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사건 부부·가족캠프, 부모교육 권유…양육협력관계가 관건
소년사건 무조건 처벌보다 교육통한 사회복귀, 맞춤 처분 필요
“모든 해답은 가정교육 기능을 살리고 학교와 소통하는 데 있다.” 안양옥 한국교총 회장과 김용헌 서울가정법원장은 대담 내내 ‘가정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가정붕괴와 가정해체 현상이 심화된 지금, 온 사회의 뜨거운 화두가 된 학교폭력, 비행 청소년, 나아가서는 사회의 문제들도 난제 같지만 결국 가정의 교육력 회복이 근본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학교폭력과 교권붕괴로 인한 학교위기가 이제는 더 이상 학교만의 위기가 아니라는 데도 인식을 같이했다. 안 회장은 “최근 학생인권조례 등으로 교권침해가 빈발하고, 검찰이 학교폭력을 방조했다며 담임교사를 직무유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는 등 교원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교육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사회 각계가 교권수호를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사법부도 특히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김 법원장은 “학교의 위기는 곧 국가의 위기”라며 “학교폭력 문제는 무엇보다 교육계와 법원, 수사기관 등을 아우르는 유관기관의 전 방위적인 협조체계가 구축될 필요가 있는 만큼 가정법원도 이에 일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안 회장 “효과적 학생지도 위해 학교도 가정환경 이해해야”
김 법원장 “사법부 후원·복지기능까지…가족해체 줄이려 노력”
안양옥(이하 안)=학교폭력과 교권붕괴로 인한 학교의 위기가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됐다. 지금의 학교위기는 이제 학교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다. 교총이 나서 ‘교권수호를 위한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열고 사회 각계에 교권수호 동참을 호소했지만, 이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과 관심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김용헌(이하 김)=안 회장님 말씀처럼 학교폭력과 교권붕괴는 곧 우리 사회와 국가 차원의 문제다.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성장해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사회와 국가의 발전의 기본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안=김 법원장님께서 생각지도 못한 큰일을 하시더라. 가정법원의 ‘폭력 없는 학교 만들기 학교장 연수’에 참여한 서울 학교장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들었다. 특히 통고제 안내와 소년부 판사와의 간담회가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학교폭력 해결에 법원도 동참하고 노력하신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나.
김=지난해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당시 보도된 유서 내용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학교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더 심각했고 소년보호사건을 전담하는 법원으로서 책임감을 느꼈다. 법원도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보고, 적극적인 대응책을 찾아 나선 것이다. 교장연수는 2차례 했는데 첫 번째 연수의 반응이 좋아 참여 교장수가 50명에서 230여명으로 대폭 늘었다. 학교폭력 문제에 가정법원의 통고제를 활용하도록 안내하고 있으며 적극 지원할 생각이다. 그 외에도, 교원 대상 직무연수에 소년부 판사들이 출강하고 있으며 일선 학교에서 가해 학생 및 부모에 대한 특별교육명령을 이행할 때 법원이 적합한 기관을 추천해주는 등 협력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안=법원장님 말씀대로 학교폭력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통고제가 주목받고 있지만 아직 학교에는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통고제를 학교에서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겠나. 또 통고제 외에 학교가 가정법원의 도움 받을 것이 있다면.
김=학교폭력의 징후가 포착되면 학교에서는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확고한 자세가 필요한데, 이 경우 학교에서 자체 해결이 어려운 가해 학생은 소년법에 따른 통고제를 활용해 가정법원에 통고하면 좋다. 법원이 교육적 차원에서 적절히 개입해 조기에 해결할 수 있으며 비행교정을 위한 각종 보호처분을 신속히 내릴 수 있다. 통고사건의 처리와 관련해서는 법원과 일선 학교 사이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 적극적인 상호 협력도 요구된다. 또 청소년참여법정도 학교에서 활용하면 좋다. 또래 청소년으로 참여인단을 구성해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하게 하는 제도인데 비행소년과 참여인단으로 참여한 청소년 모두에게서 큰 호응을 얻고 있으며 공감능력 향상 등 교육적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비교적 경미한 비행이나 교칙 위반에 대해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자치법정이나 또래 조정 등을 시행하면 좋을 것 같다.
안=지난해 대검찰청이 발간한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소년범은 2009년 11만3022명, 2010년 8만9776명으로 한 해 평균 10만 명에 달한다. 소년 범죄자 가운데 재범자·전과자 비율도 높아지는 추세다. 소년사건을 다루시는 만큼 법원장님은 비행청소년 문제에 대해 남달리 고민이 많을 것 같다.
김=소년사건은 대부분 가정환경이 열악하거나 가족과 학교로부터 소외돼 따뜻한 사랑과 정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법원에서는 소년보호재판을 하면서 환경과 심리상태를 개선시켜 소년들의 비행성을 감소시키려고 청소년참여법정, 화해권고제도, 심리상담조사제도, 보호처분 전 교육명령 등 새로운 제도들을 실시하고 있다. 소년범의 재범 증가도 말씀하셨는데, 형사처벌은 낙인효과와 범죄교육 효과 때문에 계속 범죄자의 길로 가게 만드는 효과가 있고 청소년의 경우에는 더 폐해가 크다. 소년범에 대한 형사처벌과 보호처분의 집행과정에서 소년범이 사회에 잘 어울려 들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특히 각각의 청소년들에게 합당한 맞춤형 처분이 요청된다.
