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구개발 연계체제 운영센터가 주최하고 교과부 등이 주관한 교육정책 현장착근 우수사례 전국 발표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강원 평창 면온초등학교. 학생 수 급감으로 통폐합 대상이었던 면온초가 ‘전원학교’의 모델이자 산촌 명품 유학학교로 자리매김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떠나가는 학교’에서 ‘찾아오고, 머물고 싶은 학교’로 탈바꿈한 면온초의 혁신과정을 소개한다.
스노보드, 바이올린, 골프 등 25개 방과후 수업
지역커뮤니티, 교사 헌신으로 폐교 위기서 부활
# “그렇지, 그렇게. 오픈 스텐스, 클로즈드 스텐스. 그럼 이제 V자 턴을 연습해 볼까?”
12월 14일 오전 10시. 보광휘닉스파크에는 면온초 1학년 학생들이 담임 서희정 교사의 지도에 따라 눈밭에 구르고 넘어지며 열심히 스키를 배우고 있었다. 11월부터 스키수업을 시작한 왕초보 스키어들이지만 리프트를 타고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보이는 아이들의 얼굴엔 추운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스키와 스노보드, 골프와 테니스, 바이올린과 밴드. 그뿐이 아니다. 수영·글짓기·외국어 회화·사물놀이·연극·미술·피아노 등등…. 면온초에서 이루어지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은 무려 25가지. 서울의 유명 사립초등교도 하기 힘든 초호화 방과후 교육이 전교생 140명(유치원 포함)인 산골 벽지 초등교에서 진행되게 된 데는 서대식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의 정성과 노력이 숨어 있었다.
◆ 폐교 위기에 부임한 서대식 교장=면온초는 지난 2005년만 해도 전교생 21명에 불과했다. 강원도교육청은 봉평면의 봉평초와 통합을 추진했고 학부모들도 30년이 넘은 비가 줄줄 새는 교실에서 아이들이 복식수업까지 받게 되자 폐교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서대식(53) 교장과 허병(56) 교감이 부임한 것은 이렇게 폐교 주장이 한창이던 2006년 3월. 서 교장은 부임하자마자 학교 살리기에 나섰다.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은 다양한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 서 교장은 “누구나 좋은 교육을 하는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차별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25가지의 방과후 교실은 그렇게 기획됐다.
◆ 지역사회 인프라 활용한 방과후 교육=문제는 이 프로그램들을 지도할 교사와 강사진의 확보였다. 서 교장과 허 교감을 비롯한 교사들은 학교 인근의 민족사관고와 지역 내 레저휴양시설업체, 국립청소년수련원 등 여러 기관·단체들을 찾아다니며 학교 살리기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민사고 이돈희 당시 교장을 찾아간 서 교장은 민사고의 우수한 학생들이 산골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민사고는 매주 2회씩 학생 30여 명을 보내 방과후 시간에 아이들의 영어와 과학 지도를 맡아주고 있다. 휘닉스파크는 골프장과 스키장·숙박시설을 무료로 제공해 특별활동을 도왔다. 청소년수련원과 무이예술관에서는 수영장 무료 이용 등 체험학습과 예능활동을 지원했다.
서 교장은 “책임자를 만나 사정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다시 찾아가고, 도와주신 분들께는 감사 편지를 써 후원을 이어가고 있다"며 “산골이라는 입지조건에 맞는 교육과 지역사회 인프라 구축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교사들의 열정은 학업성취도도 향상시켰다. 단 한 명의 기초학습 부진아도 없을 뿐 아니라 지역대회 입상도 어렵던 아이들이 전국 영어 및 그림 경시대회를 휩쓸기 시작했다. 취미로 시작한 스노보드·골프·스키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강원도 대표인 스노보드팀은 각종 대회에 참가, 한해에 40~50개의 메달을 쓸어 담고 있다.
◆ 서울에서 유학 오는 명품 전원학교=면온초의 변화는 입소문과 함께 대도시에서 전학 오는 학생들의 숫자로 ‘명품’임을 증명해냈다. 2005년 21명에 불과했던 학생 수가 올해 140명으로 7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대부분 서울과 경기도·경상도·전라도 등 외지에서 온 아이들이다. 서 교장은 “전학 오려는 학생은 많지만 주택 등 한계가 있어 다 받아주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3학년 윤덕희·동희 쌍둥이 형제는 “2년째 배우고 있는 바이올린이 너무 재미있다”며 “태권도, 만화그리기 등도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면온의 아이들은 평균 5개 정도의 방과후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유치원 학부모이자 방과후 교사를 하고 있다는 이은희 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육기능이 탁월하고 좋은 프로그램을 선택적으로 배울 수 있어 저도 아이도 이사 온 것에 만족한다”며 “미술·골프·밴드 등 학부모 프로그램도 다양하다”고 자랑했다. 아이들에게 전원생활을 경험하게 하고 싶어 농촌행을 결심했다는 김경아 학부모는 “두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큰 아이의 졸업 후가 걱정”이라며 “교육청이나 군에서 중학교까지 걱정 없이 교육받을 수 있도록 연계교육에 신경을 써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 교과부 선정 전원학교의 모델이자, 교육정책 현장착근 우수사례 대상을 수상하면서 재정에도 여유가 생긴 서 교장은 지금 구석구석 낡은 학교 리모델링에 분주하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무엇보다 건물의 외관. 주변의 아기자기한 펜션들과 조화를 위해 연핑크와 아이보리의 파스텔톤으로 새 단장한 학교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태기산 자락과 어우러진다.
부임 이후 4년 간 이뤄낸 이 모든 성과가 교사와 학부모, 지역주민의 덕분이라는 서대식 교장은 “이제는 내실을 다져 학생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학교로 가꿔가는 것이 과제”라며 이렇게 말을 맺었다. “농촌 학교는 다양한 장점들이 있어요. 학교 주변의 산과들 모두가 훌륭한 자연생태 체험장이지 않습니까. 결코 학생 수만으로 학교의 존폐를 판단할 일은 아니지요. 지역사회의 협력을 이끌어내면 학교도 살아나고, 지역 경쟁력도 강화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