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의 추억 (4)

2007.01.22 08:57:00

연수원의 숙소생활은 많은 행복을 가져다 준 곳이다. 숙소 앞에 아침마다 펼쳐지는 정원은 언제나 나의 스승이다. 나에게 깨우침을 주는 곳이다. 언제나 기쁨을 만들어내는 샘물이다.생각을 키우게 하는 보고(寶庫)이다. 하루하루 힘과 용기를 주는 아름다운 자연의 보배다. 매일매일 인격을 다듬어주는 용광로이다. 자연과 친하게 하며 닮아가게 하는 고요한 샘터이다.

4월을 알리듯이 날만 새면 새들이 찾아와 인사한다. 커텐을 열면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온갖 시련을 묵묵히 이겨낸 소나무 숲이 점잖게 인사한다. 그리고 정원에 펼쳐져 있는 온갖 나무들과 꽃들이 앞다투면서 반겨주며 인사하니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그러면 나도 그들에게 인사한다. 새들! 안녕, 소나무 안녕! 목련도 안녕하고 벚나무도 안녕? 동백나무야 인사 늦어 미안해, 잘 있었니? 참 초화(草花) 너희들도 있었구나! 아차 잘못하면 인사 빠져 미안하게 될 뻔했네. 잡초(雜草) 안녕? 이렇게 인사하고 나면 자연과 하나가 된 느낌이고 기분도 상쾌해진다.

커텐을 열고 뒷뜰을 내려다보면 크고 작은 나무들이 춘삼월을 알리듯 자색(紫色), 백색으로 옷 입으면서 활짝 웃고 있다. 자신의 최대의 아름다움을 뽐내듯 마냥 웃는다. 그 중 그래도 백목련(白木蓮)은 조금 점잖다. 머지않아 사라질 영화인 줄 모르고 자랑하고 있으니 안타깝구나! 백목련화(白木蓮花)는 벌써 검은 검버섯을 서서히 보이며 종(終)의 서막(序幕)을 울리는 것 같아 애처롭기도 하다.

제법 점잖게 제법 뒷자석을 차지하면서 꽃샘추위만 지나가기를 기다릴 줄 아는 벚나무도 왠지 마음에 든다. 점잔 차릴 줄 알고 기다릴 줄 아니 마음에 들 바에야. 긴긴 겨울 추위와 모진 바람을 이겨내고 작품을 선보일 때이나 때 아닌 시샘추위에 주눅 들어 잎새마저 생기 없어 보이니 안쓰럽다.

그래, 그래도 동백 너는 승리자, 성공자가 아니냐? 한 송이가 아닌 여러 송이의 아리따운 처녀의 입술과 같은 색의 꽃들이 보조개 살포시 지우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니 한 숨 놓는다. 나도 너처럼 생기 없고 주눅 들어 있어도 작은 거센 바람 이겨내었으니 승리자, 성공자라 하면 너무 자만한 태도일까?

정원에 보이는 울긋불긋 아기자기한 1년생 초화(草花)들도 마냥 즐겁다. 생명이 길지 않지만 그래도 웃는다. 찡그리지 않는다. 슬퍼하지 않는다. 화내지 않는다. 반가워한다. 바람 불어도 구겨진 모습대로 떨어지지 않고 함께 덩실덩실 춤춘다. 보아주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는다. 오랜 친구가 되어 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지 않는다. 항상 웃는다. 때묻지 않고 깨끗하고 순수하다. 항상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난다. 비를 뿌려도 웃음은 그대로 간직한다. 그러니 너도 대단한 초화들임에 틀림없어!

찡그리고 슬퍼하고 화내고 미워하고 어깨고 처지고 서운해 하고 때묻은 저에게 정신차리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너도 나처럼 항상 웃어 볼래? 좋은 일이 있든, 궂은 일이 있든 항상 웃는 연습해! 남들이 미쳤다고 할망정 그 말 개의치 말고 웃어.’

초화(雜草)들도 한 몫 거든다. ‘나처럼 대접받지 못해도,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주어진 조건에서 낙심하지 말고 나처럼 싱싱해! 나처럼 항상 푸르름 그것으로 만족해! 자부심, 긍지 가지라고!’ 그래 너 말 맞다. 그대로 할께. 그리고 너와 좀 친할께. 고마워. 너희들이 있기에 전체 분위기가 살아나고 생동감이 넘치는 것 아니냐? 나도 분위기 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분위기 살리는 사람. 전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아니라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마. 잘 안 될 땐 너를 꼭 기억할께.

역시 뒷뜰을 장식하는 대미는 소나무 너희들이 하구나. 그래도 소나무는 어른이다. 봄이 왔다고 앞다투어 작품을 선보이는 나무들과 초목들을 꾸짖지 않는다. 뒤에서 감싸준다. ‘내가 잘 났니 네가 잘 났니’ 하면서 다투는 것 보아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심정 건드릴까봐 절대로 앞서지 않는다. 얼마든지 앞서 그들의 얼굴을 가릴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앞세워 그들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래서 소나무군은 그들의 조연이요, 그들의 배경이 된다.