안=소년범의 복귀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법원장님 말씀에 일리가 있다. 교육적인 지도로 잘못을 바로잡고, 다시 학교에 복귀해 잘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 아닌가. 하지만 학교폭력 근절 대책은 가해 학생 등의 문제청소년의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교원들의 교육적 노력과 지도, 인내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사안까지도 처벌만을 강조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무조건 죄를 물을 것이 아니라 학교, 학부모, 사회가 나서 교육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김=학교폭력 등으로 생기는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런 청소년을 온정적으로만 대처할 수 없는 한계도 분명 있다. 일종의 과도기적 충격요법으로 지금은 ‘학교폭력도 범죄’라는 확고한 인식의 전환을 갖게 하고, 가해 학생에 대한 엄정한 조치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인성·예절교육을 강화하는 등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청소년은 정신적으로 아직 미성숙한 상태이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며,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존재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가정에서 보살핌을 주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가 나서서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법원장님 말씀에 공감한다. 교총에서도 학생들의 인성을 키워야 근본적으로 모든 학교·사회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고 300여개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인성교육실천 범국민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사회 각 분야별로 실천 의지를 다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가정의 ‘밥상머리 교육’을 되살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1000쌍 당 9.4쌍 정도가 이혼하고, ‘가족 해체’, ‘가정 붕괴’라고 불릴 정도로 가정교육이 계속 약화되고 있다. 특히 이혼 자녀들의 교육문제도 걱정이다.
김=가족 구성 방식이 다양해지고 이혼에 대한 사회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는데 어쩔 수 없는 사회의 변화라고 본다. 가정법원은 전통적인 사법기능에 머물러서는 제 소임을 다 하지 못하고, 여기서 나아가 후견·복지기능도 수행해야 한다. 이에 따라 법원에서는 부부캠프나 가족행복캠프를 개최하는 등 가정의 해체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는데 미성년 자녀의 양육 문제와 이혼 후의 적응 문제 등 복지적 측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판결보다는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해결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이미 이혼의 합의가 이루어졌더라도 부부상담 또는 부모교육을 받도록 권유하는 등 화목한 가정을 회복하기 위해, 이혼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안=가정법원에서 최근 양육비 산정표를 제정해 공표한 것으로 안다. 1963년 설립 이후 처음이라고 하던데 재판에 따라 천차만별로 혼선을 빚던 양육비 산정에 기준이 마련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혼으로 인한 자녀 양육의 문제점 등의 부작용을 줄이는 데도 일조할 것 같다.
김=양육비 산정기준표를 제정·공표한 것은 이혼 가정의 신속한 자립을 도와주기 위해서다. 양육비 산정의 통일화 및 안정적 지급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도 함께 모색하고 있다. 이혼 가정 자녀가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고, 나아가 비행의 길로 빠지기 쉽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가 이혼 후에도 부모로서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 즉 ‘협조적인 양육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청소년이 가정 내에 강력하게 통합되는 것이 가장 좋은 비행 예방책이기 때문이다. 우리 법원에서는 이혼절차 자체에서 협조적인 양육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문조사관이 출장조사를 나가 양육환경을 점검한 뒤, 필요한 경우 부모-자녀에 대해 심리상담을 하고 있으며 이혼절차에 대한 상담과 조사관에 의한 부모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안=이혼해도 부모가 합심해 자녀를 양육하도록 돕는 법원의 활동이 인상적이다. 학교에서도 문제 학생 지도를 위해서는 가정환경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한데 촌지 등으로 인해 가정방문이 폐지된 것이 아쉽다. 여기에서 가정방문은 교원들이 문제학생의 가정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보다 심층적으로 파악하고 지도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실천적 인성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사실 그다음 문제 아닌가.
김=옳은 말씀이다. 일차적으로 ‘가정의 교육력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법원의 후견·복지적 개입은 질과 양에 있어서 큰 발전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학생들에게 화목하고 평화로운 삶의 보금자리, 안전하고 행복한 학교를 보장해 줄 수 있도록 가정법원과 교총이 협력해 나가자. 학교장 연수도 더 실효성 있게 만들고, 자치법정, 또래 조정 등이 학교에서 활성화할 수 있도록 법원이 적극 지원하겠다.
안=교총도 통고제를 학교현장에 적극 알리는 등 법원과의 협력을 통해 우리 교육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가도록 노력하겠다. 사법부 차원에서 학교폭력 문제와 교권수호에 더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달라.
■ 김용헌 법원장은…“문턱 낮춰 친근한 신뢰 구축”
김 법원장은 법원이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 길이 끊임없는 ‘소통’임을 강조해왔다. 이에 따라 법원의 문턱은 높고,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편견을 깨고 친근한 법원 만들기를 위해 노력했다.
서울가정법원장 부임 초 가정법원은 애절한 사연과 가슴 아픈 상처의 당사자들이 많이 찾는 법원인 만큼 법정에서의 언행에 각별히 유의하고 상처를 보듬어줄 온화한 분위기에서 재판을 하자며 판사들이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 할 사항들을 요약해 ‘가사소년법관 18조’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당사자의 발언을 끝까지 진정성을 갖고 경청하자’, ‘후견적·복지적 자세로 재판에 임하자’, ‘가사분쟁은 합의에 의한 마무리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등의 내용을 담았다. 국민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서울가정법원 판사들의 재판 소회를 담은 에세이집 ‘사랑을 꿈꾸는 법원’을 발간하기도 했다.
서울보호관찰소에서 주최한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청소년 대상 수강명령 프로그램에 가정법원장으로서는 처음으로 강연하기도 했으며 ‘폭력 없는 학교 만들기’ 학교장 연수에도 직접 참여 하는 등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직접 발로 뛰어 문제를 해결해왔다.
1955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울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20회 사법시험(연수원 11기)을 거쳐 1981년 판사로 임명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수석부장판사와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등을 역임하고 2010년 대전지방법원장을 거쳐 2011년 2월 서울가정법원장이 됐다. 민·형사는 물론 행정 분야 소송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