移木之信(이목지신)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남을 속이지 않거나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말이다. 이 말의 뜻을 잘 이해하기 위해 옛 이야기를 소개한다.
“진나라 효공 때 상앙이란 명재상이 있었다. 그는 위나라의 공족출신으로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한 부국강병책을 펴 천하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정치가다. 한번은 상앙이 법률을 제정해 놓고도 즉시 공포하지 않았다. 백성들이 믿어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앙은 한 가지 계책을 내어 남문에 길이 3장(사람 키의 3배)에 이르는 나무를 세워 놓고 이렇게 써 붙였다.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겨 놓는 사람에게는 십 금을 주리라’ 아무도 옮기려 하는 사람이 없어 오십 금을 주겠다고 써 붙였더니 이번에는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 상앙은 즉시 약속대로 오십 금을 줬다. 그리고 법령을 공포하자 백성들은 조정을 믿고 법을 잘 지켰다.” 여기서 유래된 말이 移木之信(이목지신)이다.
남을 속이지 않거나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것은 위정자와 백성과의 관계만은 아니다. 친구간의 관계도 그렇고 어느 누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특히 결혼을 앞두고 약혼을 한 사이면 더욱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망하고 가정도 망하고 관계 되는 이는 모두가 망하고 만다.
영국의 소설가요 시인인 토머스 하디의 ‘우울한 독일 경기병’을 읽어보면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이가 나온다. 험프리 굴드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결혼을 쇠와 돌같이 굳게 맹세해 맺은 약속을 가볍게 깨버리고 말았다. 결혼을 하고 싶어 했고 요청을 했던 사람이 퓔리스라는 여자가 아니고 굴드라는 남자였다. 그런데 약혼한 남자는 퓔리스에게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바스로 떠나 버리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약혼녀는 약혼남을 깊이 사랑한 것은 아니지만 존경하고 규모 있고 행동 바르고 해서 약혼도 했고 기다리고 있었다. 편지는 꼬박꼬박 왔지만 판에 박은 인사말 정도였다.
험프리 굴드는 약속에 대한 교육을 잘못 받았다. 약속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외모로 볼 때 규모 있고 행동 바른 사람이었지만 내면은 정반대였다. 약속을 잘하는 사람은 잊어버리기도 잘한다더니 잊어버린 걸까?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형식적인 편지지만 꾸준히 편지를 보내왔던 점으로 미뤄보아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약속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속을 금과 같이 귀중하게 여겼다면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혼은 인륜지대사인데 규모 있고 행동 바르게 해 존경할 만한 이가 모를 리가 없다. 나이도 서른이나 되었으니 분별력도 있고 판단력도 있을 것인데 정말 아쉽다. 학교 다닐 때 약속의 귀중함에 대한 교육을 시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약혼녀의 퓔리스는 약혼남과는 달랐다. 그래도 약속을 귀하게 여겼다. 반드시 약속대로 돌아와 결혼할 것으로 믿었다. 반드시 돌아와 약속을 지켰다면 소설을 읽는 이로 하여금 기쁨을 선사해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약혼남은 돌아오기는 했으나 결혼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이미 다른 아리따운 젊은 아가씨와 비밀히 결혼을 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왔다. 기본 양심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약혼녀가 바란 것은 약혼남이 끝까지 결혼에 대한 약속을 지켜줄 것을 바랐던 것이다.
약속을 저버리면 자신도 망하고 관계되는 사람도 실망하고 상심하고 만다. ‘누구나 약속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약속을 이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과 같이 약속을 이행하기 어렵다면 약속은 하지 않는 게 더 낫다. 약속, 신의를 지키는 교육을 새해에는 우리 학생들에게 꼭 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약속, 신의를 지키는 교육을 잘 시켜놓으면 여러 가지 연쇄적인 불행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 약혼녀의 퓔리스는 약혼남의 약혼 파기로 인해 온갖 불행을 다 겪는다. 이어지는 여러 불행은 약속을 어긴 험프리 굴드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