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도 서울시내 초·중·고등학교의 학교별 정기고사에서 서술형평가 문항의 배점을 50%이상 하도록 의무화 하고 있다. 학생들의 탐구력과 사고력 신장이 목적이다. 공정택 전교육감 시절에 도입 되었으니, 이미 수년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까지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서술형평가 문항의 채점과정이 어렵기 때문이고 사후관리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생길수 있기 때문에 서술형 평가에 교사들이 소극적이다. 즉 객관성을 100%확보하기 어렵고 채점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서술형평가는 채점상의 어려움이 단답형 시험에 비해 적어도 2-3배 정도는 된다.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교사 3명이 매달려야 한 과목의 채점이 완료된다. 그러나 그 완료된 답안의 객관성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교사들은 많지 않다. 객관적인 채점기준을 마련하여 채점을 하지만 문제점은 2-3년 후에 발생한다. 정기감사에서 가장 많이 지적받는 것이 서술형 채점과 관련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서술형 채점은 객관성을 확실히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다.
교사들은 나름대로 갠관적인 채점을 하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생길 가능성은 충분하다. 감사관으로 학교를 방문한 경우, 전문직이 답안감사를 하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경우에 해당된다. 전문직이 아닐 경우는 채점기준과 답안의 내용만을 가지고 검토한 후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충분한 타당성이 있음에도 그런 부분들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채점기준과 명확히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채점오류로 분류하게 된다.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한 교사의 입장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결국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하는 교사들에게 학생의 평가권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앞으로 서술형 문항의 답안을 300-500자까지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럴 경우의 채점은 정말로 그 누구도 책임지기 어렵게 될 것이다. 이것을 의무적으로 시행한다고 하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시행이 되겠지만 이 역시 쉬운일은 아니다. 현재의 상황에서도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확대된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객관성 문제, 교사들의 업무가중, 평가권의 침해등이 문제점이라고 본다. 국가에서 실시하는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수행평문제는 대부분이 단답형이다. 왜 단답형을 출제할 수 밖에 없는가. 다름아닌 채점문제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의 학업성취도평가 후 채점을 다녀온 교사들 중 곧바로 병원신세를 진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만큼 채점이 어려웠다는 이야기이다. 단답형 이었음에도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은 서술형 배점의 확대를 쉽게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국가에서 실시하는 시험은 채점이 어렵기 때문에 단답형으로 그것도 많지않은 문항을 출제하는데, 학교에서는 무조건 하라는 식의 추진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학생들의 창의력 신장과 탐구력향상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학교의 현실에서 견디기 어려운 정책을 강제로 밀어붙이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문항당 300-500자로 쓸 수 있도록 문제를 출제한다면 앞으로는 모든 문항을 서술형으로 출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문항당 배점이 높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결국 학생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교사들의 채점부담이 엄청나게 높아질 것이다. 대책없이 추진하는 정책에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현재의 서술형 출제도 시교육청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단답형 일색으로 출제하지 않고 있다. 서술형 문제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근거에서 단답형 일색으로 출제한다고 하는지 쉽게 납득할 수 없다.
결국 학교의 현실을 무시하고, 교사들을 불신하는 과정에서 이런 방안이 나왔을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교사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문하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출제하고 채점하는 교사들에게 학생 평가의 전권을 주지 않고 관리 감독만을 강화하면서 서술형평가를 확대한다는 것이 교육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심스럽다. 학교의 자율성을 준다면 교사의 평가에 대한 자율권도 주어야 한다. 감사를 하면서 해당교사에게 불이익을 주는 현실에서는 서술형평가를 확대한다고 해도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교사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교사가 철인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접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