나도 소나무처럼 어른이 되고 싶다. 꾸짖는 자가 아니라 늘 따끔한 충고를 받는 자로, 남을 감싸주는 자로, 남의 일에 참견하는 자가 아니라 내 일에 신경 쓰는 자로, 말하는 자가 아니라 말 듣는 자로, 남의 심성 건드리는 놀부 심성에서 흥부 심성으로, 호랑이의 위세를 빌어 앞서는 여우처럼 앞서는 자가 아니라 배후에서 도와주는 능력 있고 실력 있는 자로, 주연이 아니라 조연으로, 앞서 노래하며 기쁨을 선사하는 가수나 코미디언이 아니라 그들이 더욱 빛나도록 한판 어울리게 돕는 배경자로 거듭나고 싶다.

아침 일찍 일어나면 제일 먼저 새들이 찾아와 인사한다. 그들은 나무숲에 깃들여 자기네들의 삶을 노래한다. 자그만 새들은 터놓고 말을 한다. 엄살도 부린다. 애교도 부린다. 귀찮게 군다. 건드린다. 덩치 큰 새들은 예의도 없다. 툭 치고 간다. 고함도 지른다. 하루 이틀도 아니다. 언제나 투정부리고 싶으면 투정부리고 기대고 싶으면 기대고 사랑을 받고 싶으면 보챈다. 그래도 소나무는 짜증내지 않는다. 젖을 찾으면 젖을 준다. 꼬집고 비비어도 화내지 않고 기쁨으로 어루만져 준다. 추우면 따뜻한 옷을 입히고 잠자리 불편할까봐 늘 신경 쓴다. 더러운 배설물을 내놓아도 얼굴 찌푸리지 않고 다 치운다.

이제 소나무처럼 엄마 품이 되고 싶다. 큰 새, 작은 새, 귀찮게 구는 새, 무례한 새, 엄살부리는 새, 온갖 새들도 마다하지 않고 다 수용하는 소나무처럼 어떤 사람이든지 수용하는 포용력을 갖도록 힘쓰련다. 지금까지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배척하고, 나에게 유익을 주지 않으면 멀리하고, 괴롭게 하거나 귀찮게 하면 쏘아붙이고, 꼬집고 비비면 더 꼬집고 비비며, 나를 더럽게 하면 그들을 매장하고 악심(惡心)에서 벗어나련다. 이 순간부터 나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하는 온갖 악심(惡心)을 모두 버리련다.

이제 창문 곁으로 들려오는 새소리는 나를 귀찮게 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다. 나를 인간답게, 사람답게, 참되고, 의롭고, 진실되게 살라고 아침마다 일깨워주는 명심보성(銘心寶聲)이다.

소나무처럼 덕(德)을 지닌 사람되고 싶다. 소나무뿐만 아니라 모든 나무는 덕을 지녔다. 덕(德)은 바로 사랑 아닌가? 나무가 고귀한 사랑, 아낌없이 있는 것 주는 사랑, 변함없는 사랑을 지녔지 않은가? 그리고 나무가 지닌 덕(德)은 바로 나무의 목격(木格)이 아닌가?

 모여드는 새는 얻을 것 없으면 모이지 않는다. 해를 끼치면 도망간다. 억지로 모으려고 해도, 새집을 지어 주도 모이를 쥐도 그것은 순간적이지 계속이 못 된다. 진정한 나무가 지닌 목격(木格)이 없으면 때가 되면 다 사라진다. 바다새들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바다의 덕(德) 즉 사랑-넓은 사랑, 깊은 사랑, 끝 없는 사랑이 있기에 항상 바다 주위에 새가 모여든다. 바다가 지닌 해격(海格)이 새를 모여들게 한 것이다.

옛말에 ‘德不孤必有隣(덕불고필유린)’이란 말이 있다.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고 하였으니 주위에 사람이 모여든다는 것은 그 분이 덕을 지녔기 때문이 아닐까?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덕(德)은 순간적으로 주위에 모여들지 몰라도 머지않아 다 떠나고 만다.

진정한 덕(德)이 없을 때는 순간적이며 지속되지 못한다. 몇 달 전 어떤 치과의사의 죽음 앞에 수많은 노인네들이 모여 그분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을 TV로 본 적이 있다. 그분이 살아 덕을 지녔기 때문에, 그의 인격 앞에 많은 노옹들이 모였다. 그렇다. 덕(德)을 쌓으면 죽어도 외롭지 않고 사람이 모여들게 된다. 옛날 무학산 등산을 하는 가운데 어떤 등산객이 “새들도 사랑하니까 집에 모여들더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기억난다.

나도 부족하지만 사랑을 지닌 자, 사랑을 실천하는 자, 풍성한 인격(人格)을 지닌 자가 되고 싶다. 나무가 목격(木格)을 지닌 것처럼, 바다가 해격(海格)을 지닌 것처럼 나도 인격(人格)을 갖춘 자가 되고 싶다. 그런 자가 될 때까지 늘 나무를 보고 바다를 쳐다보련다. 나뭇가지에 깃들 새를 보련다. 가장되고 포장된 덕(德) 말고, 진정한 덕(德)은 사랑이고 인격(人格)이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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