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성취도평가를 하루앞두고 시험지를 인수해왔다. 다행히도 포장단위가 크지 않아서 운반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지역교육청에서 일괄적으로 배부가 이루어졌다. 많은 학교에서 교감과 교무부장이 참석했다. 갑자기 교육청이 복잡해 진 느낌이었다. '이러다가 작은 문제라도 발생하면 앞으로는 시험지 인수를 수능처럼 새벽에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학업성취도 평가도 수능 수준으로 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하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어느학교 교무부장의 이야기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루전날에 시험지를 배부하고, 개봉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개봉이 가능하다. 만일 어떤 학교에서 나쁜 마음을 먹고 시험지를 일찍 개봉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다음해에는 분명히 시험당일날 시험지를 수령하라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능처럼 새벽부터 시험지를 인수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생각해보니 아찔한 생각이 자꾸 든다.
시험지 인수가 이렇게 철저하게 이루어진 것은 당연히 지난해의 여러가지 문제점 때문이다. 문제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방편을 찾고 있는 것인데,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은 학교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교에 문제지를 맡기면 어떤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신 때문에 시험지 인수에 인색한 것이다. 그러니 사정이 조금이라도 악화되면 학업성취도 평가가 수능에 버금가는 관리형태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당장 내일이 학업성취도평가를 실시하는 날이지만 마음은 편치않다. 여러가지로 들려오는 이야기들 때문이다. 성적을 높이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여름 방학도 반납하고 학교에서 준비를 한 학교들도 있다고 한다. 또한 성적이 잘나오면 상을 주겠다고 한 학교도 있다고 한다. 결국은 당초의 취지대로 흘러가지 못하고 이상하게 변질된 것이 학업성취도 평가인 것이다. 교장선생님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도 한몫하고 있다.
당초의 취지대로 부진학생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는 수단으로 학업성취도평가가 실시되어야 한다. 학교간 경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당초의 취지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학교간의 경쟁을 유발시켜 한단계 높은 교육을 하자는 것이 당초의 취지였다. 그러나 현재는 어떠한가. 한단계 높은 교육은 커녕 정규수업을 멈추고 학업성취도 평가에 매달려야 한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다. 매년 계속해야 한다.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 학업성취도 평가를 앞두고 마음은 계속 무거워지고 있다. 필자뿐이 아닐 것이다. 교사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경쟁도 좋지만 그 경쟁이 인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경쟁이 필요한 시대이지만 자연스러운 경쟁이 필요하다. 선의의 경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의 학교현실은 그것이 가장 필요한 시기다. 왜 자꾸만 인위적으로 경쟁을 유발시키려 하는지... 편안하지 않은 마음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