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다. 연말이 되면 마음 한 구석이 차갑다. 날씨도 차갑고 바람도 매서운데 마음까지 차가우니 더욱 얼어붙는다. 그래도 낙심하지 않고 훈풍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우리 곁에서 지금도 훈풍을 가져다준다. 바쁜 가운데서도 부모님의 곁은 지키면서 병간호를 하는 분들을 보면서, 감사하는 마음과 새 희망을 품으면서 찬 겨울을 견뎌낸다.
신경숙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읽어보면서 선생님은 의사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소설에는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장면이 나온다. 저녁 무렵에 한 시간 가량 의사가 있다가 갔다. 여러 가지 테스트를 했다. 산수문제, 즉 100에서 7을 빼면 몇이지요? 한참 하다 화가 나서 말을 않고 의사는 끈기를 가지고 다시 한다. 끈기 없으면 의사도 못한다. 뇌질환 환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자,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것 잘 기억하고 계세요. 비행기, 기차, 연필.... 5분 뒤에 다시 묻는다. 비.....행....기. 비........행기. .... 다른 것은 기억나지 않으세요? 댁은 어디죠? 역촌동. 아니었다. 의사는 나비를 그려 보이면서 그려보라고 한다. 한참 헤맨다. 여기가 어디죠? 병....원. 병원 이름은요? 해성으로원. 소리 나는 대로 적었다. 평소에도 아버지는 배움이 짧아 소리 나는 대로 적기도 했다. 창밖을 내다보며 의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러면 의사는 얼마나 힘들겠나? 우리 선생님들만 힘 드는 것이 아니다. 의사도 힘들다. 의사도 스트레스 받는다. 몸살을 한다. 병원에 입원하기도 한다. 머리가 희지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따라오지 않고 기대만큼 학력이 미치지 않고 말을 잘 듣지 않고 딴 생각하고 다른 행동을 해도 선생님들은 의사선생님과 같이 인내와 끈기를 갖고 환자를 대하듯이 학생들을 잘 가르친다. 정성을 다한다. 최선을 다한다. 열을 내지 않는다. 화를 내지 않는다. 반복한다. 참는다. 치료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주어진 시간까지 또 치료를 한다.
환자가 회복되는 것을 의사선생님이 기뻐하듯이 우리 선생님들도 학생들의 변화와 성장과 신장과 발전을 보면서 기뻐한다. 이게 선생님의 보람이다. 행복이다. 만족이다. 아버지는 전화가 없어 우체국까지 가야 전화를 할 수 있고 주인 안방에 가야 전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편지를 잘 이용한다. 자식에게 쌀을 보내놓고 편지를 쓴다. 잘 지내느냐, 여기는 다 무고허다. 모쪼로기 몸 건강허고 형지간에 우애 있지 지내야 한다. 쌀 80키로를 화물 편으로 보낸다. 차저다가 먹거라....1978년 4월 17일 아버지 씀.
편지를 받은 딸은 ‘아버지 씀.’ 이라는 글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는다. 단순한 글자로 보이지 않고 가슴속에 물이랑으로 퍼져든다. 이게 자식의 마음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느낀다. 아버지의 정을 느낀다. 아버지와 나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묶어준다. 아버지의 사랑, 딸의 따뜻한 정을 우리 선생님들이 가지면 학생들과의 관계는 더욱 좋아질 것 같고 오래 갈 것 같다.
이런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것도 중병이다. 뇌질환 관계의 병이다. 말도 제대로 못한다. 기억도 제대로 못한다. 직장을 가진 이가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병원을 찾아야만 한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도 불평하지 않는다. 열심히 아버지를 간호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면서 아버지를 지켜보며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병구완을 한다. 감동적인 딸이다. 우리 선생님들도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는 그런 선생님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우리 학교에도 부모님 때문에, 남편 때문에, 자녀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신다. 부모님의 사랑 느끼면서, 남편의 사랑 느끼면서 자녀의 정을 느끼면서 따뜻한 간호, 정성어린 보살핌을 지속적으로 하는 선생님이 제법 계신다. 그러면서 자기의 맡은 일을 묵묵히 잘 감당하는 선생님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존경의 마음이 샘솟듯 솟아오른다. 무엇을 바래서가 아니라,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식으로서,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면서 힘을 쏟는 것 보면 감동을 느끼고 찡한 느낌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