006년을 전후해 영유아업무를 모두 교육관할 부처가 맞도록 제도를 바꾸며 유아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유아교육 정책은 한 마디로 풍랑에 이리저리 표류하는 배 같다는 생각입니다. 부처이기주의와 어른들의 욕심으로 시간을 낭비 하다가 15년~20년 후에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절박감이 우리 유아교육자들에게는 팽배합니다. 연합회 입장에서 교과부로 일원화하는 것에 적극 찬성합니다.
이원희=OECD(2001;2006)에서도 유아교육과 보육에 대한 통합된 개년과 정부의 체계적 접근만이 두 분야의 분리로 인한 중복과 갈등 및 혼란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국공립유치원연합회에서 이 문제의 해결방안도 제시하실 수 있다고 봅니다만.
정혜손=먼저 연령별 일원화 후 통합을 제시합니다. 한꺼번에 도저히 교과부로 통합이 어렵다면 연령별 일원화를 추진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0세~만2세까지는 보육시설에서 영아들을 잘 보육하고, 만3~5세까지는 유아학교로 일원화해 교육하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정, 교사제도, 서비스 기능, 재정지원 체제, 관리감독 및 전달체계 일원화에 대한 각종 사안들을 교과부에서 주도해 해결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최근 OECD국가들의 부처 통합 추세도 그렇습니다.
이원희=일부 학부모들은 흔히 ‘영어 유치원’이라 불리는 영어학원 등 사교육 시설을 선호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비용 부담과 시설 부족 등으로 유치원에 보내지 못하는 학부모도 여전히 많습니다. 공립유치원 취원율이 22%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나마 대도시에선 찾아보기조차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정혜손=맞습니다. 저출산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유아교육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어려운 경제상황에도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도시의 경우 17.7%만 국공립유치원이 소재하고 있으며, 나머지 82.3%는 중소도시, 특히 농어촌지역에 49.1%가 소재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취원 대상아수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역에 국공립유치원 수요가 공급초과 현상을 보이고 있어 국공립유치원 확대가 절실합니다.
이원희=그렇군요. 우선 취원율 확대가 필요할 거 같습니다.
정혜손=공립유치원의 취원율을 50%로 확대해야 합니다. 아직도 방치되고 있는 전국의 40%의 유아들을 국공립유치원에 취원 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는 공립유치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특히 대도시 지역에 학부모들이 원하는 질 좋은 교육과 저렴한 학비, 유아의 발달에 맞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공립유치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서울을 예로 들면 사립유치원은 750개원인데 비해 공립유치원은 137개원에 불과합니다. 공립유치원 들어가는 것이 로또 맞는 것보다 어렵다는 자조적 말들이 학부모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국공립유치원을 만3세부터 누구나 원하는 대로 걸어서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저출산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될 것입니다.
이원희=교총도 같은 생각입니다. 공립유치원 확충을 위해 어떤 방안이 있을 수 있을까요.
정혜손=신설되는 모든 초중고교 설립 시 부지를 확보해 공립유치원 설치를 의무화해야 합니다. 유아 발달에 맞는 단설유치원을 설립해 전공한 원장, 원감을 두고 학급 수는 초등학교 3개 학년만큼의 학급수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만3세나 만4세 유아들은 공립유치원에서 교육할 수가 없었습니다. 학급수가 적다보니 만5세만 가지고도 추첨을 통해 수없이 떨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사설학원은 일본처럼 오전 중 교습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학원은 말 그대로 학원입니다. 가장 중요한 기초교육인 유아교육을 학원에서 할 수는 없습니다. 교과부나 시도교육청 및 지역교육청에서는 더 이상 학원을 방치하지 말고 유사교육행위를 하는 곳을 철저하게 관리․감독해야 합니다.
이원희=단설유치원 설립 확대를 주장하고 계십니다. 대부분 초등학교 병설로 운영되는 국공립유치원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이유를 짚어주시지요.
정혜손=현재 대부분(국공립유치원의 98%)의 유치원이 초등학교 병설로 운영되고 있고, 초등학교 교장, 교감이 겸임 원장․원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에 유아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 수행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유아교육과 초등교육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전국에 단설유치원은 고작 2%인 101개원뿐입니다. 전공한 원감이 있는 곳도 340여 군데 뿐입니다. 초등학교와는 교육철학 및 교육과정, 수업방법, 물리적 환경, 아이들의 발달이 너무 다릅니다. 1976년 우리나라에 공립유치원이 처음 설립될 당시는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가로 발돋움 할 때입니다. 이제는 33년이 되어 공립유치원 역사도 성인기에 들어섰습니다. 말 못하는 어린 유아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됩니다.
이원희=교과부가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기초학력 미달 학생 해소 방안’으로 △학습보조 인턴교사 채용 △우수 교장·교원 배치 △미달 학생 밀집 지역 예산 지원 △학업성취 향상도를 지방교육재정 교부금 배분과 연계 등을 내놓았습니다. 학력 수준에 영향을 주는 ‘취학 전 교육’에 대한 대책은 빠져있는데요. 미국 오바마 정부도 이른바 아동낙오방지법(NCLB)의 보완책으로 유아교육에 대한 투자 강화를 천명한 바 있습니다. 정 회장님께선 어떤 대책이 필요하고, 요구되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정혜손=가장 중요한 것은 만3세부터 만5세까지 반드시 의무교육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중학교 의무교육이 10년에 걸쳐 완성되었듯이 10년이 걸려도 좋으니 도서벽지부터 의무교육을 시작해야 합니다. 앞서 이야기 드린 것처럼 유아학교로 개명도 해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모든 학교 급에 행․재정 투자 시에는 국공립유치원을 포함시켜야 합니다. 수석교사제, 원장 임기제, 교원평가 등등 유치원에서는 어린 유아들을 데리고 수업을 하고, 교재교구를 직접 제작하며 너무 힘든 시간들을 교원들이 보내고 있습니다. 교사 대 유아 비율을 낮추고, 보조 인력을 확보해 주며, 교원들이 본연의 임무를 할 수 있도록 행․재정 지원을 해주어야 합니다. 지방교육재정 교부금 배분 시 유아교육에 투자해야 하는 비율을 중앙정부에서 확인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의무교육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하는 것은 우리나라 기초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것입니다.
이원희=유아교육에 대한 정책이 바로 설 때 우리나라가 바로서고 저출산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정 회장님 말씀이 교총의 향후 활동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이 괜한 말이 아니듯 만3세부터의 교육이 그만큼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새겨야 하겠습니다.
▶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는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는 1996년 4월 20일 출발, 8000여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전문직 단체로 우리나라 국공립유치원을 대표하고 유아교육을 선도하고 있다. 참다운 인간교육을 모색, 실천하고 교원의 사회․경제적 지위향상과 권익옹호 및 제반 교육 여건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는 2004년 유아교육법이 제정되기까지 7년여 간 단결된 힘을 모으는 등 유아교육 현안에 대한 정책 건의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