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중앙정부나 지방을 막론하고 관련 공무원들이 교육위원회, 지방의회 등에 출석하여 현안을 설명하느라고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특히 시·도 교육청의 경우에는 교육예산과 관련하여 여러 단계의 심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우선 예산을 편성하여 시·도교육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야 하고, 이어서 지방의회의 교육복지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통과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또 예결위원회와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물론 국민 세금으로 편성된 예산인 만큼 몇 번이고 심의하여 그 효율성을 높이자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일한 사업 내용을 적어도 세 번 이상 심의 의결을 거치면서 생길 수 있는 낭비적, 소모적 논쟁이 많은 것은 분명 문제이다. 내년 예산을 확정받기 위해서는 각 교육청에서는 적어도 6개월 이상의 고위 공무원들이 행정력을 쏟아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각 단계별마다 지방의회 의원들이 서로 다른 관점으로 교육 사업을 이해하고 평가함으로써 야기되는 대립과 갈등도 많다고 한다. 또 시·도교육위원회에서 통과된 사업이 교육복지상임위원회에서 삭제되기도 하고, 예결위원회에서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하나의 교육 사업으로 확정되기까지는 각 단계마다 치열한 생존 게임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사업이 몇 단계의 논의 과정을 거치면서 가져 올 수 있는 장점도 분명 있겠지만 문제점 또한 적지 않다. 우선 교육자치의 기본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자치제의 근본정신에는 인사와 재정에 있어서 일반행정과 중앙교육행정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이 강조되어 있다. 이는 교육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전문적 관리의 원칙과 관련된다. 따라서 교육을 지원 조성하는 행정기관도 이런 관점에서 교육에 대한 깊은 이해와 폭넓은 교육행정 식견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방의회 의원들은 정치적 이해관계에는 민감하지만 교육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부족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다음으로는 지방의회 의원의 일부는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지원보다는 지시 통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적 수요와 그 효율성을 바탕으로 하여 마련한 사업들은 교육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친다. 교육위원회 위원들은 대부분 교단 경험 및 교육행정 경험을 가지고 있는 만큼 제반 교육사업에 대하여 이해하고 지원하고 보충해 준다. 그러나 지방의회로 넘어가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교육위원회에서 심의 의결한 내용이 지방의회의 교육복지위원회와 예결위원회에서는 축소되거나 폐지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에 관계 공무원은 전방위적 노력을 경쟁적으로 하게 되고, 때로는 불필요한 논쟁에 휘말리기도 하고, 드문 경우지만 감정적 대립을 하는 경우도 있다. 평생을 교육에 헌신해 온 교육 관료들이 질책과 호통에 당황하기도 하고, 모멸감으로 상심하기도 한다. 물론 잘못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실제로 어느 지역에서는 이와 같은 갈등으로 현직 교장이 지방의회의 압력을 받아 인사 조치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방분권의 이상에 사로잡혀 ‘교육차별’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지방의 실정과 특수성을 감안한 교육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지방분권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방의 재정자립도가 현격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 이상을 충분히 반영할 수 없다. ‘교육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 다각적인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존하는 차이를 외면하고 교육자치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교육의 지역적 격차’를 적극적으로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현재 교육 현안에 대한 옥상옥(屋上屋)의 심의 의결 과정은 분명 낭비적이고 소모적이다. 적어도 교육위원회의 전문성을 인정한다면 2010년 새로 개정된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이 본격 시행되기 전까지는 이들이 심의 의결한 내용을 추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아울러 개정된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의 문제점이 없는지 다시 한번 검토하여야 한다. 교육이 정치적 예속화를 막기 위한, 선거판의 전략으로부터 배제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하며, 아울러 교육의원의 자격 요건도 강화되어야 한다.
교육은 국가적 과제이며, 우리들의 앞날의 운명을 좌우할 미래사업이다. 지역적 차이가 현존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국가적 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교총에서 제안한 국가교육위원회의 설립 요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