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는 사람 수가 곱빼기로 늘어나기도 했다. 눈사람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널린 눈사람은 어쩐지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눈사람과 함께 웃기도 하고 정을 주기도 하고 고민을 털어 놓기도 하였다.
겨울아이들은 싸움을 해서 행복했다. 눈싸움을 했다. 눈이 쏟아지는 날이면 고샅으로 쏘다니며 눈싸움을 하고, 그러다가 편을 갈라서 작전을 세우고 계략을 짜기도 했다. 고샅 돌담틈새에 다량의 눈을 뭉쳐서 숨겨두고서 적을 유인하여 박살을 내기도 했던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재갈량이나 이순신 장군 같은 승전보를 올리며 얼마나 통쾌하게 웃었는지 모른다.
겨울 아이들은 힘껏 때리면서 놀았다. 팽이치기였다. 힘껏 때리고 내리치다가 상대방 팽이에게 싸움을 걸어 팽이를 몰아부쳤다. 이기면 환호를 질렀지만 패하면은 더 성능 좋은 팽이를 구하느라 갖은 애를 썼고, 여의치 않으면 직접 팽이를 깍아쓰기도 하였다.
겨울아이들은 딱딱 소리를 내며 양지바른 곳에 모여서 딱지치기를 하였다. 손때 묻은 딱지에 흙때까지 다닥다닥 붙은 딱지를 들고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가져가면 어머니는 야단을 쳐댔다. 그렇지만 딱지를 신주단지 모시듯 잘 보관했다.
겨울아이들은 연을 날렸다. 하늘 높이 점이 될 때 까지 연을 날리다가 연싸움을 하기도 했다. 싸움에서 진 내 연이 허공에 묻혀 버리면 다시 집에 와서 연을 만들었고 연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사금파리를 깨트려 가루를 만들었다. 연 줄에 풀을 먹이고 사금파리를 붙여 싸움터로 나갔다. 그 때 그렇게 재미있게 날리며 놀던 연도 이상하게 정월 대보름만 되면 달집태우기를 할 때 모조리 태워버렸다. 너무도 아까웠지만 모두들 태우니까 나도 할 수 없이 태웠다.
그 때는 눈도 많이 내렸다. 비닐부대만 있으면 온세상이 눈썰매장이었다. 대나무로 스키를 만들어 아무대고 스키를 탔다. 여기저기 널린 얼음 빙판은 썰매의 천국이었다. 앉은뱅이 썰매부터 외날썰매도 타고....
그러고 보니 겨울방학은 싸우고 때리며 눈깜작할 사이에 끝나버렸다. 지금 아이들은 뭘 하면서 겨울을 지내는지 궁금하다.
올 겨울에는 눈싸움은커녕 눈구경도 할 수 없으니 참으로 삭막하기도 하다. 그러니 눈사람 구경도 할 수 없고 말이다.
눈사람은 눈이 안오니까 당연히 없다고 치자.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이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길거리에도 그렇고 아파트놀이터에도 그렇고 심지어 지하철을 타고 아이들이 별로 없다. 아이들이 방에 꼭꼭 박혀 독서만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컴퓨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여러가지 유익한 프로그램으로 알찬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더라도 자연과 숨쉬고 비비며 자라나는 아이들이 그리워진다. 때마침 오늘은 눈이 많이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고 진짜 창밖으로 눈발이 보인다. 재발 눈이 많이 내려서 행복한 겨울아이들, 그 아이들을 위한 겨울방학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