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이럴 때 가라앉은 마음을 다시 일으키는 방법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이 아닐까 싶다.
프랑스의 소설가인 알퐁스 도데의 ‘별’은 교과서에도 실린 익숙한 소설이다. 프로방스 지방 어떤 목동의 이야기다. 목동이 뤼르봉 산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 이야기이다. 사람 구경 못하고 양 떼와 사냥개 검둥이밖에 없는 곳이다. 사람 구경을 못하는 외로운 곳이다.
늙으면 외로운 것이 제일 문제다. 아무도 친구가 되어 주지 않는다. 자식도 그렇고 며느리도 그렇다. 딸도 그렇고 사위도 그렇다. 아내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다. 위로가 되어주고 친밀감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니 일찌감치 책을 친구로 삼는 것이 좋다. 눈이 나빠지기 전에, 집중력이 떨어지기 전에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좋다.
외로울 때, 간혹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정말 반갑다. 유일한 낙은 두 주일마다 보름치의 양식을 실어다 주는 우리 농장 노새소리 듣는 것이다. 꼬마 미아로(머슴) 또는 늙은 노라드 아주머니가 오면 기쁘다. 양식도 가져오고 주인댁 따님의 스테파네트의 소식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관심은 주인의 따님에게 있다.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가 있으면 그는 정말 행복하다. 하지만 아무도 없어도 괜찮다. 책이 있다. 목동이 주인 댁 아가씨를 좋아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결혼 가능성이 없고 교제의 상대자가 될 수 없다. 스테파네트는 너무나 예쁘고 자기가 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기에, 자기는 스무 살이라는 젊음 하나로 가능성을 열어두고 가슴 속에 아가씨를 마음에 두었다. 용감한 사나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나, 꿈에만 그리던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목장에 나타났다. 엄청 놀랐다. 꿈속에라도 찾아와 얼굴을 보기를 원했었는데 꿈이 아니고 현실로 만날 수 있었으니 그 기쁨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뜻밖에 나타난 아가씨 때문에 황홀한 감정은 평생에 갖지 못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넋을 잃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해 보았다. 꿈이 아니었다. 꼬마와 아주머니가 사정이 있어 대신 왔다. 너무 아름다웠다. 거기에다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아가씨가 짧은 시간을 끝내고 다시 마을로 내려갔다. 목동의 마음이 어떠했겠나?
차라리 오지 못한 것만 못했다. 너무나 아쉬웠다. 속이 시원치 못했다.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아가씨가 되돌아왔다. 소나기 때문이다. 소나기가 목동을 기쁘게 해 주었다. 기쁜 정도가 아니다. 황홀했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품은 따뜻한 그리움을 소나기가 알아주었다. 고맙다.
소나기 때문에 사랑이 맺어지는 것을 소설에는 자주 본다. 황순원의 소나기에서도 볼 수 있다. 가까이 있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초췌한 모습의 아가씨, 물에 빠질 뻔한 아가씨, 추위에 떨고 있는 아가씨에게 목동이 할 수 있는 정성은 다 쏟았다. 옷을 덮어주고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별 이야기를 했다.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도 이야깃거리가 없으면 망친다. 지식도 필요하고 지혜도 필요하다. 사랑도 필요하고 정성도 필요하다. 이런 것을 목동은 갖췄다. 목동이 별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 별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면 밤새 무슨 이야기로 긴 밤을 보낼 수 있었겠는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풍부한 지식이 있었기에 긴 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잘 보낼 수 있었다.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이든 알아야 이끌어갈 수 있다.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 이유, 선생님이 가르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목동의 어깨에 기대며 잠이 든 아가씨를 본 목동은 흐뭇했다. 성스럽고 순결함을 잃지 않았다. 맑은 밤하늘의 비호를 받아 오직 아름다운 것만 생각하게 했다. 가슴이 설레기도 했지만 일탈행동을 하지 않았다.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 소녀와의 순수한 사랑과도 일치했다.
이런 사랑이 젊은 청소년들에게 있어야 할 것 같다. 때 묻지 않은 사랑,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사랑, 서로에게 추억이 되는 사랑,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랑이 진주 같이 아름다운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