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대리교육

2013.12.18 16:54:00

눈구름이 하늘을 덮었다. 가을철이면 이 시간쯤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체력관리를 위해 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 학생들이나 선생님 모두 건강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학생들 중에는 자기와 상관없이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학생들이 꽤 있다. 우리 선생님들은 이런 학생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인다.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환경을 일찍부터 만나는 이들이 있다.

주요섭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단편소설을 봐도 그렇다. 1930년대 소설이다. 이 시절은 한번 결혼해서 남편을 잃으면 평생을 과부로 살아왔던 시절이다. 결혼한 지 1년 만에 남편을 잃었다. 딸 ‘옥희’는 태어나기 한 달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얼굴도 모르고 자랐다. 어머니는 24세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 웬만한 사람이면 딸을 포기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옥희 어머니는 그러하지 않았다. 평생을 혼자 살면서 딸 옥희를 잘 키워보려고 한다. 이래도 청소년기를 넘기기는 쉽지 않다. 이를 알고 있는 옥희 어머니가 부모로서 보호자 역할을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가 돋보인다. 배워야 할 점이다.

살다가 보면 힘이 들고 어려우면 유혹에 빠질 수가 있다. 딸 하나만 보고 외롭게, 가난하게 살다 보면 흔들리게 된다. 그래도 이를 이겨내는 옥희 어머니는 대단한 엄마다. 바느질도 하고 하숙도 해야 겨우 살 수 있는 형편이다. 옥희 아버지의 어릴 적 친구가 하숙생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사랑방에서 하숙하였지만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산다. 마음으로만 서로 통한다. 연정을 키워간다. 이렇게 마음을 빼앗겨 넘어질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딸 옥희를 생각하고는 결국은 재혼을 포기한다. 딸을 딸답게 잘 키워가기 위해서다.

옥희 어머니와 같은 어머니가 있으면 아무리 환경이 열악해도 자녀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날 수 있고 꿈을 키우며 열심히 공부하면서 청소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자녀를 포기하면 아버지가 대타로 나선다. 우리학교에 그런 학생이 한 명 있다. 큰 고비를 잘 넘기고 이번에 우수대학에 합격을 했다. 어머니가 곁에서 잘 뒷바라지를 했다면 이 학생은 상처 없이 더욱 반듯하게 잘 자라지 않았을까?

하숙생은 학교 선생님이시다. 그리고 옥희 아버지의 어릴 적 친구다. 하숙생 선생님의 됨됨이는 본받을 만하다. 옥희가 자기 방에 놀러오면 엄청 잘해준다.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도 보여주고 과자도 사준다. 선생님은 너무나 친절하다. 옥희와 옥희 어머니에 대한 연민의 정도 느꼈을 것이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리아버지의 역할이다. 선생님은 어린애의 아버지의 빈 자리가 너무 큼을 잘 안다. 그래서 아버지 이상으로 잘 대해주는 것이다. 이런 대리역할이 우리 선생님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같이 한 집에 살다보니 정이 들기 시작한다. 점심을 먹는 선생님에게 가니 선생님은 옥희에게 묻는다. 무슨 반찬을 제일 좋아하는지? 그 때 삶은 달걀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삶은 달걀을 하나 주면서 먹으라고 한다. 아저씨도 삶은 달걀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옥희에게서 전해들은 어머니는 달걀 장수 노파가 오면 달걀을 많이 사서 삶아준다. 감사의 표시이고 사랑의 표시다.

또 옥희는 어머니에게 유치원에서 가져온 꽃을 갖다 주면서 기쁘게 해 드리려고 하는데, 선생님께서 주는 거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매우 좋아하면서 그 꽃을 풍금 위에 꽃병으로 꽂아두고 오래되면 잎만 잘라서 찬송가 갈피에 끼워둔다. 이게 옥희 어머니의 감사표현이고 사랑 표현이다.

선생님(아저씨)은 옥희 어머니와 예배당에 갈 때에 함께 교회에 참석을 한다. 역시 보답의 표시이고 감사의 표시이며 사랑의 표시다. 옥희 어머니는 남편이 사 준 풍금을 타기 시작한다. 역시 선생님에 대한 애정 표시이며 감사표시다.

옥희 어머니는 아무리 생각해도 시대가 시대니만큼 재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은 딸 옥희와 평생을 살려는 마음을 굳히고 선생님(아저씨)에게 떠나라는 말을 한다. 물론 흐름상 짐작이다. 선생님은 하숙비와 편지까지 든 봉투를 딸 옥희를 통해 내밀었다.

슬픔에 잠긴다. 잠을 못 이룬다. 얼굴이 파래진다. 이미 마음을 궂힌 터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에 빨리 끊으려 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은 여전했다. 떠나기 전에 하얀 손수건과 집에 있는 달걀 6개를 삶아 함께 딸을 통해 선생님(아저씨)에게 전달한다.

그리고는 떠나는 날, 딸과 함께 뒷동산에 올라가 기차가 떠나 사라질 때까지 있다가 내려온다. 이제는 풍금도 치지 않는다. 책 속의 꽃도 끄집어내어 버린다. 달걀도 먹을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일체 사지 않는다. 모든 걸 다 내려놓았다. 딸이 어머니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어야 할 텐데 그리고 최선을 다해 건강하고 맑고 밝게 잘 자라 어머니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어야 할 텐데.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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