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다문화’라는 말 안 썼으면…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할 아이들”

2016.01.06 15:16:07

중도입국학생 예비학교 전남 청계초 윤재림 교사

말 안 통하는 중도입국 아이들
1년여 가르쳐 취학 돕는 역할

나부터 중국‧태국어 배워 대화
함께 등‧하교, 가정방문 예사
시장, 공원 나가 생활언어 체험

살아야 하니까…습득도 빨라
‘ㄱ’도 모르더니 금세 카톡도

예비학교 적어 장거리 통학,
이중언어강사 부족해 아쉬워

다름 존중하는 게 다문화교육
인성교육 차원서 계속 할 것




방학이라 학교는 한산했다. 윤재림 전남 청계초 교사는 수업 중이었다. 학생은 단 둘. 우리나라에 중도입국한 다문화가정 아이들이다. 베트남에서 온 두 학생은 오늘 결석했다. 윤 교사는 “이 아이들은 한국어가 부족하기 때문에 방학에도 보충 수업을 한다”며 “이런 아이들을 위해 학교에 설치된 ‘예비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우리학교 학생에게 다문화교육을 하는 것이 주된 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 학교 다문화 학생은 총 14명으로 8.7%다.

-다문화 학생이 보통보다 많습니다.
“우리학교는 2012년에 글로벌선도학교로 지정되면서 중도입국 학생 대상의 예비학교와 전교생 대상의 다양한 다문화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국내출생도 늘고 있지만 중도입국 학생들의 편입학으로도 다문화 학생이 매년 2~3명씩 증가하는 추세예요.”



-이런 활동은 얼마나 해오셨습니까.
“4년 정도 됐네요. 제 교직경력이 4년 6개월이니, 다문화교육과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글로벌선도학교 모집 공문을 보고 계획서를 썼는데 선정된 후부터 업무를 맡아 지금까지 몸담게 됐어요.”

-예비학교란 무엇입니까.
“한국어를 못하는 중도입국 학생들이 일반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방과 후 위탁, 편입학의 방식으로 한국어교육과정(KSL)을 제공하는 것을 말해요. 전남에는 우리학교를 포함해 초등 3곳, 중학 1곳, 고교 1곳의 예비학교가 있습니다. 1년에서 1년6개월 정도 한국어를 배워 수업을 따라갈 수준이 되면 다시 가정 인근의 학교로 돌아갑니다.”

최근 교육현장에 언어‧문화적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남 내 다문화가정 학생 수는 총 5994명으로 전체 학생의 2.4%를 차지했다. 때문에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과 문화체험을 통해 한국사회에 적응하고 자아정체감을 확립할 수 있는 조기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청계초 같은 예비학교가 바로 그런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데… 교육이 쉽지 않겠습니다.
“멘땅에 헤딩이었죠. 도입 초창기일 때라 경험이 없어 연수도 받고 백방으로 자료도 구했어요. 의사소통이 안 되니 간단한 중국어나 태국어를 공부해 대화의 물꼬를 텄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친해지려는 노력이었어요. 수업에서는 쓰기, 읽기, 몸으로 써보기, 교구 활용하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해요. 모음과 자음을 떼는 데 보통 한 달 걸린다는데 우리 학생들은 어려서 그런지 습득속도가 빨라 보름이면 돼요. 물론 다음부턴 어려워져서 진도가 들쭉날쭉 하지만요.(웃음)”

-빨리 배운다니, 보람 있겠네요.
“의지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학생들은 믿을 곳이 저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제 말은 정말 잘 들어요. 또 앞으로 살아가려면 한국어가 필수니, 열의가 있어서 빨리 배우는 것 같아요. 한국어를 하나도 몰랐던 녀석들이 이제는 모르는 단어를 사전에서 척척 찾아내고 카카오톡도 보내면 정말 뿌듯해요.”

-주로 어느 국가에서 오나요.
“정말 다양해요. 영국에서 온 세자매 학생을 방과 후 위탁으로 받아 매일 데리러 가고 가르친 후 다시 집으로 바래다주느라 힘들었던 적도 있고요. 중학교에서 입학을 거부당해 우리학교로 온 16살 태국아이. 1년 동안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실력이 늘지 않던 18살 여학생은 결국 특수학생으로 판정받아 모두를 놀라게 한 적도 있었네요.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학생들이었습니다.

-멀리서 통학하는 학생도 있습니까.
“안 그래도 그 부분이 가장 걱정입니다. 안전문제 때문에요. 학교는 무안인데 목포시에 사는 애들만 세 명이고, 더 먼데서 오는 경우도 있어요. 1시간씩 버스타고 혼자 통학하는 게 안쓰럽죠. 처음엔 부모님이 익숙해질 때까지 동행해주지만 아직 어린 학생들이라 버스를 잘못타서 외딴 곳에 떨어진 경우도 있었어요. 아찔하죠.”

