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복구 자원봉사 ‘둘째 날’

2006.08.01 08:53:00


우리 팀이 숙소로 묵은 곳은 평창의 한 교회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이었는데 장소가 협소한데 비하여 인원이 많이 배정되어 잠을 설쳤더니 아침 일찍 눈을 뜨게 되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오늘 수해복구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가 척척 진행되고 있었다. 우선 봉사자 모두 복구 장비를 지급받았는데 복구장비는 삽, 부삽, 빗자루, 장갑, 장화 등이었다. 오늘 맡겨진 임무는 평창에서 조금 떨어진(버스로 15분 거리) 거문리의 수해복구에 참여하는 것이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려는 진행본부 측의 생각을 따라 봉사자 모두는 차안에서 아침으로 김밥을 먹었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어 거문초등학교로 갔다. 거문초등학교에서 오늘 작업에 대한 안내를 잠시 기다리던 중 학교를 둘러보았다. 거문초등학교는 1,2학년, 3,4학년, 5,6학년의 복식학급으로 반이 편성되어 있었고 전교생이 56명 정도 된다고 하였다. 현관에는 주민 대피소였음을 말해주듯 각종 반찬그릇과 생활용품들이 눈에 띄었다. 운동장 한 쪽 천막 밑에는 전국에서 지원해 준 생필품이 쌓여있는 것이 보였다. 또 운동장 곳곳이 움푹움푹 패여 보기 흉하였고 교사 뒤편 산에서 넘어진 2,30년 된 아름드리나무 들이 잘라진 채 축구골대 옆에 쌓여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나와 학교 앞에 폭우로 피해를 입은 거대한 비닐하우스를 보았다. 그 곳에는 우리보다 이틀 앞서 도착한 다른 봉사자들이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물이 빠진 비닐하우스 안에서 뻘에 뒤범벅이 된 토마토들이 줄기에 주렁주렁 달린 채로 제거되어 지는 작업을 목격하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어디서 낯이 많이 익은 분이 작업을 하고 계셨다. 그 분도 동시에 리포터를 보고 무척 반가워하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오래 전에 동네에 한 문화교실에서 일본어 초급과정을 3개월 배울 때 열과 성을 다하여 지도해 주시던 분으로 리포터가 일본어에 눈을 뜨고 지금까지 일본어를 자학자습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시다. 반가움도 잠시 사람은 헤어졌다가도 어디선가 꼭 만나게 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조금 후 거문리 주민 한 분이 오셔서 봉사자들을 트럭에 태우시더니 폭우로 움푹 패인 길을 조심스럽게 운전하시면서 조금 더 지대가 높은 곳으로 태우고 가셨다. 작업장까지 더 올라가야 했지만 길이 끊어져 더 이상 트럭이 올라가지 못하고 연장을 하나씩 들고 주민의 인도로 10분쯤 걸어서 올라갔다. 올라가니 2,000평 넓은 밭이 눈앞에 펼쳐졌다. 말로만 듣던 고랭지 채소밭이었다. 자세히 보니 배추가 폭우로 모두 밑동이 썩어 있었다. 모두의 입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탄식이 흘러나왔다.

모두 배추를 줄 따라 심어놓은 끝자락에 한 명씩 섰다 그리고 밑동이 썩어 있는 배추를 건드려서 고랑으로 넘어뜨렸다. 장마기간에 마음껏 자란 사이사이에 있는 억센 풀도 뽑았다. 출하를 앞두고 있는 속이 알알이 영근 배추들. 이 배추들이 고랑으로 맥없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아팠다. 고랭지 채소여서 높은 지대의 고랑에서부터 차례로 내려오면서 작업을 하다 보니 낮은 지대의 고랑은 아직 물이 빠지지 않아 장화가 푹푹 빠져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끝 부분 쯤은 밭이 아예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밭 아래로 사막의 오아시스라고나 할까. 계곡에 그 시원함을 마음껏 뽐내며 흘러가는 물이 있었다. 5분간 쉰다고 하는 작업반장님의 말씀에 봉사자 모두는 장화를 훌러덩 벗어놓고 계곡에 발을 담갔다. 조금 있으려니 발을 더 담글 수 없을 정도로 물이 차가웠다. 돌을 의자삼아 앉아 2,000평 넓은 밭을 바라다보았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끝이 아득하게 보였다. 이 농사를 짓느라고 농부는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고랑에 있는 배추들과 풀을 어느 정도 정리한 다음 점심식사 시간이 있었다. 도시락을 실은 차량이 곧 도착 한다는 말에 아까 잠시 쉬었던 계곡에서 기다렸으나 차량이 작업하는 장소를 찾지 못한 탓에 한참을 기다렸다. 들에 밭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에 밭이 있으니 찾지 못한 것이다. 드디어 도시락이 하나씩 지급되었다. 계곡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으니 꿀맛, 그 이상 이었다.

점심식사 후 작업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2,000평에 양상추 모종을 심는 작업이다. 지루한 장마 끝에 내려쬐는 태양이 고마웠으나 창이 긴 모자와 소매 긴 옷 안으로 따갑게 들어오는 햇살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옷이 땀에 흠뻑 젖었고 얼굴에는 연신 땀이 흘러내렸다. 3명이 일조가 되어 한 사람은 모종을 모판에서 빼고 또 한 사람은 배추를 뽑은 곳에 덜 뽑힌 밑동을 완전히 제거하여 구멍을 내고 나머지 한 사람은 양상추 모종을 심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으나 조금 후 모두 익숙하게 손을 움직여 두 시간 만에 작업분량을 모두 완수 하였다. 비워진 모판을 정리하여 쌓아놓은 것을 보니 공동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숙소로 돌아오니 목욕권을 하나씩 주셨다. 근처 동네에 있는 작은 목욕탕으로 가서 샤워를 간단히 끝내고 저녁 도시락을 받았다. 스티로폼 일회용 도시락을 보며 거문리 한 주민의 말이 떠올랐다. “자연을 그대로 둔 곳은 폭우에도 아무 탈이 없었어요. 그러나 인간이 자연에 손을 댄 곳은 피해가 많았어요.” 하시던 말씀이....오늘 봉사자들이 받는 이 스티로폼 도시락용기, 일회용 나무젓가락, 비닐 등이 또 다른 환경의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 올렸다.

짐을 정리하고 전세버스에 몸을 실었다. 남편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며, “여보, 수고 많았어요.”라고 말하니, “당신도 수고 많았어. 아까 옆으로 옮겨가며 모종 심을 때 현기증 난다더니 이제 좀 괜찮아?” 모자 밑으로 들어온 햇살을 이기지 못하여 빨갛게 된 얼굴을 마주보며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을 느꼈다.
이은실 가능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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