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을 통하여 얻은 값진 보람

2006.08.27 09:17:00


리포터가 다니고 있는 야간대학원에서 2학기 개강을 앞둔 지난 8월 21~25일까지 학부와 대학원 신, 편입생 250명을 대상으로 하는 밀알훈련이 경기도 포천에 있는 우리 대학 조림센터에서 있었다. 밀알훈련은 우리 학교 학생이면 졸업하기 전에 꼭 이수해야 하는 강력한 노동, 극기 프로그램이다.

이 조림센터는 학교 설립자인 고 강태국 박사님께서 54년 전 폐허가 된 국토와 농촌을 살리기 위하여 150만평 산에 잣나무, 참나무, 낙엽송 등의 나무를 심어 조성한 숲이다. 지금은 울창한 숲을 이루었지만 초창기는 민둥산과 다름이 없었다고 한다. 한 그루, 한 그루 땀 흘려 나무를 심고 이같이 거대한 조림센터를 이루기까지의 학교 당국과 선배님들의 노력을 생각하며 잠시 묵상에 잠겼다.

리포터는 8월 23일~25일까지 계속되는 2차 훈련 팀에 소속 되었는데 모든 것이 단체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이곳 생활에서 나태와 게으름, 핑계는 철저히 배격되며 도착과 즉시 휴대전화기와 카메라 등을 자진해서 반납하였다.

<첫째 날>

밀알훈련의 핵심을 이루는 노동이 시작되었다. 숲 속으로 들어가 낫으로 나무들의 가지를 치고 친 가지를 갈고리로 한 곳에 모으고 옮겨서 지정한 장소에 쌓는 일, 또 물이 흘러가는 계곡에 늘어진 가지를 쳐서 바위의 모습을 드러내고 흘러가는 계곡물 안에 숨쉬는 자갈을 보이게 하는 일,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서 햇빛을 보지 못하고 말라 버린 나무들의 밑둥을 톱으로 잘라 넘어뜨려 어깨에 메고 옮기는 일, 울창한 숲 사이로 길을 만드는 일 등이었다. 하나같이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우리 조는 모두 10명. 그 중에 남녀 비율이 4:6이었다. 일이 힘들다고 남자 학우들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었다. 썬 크림을 몇 겹으로 발랐지만 따가운 햇살이 계속 모자 안으로 들어왔다. 어쩌다가 숲 안으로 들어와서 작업하게 되면 그 시원함이란....

2시간여 일하니 간식이 나왔다. 이미 밀알훈련에 참가하였던 학우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서 감자를 쪄서 가지고 온 것이다. 하얀 소금이 군데군데 묻어 있고 뜨거워 김이 솔솔 나는 감자가 어찌나 맛있던지.... 단숨에 감자를 먹고 생수가 나오는 곳으로 갔다. 오염이 안 된 깊숙한 산 속이다 보니 곳곳에서 생수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간식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였는데 자연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곳이어서 온갖 종류의 생물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숲에서 자라고 여러 가지 풀과 식물은 물론, 어릴 때 보았던 자벌레, 허물 벗은 매미, 나방, 벌, 잠자리, 개미, 지렁이, 일급수 계곡물에 사는 실뱀에 이르기까지. 사진을 찍어 놓으면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이미 입소할 때 반납하였기에 아쉬움이 더하였다.

휴식을 취한 후 오전 일의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공수부대 출신이라는 팀장의 뛰어난 리더십으로 일이 척척 진행되었다. 그런데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간식을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점심이 기다려질까? 아마 이 위대한 자연만큼이나 맛있는 점심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있어서일까?

식당에 들어서니 조금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식판이 식탁에 모두 놓아져 있었고 교수님들과 학교 직원, 또 밀알훈련에 참가한 적이 있던 학우들이 식당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수시로 식탁 사이를 다니면서 모자라는 반찬을 더 얹어 주었다. 또 다 먹은 후는 그대로 식탁에 식판을 놓아두고 나오면 되었다. 설거지도 물론 자원봉사자들의 몫. 교수님 중에 한 분이 주방장으로 일하시면서 반찬까지 직접 만드신다는 말을 전해 듣고 밀알훈련이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 섬김, 봉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후에는 오전에 하던 작업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처음 할 때보다는 많이 익숙해 졌다. 중학교 2학년 때 보리 베기를 하면서 낫을 썼던 기억밖에 없는 리포터는 이번 밀알훈련을 통해 내 작은 힘이 더해져 함께 땀 흘려 일하므로 얻어지는 보람에 대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둘째 날>