-학생들에게 상당히 손이 많이 가겠습니다.
“학업뿐만 아니라 생활적인 면까지 일정부분 챙겨요. 등교 둘째 날까지는 함께 버스 타고 가서 가정방문도 하고요. 편입학생은 담임선생님과도 수시로 협조해요. 한 달에 두 번 체험학습도 가요. 생활한국어를 바로 응용해볼 수 있게 하는 거죠. 문구점에 가면 ‘몇 개’, 동물원에 가면 ‘몇 마리’를 쓴다와 같은 개념을 써보면서 몸에 익히게 도와요.”

-제2의 담임 같습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도 있나요.
“우리 정서와 달라서 생기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한 번은 아이가 의사소통도 안 되는데 고집을 부려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나가라고 했어요. 보통 이런 경우 잘못했다고 하면서 버티잖아요? 그런데 그냥 교실을 나가버리더군요. 당황해서 얼른 데려와 달래줬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 차원에서는 어떤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나요.
“우선 다목적교실을 다문화교육 전용 공간인 ‘다솜교실’로 리모델링했어요. 각종 놀이, 의복, 음식, 영상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여러 활동을 합니다. 이밖에도 외국인과 함께하는 문화교실, 5월 20일 세계인의 날 체험주간, 전교생 벽화 그리기 프로젝트 등도 있고요. 또 친한 친구 3남매 동아리라고해서 다문화 학생과 일반 학생이 어우러져 여러 활동을 같이합니다. 인근 대학생들과 1:1 멘토도 맺어주고요.”

-상당히 다양하네요. 시행착오도 겪었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초반에는 다문화 학생과 일반 학생을 따로따로 교육했었어요. 그랬더니 아이들 사이에서 ‘왜 저 아이들만 따로 해주냐’는 불만이 나오더라고요. 본의 아니게 학교에서 편 가르기를 한 셈이었죠. 이제는 어떤 프로그램이든 전교생이 참여토록 하고 있어요.”

-힘든 점은 없었습니까.
“무엇보다 다문화가정 학부모들의 참여를 이끄는 게 쉽지 않아요. 학교에서는 나름대로 설명회도 준비하고 축제 등 행사를 하면 여러 나라 놀이, 음악을 준비해 친숙해지도록 신경 쓰는데 주로 일을 나가셔서 많이 못 오시니 안타깝죠.”

-교육부나 교육청 지원은 충분한 편입니까.
“최근 다문화 학생이 급증하면서 교육당국에서도 관심이 높아진 것 같아요. 예산도 충분히 지원되는 편이고 컨설팅 지원도 받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중언어 강사가 보다 늘어났으면 해요. 일반학급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우니 이분들이 옆에서 한국어 및 모국어를 가르쳐주는데, 인력이 부족하니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밖에 못 옵니다.”



-주로 어떤 분들이 오나요.
“인력풀이 부족해 강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문화가정 학부모들을 많이 모셔오는데, 교육과정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보니 기대만큼 따라와 주시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교과서를 미리 보게 하거나, 저한테 설명해보라고 하면서 조금씩 발전하고 있지만 기관에서 배출한 전문 이중언어 강사가 제일 좋죠.”

-선생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다문화 교육은 무엇입니까.
“여러 나라 옷 입어보고, 노래 불러보고, 음식 만들어보고…. 이런 체험적 교육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 체험보다 세계시민 교육으로 중심이 옮겨가야 합니다. 개인 대 개인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로요. 체험교육은 저학년에서 끝내고 고학년으로 갈수록 주제통합수업을 통해 더 큰 가치를 보게 해야 합니다.”

-다문화 학생을 처음 맡는 교원들에게 하고픈 말은.
“사실 저는 ‘다문화’라는 말도 안 썼으면 합니다. 이 용어 자체에 편견이 들어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을 개인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학생이 수학이 부족하면 수학 보충학습을 해주는 것처럼, 다문화 학생이 국어가 부족하다면 국어를 더 보충해주는 것과 똑같은 개념이죠.

-앞으로의 계획은요.
“만기가 돼서 다른 학교로 떠나게 됐습니다. 초임지이기도 했고, 처음 글로벌선도학교와 연구학교를 운영하면서 고생도 많이 하고, 학교 곳곳에 제 손길이 많이 묻어있는데 아쉽습니다. 학생들을 통해 저도 많이 배우고 성장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초임지에서 다문화 교육에 열정을 쏟았던 만큼 앞으로의 교직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새로 부임하는 학교에 다문화 학생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다문화 교육은 반드시 계속할 겁니다. 그동안은 다문화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교에 있었다면 이번에는 일반학교에서 또 다른 도전과 경험을 해보고 싶어요. 일선의 분위기는 어떤지, 얼마나 관심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요즘 인성교육 강조하는데, 다문화교육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름을 존중해주는 학생, 그런 역량을 가진 학생들을 길러내도록 노력할겁니다.”
김예람 yrkim@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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