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많은 교원들이 잘못가고 있는 교원승진규정 개정과 교장선출보직제(당시)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거의 받아들이지 않은 채 교원승진규정이 개정되어 금년부터 적용하기에 이르렀고, 교장선출보직제는 ‘교장공모제’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바꾸고 이번 9월부터 시범 운영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확대시행 및 공모교장의 신분 강화를 법적 장치 마련을 위하여 ‘교장공모제’를 입법예고까지 하고 말았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여도 시범 운영을 통해 그 공과를 면밀히 분석하고 살펴서 계속시행 여부를 결정해야 함에도 최근 교육부는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으로 서두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상황에 비추어 25년 동안 줄기차게 주장해 온 한국교총의 ‘수석교사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뭉그적거리고 있는 것 같다. 여러 차례 한국교총과 교육부의 교섭과제로 합의된 내용임에도 그 시행여부는 여전히 안개 속에 갇혀 있을 뿐이다. 수석교사제는 ‘교수직과 학교 경영조직이 혼재된 현행 일원적 교원자격 체제로 인해 교직사회에 만연된 과열 승진 경쟁을 해소하고 교단 교사를 우대하여 전문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이다.
이에 한국교총에서는 이를 해마다 교섭과제로 선정한 바 있고 마침내 2007년도 9월부터 시범운영하기로 합의에 이른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작년 11월과 올 2월에 업무보고를 통하여 ‘수석교사제’의 시범운영을 공언한 바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9월이 다가도록 이에 대하여 구체적인 언급이 없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국내외 수석교사제 사례에 대한 연구는 지난 5월에 마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시범실시 모형을 개발하지 못했다는 궁색한 변명만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김신일 교육인적자원부 장관과 윤종건 전 한국교총회장이 합의 서명한 내용이 한낱 휴지조각으로 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학교 현장의 교원들은 무력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법에 의거 강제 이행하도록 되어 있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두고두고 약이 오를 일이다. 수석교사제 시행 합의를 이끌어 내고 활짝 웃으며 함께 사진을 찍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희미한 기억’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수석교사제’를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교육 발전의 동반자인 한국교총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교육부측 교섭위원들의 공허한 울림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어찌 보면 최근 교육부 태도는 은근히 한국교총이 또 하나의 ‘교원노동조합’으로 거듭 나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논리와 상식, 그리고 전문적 식견을 바탕으로 하여 제안을 하면 그것이 아무리 타당해도 강제적 이행장치가 없기 때문에 무시해 버리기 일쑤고, 강한 투쟁성과 강제 이행성을 바탕으로 한 특정 단체와의 교섭 내용에 대해서는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다른 정책은 숨 가쁘게 몰아붙이면서 무려 25년 동안 논의되어온 ‘수석교사제’에 대해서는 왜 딴청을 부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수석교사제는 교단교사를 우대하는 방안으로 교원들에게 수혜의 폭이 크지만, 최근 논의되는 교장공모제는 수혜의 폭이 극히 제한적이다. 또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학교현장의 정치장화를 초래하고 외부의 간섭과 영향을 불러들이는 꼴이 되어 교육의 중립성을 크게 훼손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수석교사제는 그 동안 많은 논의를 거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며, 또한 이의 시행에 대한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없는 제도이다. ‘수석교사제’의 본래의 취지에 맞춘다면 상당한 정도의 재정적 부담을 가져올 수는 있다. 아마 정부에서는 이런 재정적 부담을 고려해서 뭉그적거리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에 비해 교장공모제는 그런 재정적 부담이 없으면서도 전시효과를 노릴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최근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부분의 정책이 재정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가시적 효과만 노리는 이미지성 정책을 남발하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학교현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춘 교육행정가의 탁월한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는 데는 극히 제한적이다. 사명감과 전문적 식견을 갖춘 현장교사의 투철한 교육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교사들이 침묵하고 방관한다면 절대로 학교 현장이 살아날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수석교사제는 시행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제도이다.
수석교사제는 그 동안 승진제도가 지난 문제점을 보완하고 교사의 개인적 성향을 바탕으로 한 선택적 자기 성장 프로그램의 하나이다. 모든 교사를 승진대열에 합류시켜 에너지를 소진하게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소질과 패턴에 맞는 분야를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제도이다. 이는 교사 개인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도 의미가 있고, 조직의 생산성 향상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갖고 사명을 다하는 교사에게는 수석교사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해야 하고, 리더십과 비전, 전략을 갖춘 교원에게는 승진하게 하여 학교교육력 신장에 그 책임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
대학교원들이 연구와 학생지도를 열심히 하여 좋은 평가를 받아 강사, 전임교수, 부교수, 교수로 성장하도록 하는 것처럼 학교 교사도 선임교사, 수석교사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일은 어찌 보면 교원사기 진작 측면에서도 교육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해야 일이다. 물론 여기에는 제도만 그럴듯하게 만드는 데 그쳐서는 실효를 거둘 수 없다. 재정적 지원을 통하여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배려하여야 한다. 교육부에서는 이에 따른 재정적 부담을 우려하여 매번 시행 약속을 하고서도 뭉그적거리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발표된 ‘미래교육 비전과 전략’에도 돈을 들이지 않는 일종의 이미지성 정책만을 남발하여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최근 교육부는 단위학교의 교장을 정치의 중심으로 몰아넣는 ‘교장공모제 추진’에 골몰하고 있을 뿐 교단교사의 지위향상 및 성장 프로그램에는 아예 눈을 감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