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의 추억 (33)

2007.02.28 09:01:00

바다 주변이나 산 속 깊은데 연수원을 세우는 이유를 알 것 같다. 2박 3일간의 짧은 기간이지만 바다를 접하거나 산을 접하면 마음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정말 속이 넓기보다 좁기만 하다. 나 자신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속이 좁아 자주 화를 내게 된다. 속된 말로 뚜껑이 자주 열리게 된다.

화를 내거나 분노하게 되는 건 자신의 미숙함을 드러내는 결과가 되고 만다. 자신의 미성숙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드러낼 뿐 아니겠는가? 열 번 잘해도 한 번 화를 내면 열 번 잘한 것을 기억하지 않고 한 번 잘못한 것 그것만 머릿속에 그리면서 그 사람을 증오하게 되지 않는가?

사람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산다. 관계가 좋으려면 그 사람과의 맺히는 것이 없어야 한다. 특히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 직장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원만한 대인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관계가 좋아야 할 것 아닌가? 특히 공동체 속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라면 무엇보다 자신을 잘 관리해야 한다. 특히 성품관리를 잘해야 한다. 여러 가지 성품 중 화를 내지 않는 것, 뚜껑이 열리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그러하지 못하면 그 때부터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서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리더십을 발휘할 수도 없다. 나는 화를 종종 내는 편이다. 분노를 참지 못하기도 한다. 옳지 않다 싶으면 그냥 폭발하고 만다. 그러니 언제나 손해를 보게 된다. 자신의 건강도 해치고 자신의 나아가는 길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연수원에 근무하기 전에 자주 뚜껑이 열려 자신의 부끄러움을 많이 드러내기도 했다. 자기관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한 나를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연수원에서 바다와 함께 생활하면서 자신을 훈련시키고 연단시켜주어 너무나 다행스럽다. 자신의 성품관리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니 바다가 고맙기도 하다.

바다는 마음이 한없이 넓다. 바다는 보통 때는 물새가 발톱으로 할퀴어도 화내지 않는다. 흰 돛단배가 칼질해도 말하지 않는다. 낡은 그물이 바다를 얽어도 마찬가지다. 바다는 때때로 바람에 입김을 불고 하늘을 간질여 보고 대륙을 푸른 보로 싼다. 그래서 이육사 시인은 ‘마음의 바다’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물새 발톱은 바다를 할퀴고 바다는 바람에 입김을 분다. 여기 바다의 은총이 잠자고 있다./ 흰 돛은 바다를 칼질하고 바다는 하늘을 간질여 본다. 여기 바다의 아량이 있다./ 낡은 그물은 바다를 얽고 바다는 대륙을 푸른 보로 싼다. 여기 바다의 음모가 서리어 있다./

하지만 그 넓고 넓은 바다도 한 번 성나면 감당 못한다. 밤새도록 신경질 낸다. 밝을 때는 모르지만 어둠이 짙게 깔린 심야(深夜)에는 더하다. 그것이 파도소리로 나타난다. 바람이 그렇게도 많이 불지 않는데 무섭게도 파도소리는 울어댄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울어댄다. 죄 없는 바위만 못살게 군다. 작은 바위는 덮어버리고 큰 바위는 엎어버린다. 모래는 밉다고 날린다. 작은 자갈은 문댄다.

날이 밝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소리는 작지만 성을 낸 흔적은 뚜렷이 나타난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취색 수정 같은 맑고 푸른 물속에서 하얀 꽃 피우면서 웃더니만 오늘은 흙탕물로 완전히 변한다. 아마 속이 뒤집어졌는가봐. 하늘도 함께 먹구름으로 변한 거 봐.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넓어도 어찌 바다만큼 넓을 수 있으랴? 한없이 넓고 고운 바다도 한 번 성을 내면 속이 뒤집어지는데 하물며 인간이랴? 그렇다고 자위하는 것 아니다. 화를 내는 건 분명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낼 뿐이다. 자신의 미련함을 나타낼 뿐이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나타낼 뿐이다. 그러니 이제 화를 내지 않으려 한다. 혹시 자제하지 못해 화를 내더라도 바다와 같이 빨리 원상태로 회복하려 한다.

바다도 원상태로 마음을 돌리면 하늘도 감동하여 푸른 물감으로 맞장구치고, 모래사장도 반짝이며 빛난다. 바다가 웃으면, 바위들도 윤기를 낸다. 바다에게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싶다. 이제 죽을 때까지 화를 내지 않는 경지에 이르고 싶다.

그래도 그러하지 못했을 때는 바다처럼 빨리 원상태로 마음을 돌리고 싶다. 속이 아무리 뒤집어져도 바로 돌려야 주위의 사람들이 생기를 얻고 화답할 것이다. 관계되는 모든 분들이 기뻐하고 주변의 자연들도 함께 기뻐할 것이다. 그게 직장이라는 공동체 속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 회복이 될 것 아니겠는가?

바다여! 성난 건 본심(本心)이 아니지? 너의 본심은 시인 이육사가 읊은 ‘바다 같은 마음’이 본심(本心) 아니냐? 나도 성난 건 본심(本心)이 아니야. 바다 같은 마음이 본심(本心)이 야.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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