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1년 늦게 졸업해도 제대로 배워야죠”

2012.05.30 19:01:08

공교육 신뢰…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유급제 엄격

네덜란드는 학교 교육이 학부모들로부터 전적으로 신뢰를 받고 있어 사교육이 전혀 자리를 잡지 못하는 나라다. 교과서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이유로 집에 가져 가지 못하도록 돼 있어 초등학생들은 아예 책가방도 없다. 그런데도 학생에 대한 평가는 철저히 이뤄져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엄격한 유급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8년 과정으로 통합돼 있다.

유치원은 만 4살(groep 1)부터 시작하는데, 글자나 숫자는 배우지 않는다. 유아교육의 목적은 놀이를 통해 양보, 협동, 나눔을 배우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들은 평소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아주 꼼꼼하게 살펴보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는 유급대상으로 평가된다.

본격적으로 글자를 배우고 공부를 하게 되는, 초등 1학년(groep 3)부터는 학업성적이 유급 여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교사들은 쪽지시험, 구두시험, 발표 등을 근거로 학생의 학습능력을 평가한다. 학년말 대다수 과목이 6점 이하일 경우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해 유급대상으로 판단한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는 대부분 반별로 두 명의 교사가 공동 담임을 맡게 돼 유급을 결정할 때도 두 교사가 충분히 논의한 뒤 신중하게 결정한다. 특히 초등학교에서는 학생이 그 학년에서 충분히 학습할 능력이 있는지를 고려한다. 같은 학년에서 두 번 이상 유급대상이 되면, 일반 학교보다 수준이 다소 낮거나 학습 진도를 늦게 진행하는 다른 학교로 옮겨 학생의 수준에 맞는 교육을 받게 된다.

부모들은 이 같은 유급제도와 교사의 판단을 수용하고 있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가 전부이기 때문에 교사가 누구보다 학생을 잘 안다고 믿는 것이다. 또 1년에 4차례 걸쳐 교사와 만나는 ‘10분 면담’을 정례화해 유급 여부를 통보받기 전에 학부모가 이미 학생의 성적과 태도 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어 교사의 판단을 존중할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유급제도가 더 엄격하게 시행된다. 중등교육은 보통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이 통합돼 있다. 그러나 학교에 따라 6년제, 5년제, 4년제로 나뉜다. 인문계(VWO)는 6년제, 보통 중·고등학교(HAVO)는 5년제, 직업계(VMBO)는 4년제로 운영된다.

중·고등학교 과정에서는 1년에 4차례 고사와 쪽지 시험, 보고서, 구두시험 등의 수행 평가 결과가 성적에 반영된다. 이렇게 산출된 학년말 성적을 종합해, 3과목 이상이 6점 이하면 역시 유급대상이 된다. 같은 학년에서 두 번 이상 유급당하면 한 등급 아래의 학교로 전학을 가야만 한다. 따라서 학생들은 다음 학년에 올라가기 위해 스스로 알아서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다.

대학에서도 유급제도는 엄격하다. 네덜란드의 학문중심 대학(WO)은 1학년 때 모두 60학점의 전공 학점을 이수하도록 돼 있다. 1학년 신입생과정을 프로페듀우스(Propeduese)라고 부르고 60학점을 이수한 학생에게 “P” 자격증을 주는데, 이 자격증은 대학에서 공부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인정하는 자격증이다. 60학점을 다 이수하는 학생이 너무 적어 42학점만 따면 1학년을 통과할 수 있도록 했음에도 불구하고 1학년 낙제생이 절반에 이른다. 일부대학은 42학점을 얻지 못한 1학년 학생에 대해, 그 대학에서 3년 동안 같은 학과를 공부하지 못하도록 하는 엄격한 규제까지 도입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네덜란드에서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유급제도를 통해 학생에 대한 평가를 엄격하게 시행하고 있다. 이런 유급제도의 목적은 학생을 탈락시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 개인의 기초교육능력을 충분히 검토해 부진한 학생들은 한 등급 낮은 학교에서 수준에 맞는 배움의 기회를 얻도록 하는 데 있다.
 
이 같은 유급제도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유급에 불만을 품고 항의하는 학부모나 학생이 거의 없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곳 학부모들은 비록 자녀가 유급대상이 돼 1년 더디게 학교를 다닐지라도, 그 1년이 자녀에게 더 유익한 시간이라고 믿는 것이다. 교사의 전문적 판단을 믿고 자녀를 맡기는 것이다. 이처럼 학부모와 교사가 서로 신뢰하는 교육이 자리 잡고 있어 네덜란드 학생들은 사교육 부담 없이 공교육에서 마음껏 교육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정현숙 ‘공교육 천국 네덜란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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