오늘 새로운 작업장을 지시받았다. 어제보다도 더 힘든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내었던 길 정도가 아닌 학교당국의 플랜에 의거 숲을 일정한 넓이의 평지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남자 학우들의 손이 많이 필요하였다. 나이가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닌데 언제 일을 해 보았는지 익숙한 톱질에 단단한 나무들이 픽픽 쓰러졌다. 큰 나무들을 옮기는 일은 여자학우들의 몫. 햇빛을 피하려고 소매가 긴 옷을 입었는데 어찌나 더운지 벗고 짧은 옷을 입은 채 작업한 결과 팔이 나뭇가지에 여기저기 긁힌 자국이 났다. 나무를 옮기다가 넘어져 바지는 흙투성이가 되었다. 불과 몇 시간 일하지도 않았는데 옷은 땀에 흠뻑 젖었고 이마에 흐른 땀이 눈 안으로 들어가 따가 왔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반가운 종소리. 꿀맛이 따로 있을까. 금방 식판을 비웠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대학원 원우회장이 총무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위문 차 방문하였다. 부모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고 그동안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본부에서 점심식사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오후 프로그램에 대비하라는 주문이 있었다. 이유는 오늘 오후 훈련 프로그램으로 예정되어 있는 5시간 소요의 태극봉 등반. 태극봉은 산세가 매우 험하기로 소문나 있어 학우들 간에는 과연 등반을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술렁대었다.

드디어 등반이 시작되었다. 어떤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무리가 다소 따르더라도 시행하고야마는 리포터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등반에 참여하였다. 사실 코를 골면 옆 사람들이 잠자는데 방해가 될까봐 어제 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탓에 컨디션이 100%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역시 듣던 대로 산세는 매우 험하였고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총장님과 교수님들께서 앞서가시고 10조까지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등반하였다. 자원봉사자들과 남자학우들이 험한 곳을 앞서며 뒤서며 하며 손을 잡아주거나 등을 밀어 주는 등의 헌신적인 자세는 감동 그 자체였다. 구급대원 중에 한 분이 우리 등반 팀에게 여기 낙오자가 있어 곧 헬리콥터가 도착할 예정이므로 우리 등반 팀에게 이 곳을 빨리 지나가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였다. 10분 후 헬리콥터가 도착하였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헬리콥터가 착륙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태극봉 정상에 도착했을 때의 기쁨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을까. 포천일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며 푸른 융단을 깔아놓은 숲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서로 도와주면서 등반하다보니 서먹했던 학우들 간의 관계도 많이 개선되어 등반 내내 산을 울리는 웃음소리와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내려오는 길은 매우 위험하였다. 인솔하시는 교수님의 말씀대로 바로 내려오지 않고 옆으로 한발씩 디디면서 천천히 내려왔다. 갑자기 어디선가 산이 떠나갈 듯한 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웬일인가 했더니 학우들 중 몇이 교수님을 양쪽에서 들고 조금 깊은 계곡물(일명 선녀탕)에 빠뜨린 것이다. 계곡물이 워낙 차가운데 이왕 빠진 몸이라며 나오시지 않고 연신 입으로 물을 뿜으며 푹푹 거리는 교수님을 뵈니 절로 웃음이 나왔고 감기라도 들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되었다.

휴식을 취한 시간까지 합하면 모두 6시간의 등반이 끝났다. 샤워를 마치고 나니 ‘해 내었다’라는 자신감으로 충만했고 나 자신에 대견함에 무한한 박수를 보내었다. 딸의 나이쯤 되는 어린 학부 생들이 “산을 타시는 것 보니 정말 대단하시던데요?”라고 말하기에 “이래 뵈도 마음만은 20대라고요.” 하며 응대하였다. 집에 가면 남편과 우리 아이들에게 850고지의 산을 정복했노라고 자랑할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다.

<셋째 날>

오늘은 특별한 일이 없고 조별로 담당구역을 정하여 숙소 주변 대청소와 농기구에 기름칠을 하여 정리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리포터는 자원하여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조가 맡은 화장실은 청소하기가 용이한 숙소 안 화장실이 아닌 숲 속에 있는 화장실로 조금 손이 많이 가는 곳이다. 물은 언덕진 곳에 있는 수돗가에서 그릇에 담아 날라야 한다. 손을 넣어 직접 휴지통 안을 닦고 주변 청소를 하니 그동안 받은 부분에 대한 조그마한 일의 보답을 했다는 생각으로 뿌듯했다.

올 때는 그렇게 무겁게 여겨졌던 짐이 왜 이리도 가벼울까. 짐을 들고 전세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반납했던 휴대전화기를 다시 받아 집에 전화하려는 순간 배터리가 다 된 것을 발견하고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버스 옆자리에 금번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던 사회복지과 2학년 야간 학부생이 앉았다. 학교에 도착하는 시간까지 1시간 반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며칠간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이번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여 돈보다 더 값진 많은 보람을 얻었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땀의 가치를 발견하며 섬김과 나눔의 소중함을 배우게 된 이번 밀알훈련을 마치며 성경 속에 나오는 한 구절을 떠올려 본다.

“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이은실 가능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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