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를 즐겁게, 보람되게 보내기 위해서 소설을 읽었다. 현기영의 ‘마지막 테우리’였다. 이 소설을 읽어보면 목동의 초원의 자연과 방목생활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 선생님들은 ‘마지막 테우리’에 나오는 고순만 노인과 같은 점을 배우면 감동을 줄 수 있는,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우리란 제주도 사투리로 ‘목동, 목자’를 뜻하는 말이다. 고순만 노인이 주인공이다.
노인 목동은 한라산 분화구에서 열아홉 명의 목장 계꾼들의 소들을 키우고 있었다. 자기의 소는 한 마리도 없다. 그런데도 자기의 소를 키우는 것 이상으로 정성을 다해 소를 키웠고 감동을 주고 있었다.
이분께서는 소 이백 마리를 다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가 볼 때는 모두가 똑 같아 보인다. 그 놈이 그 놈 같다.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1년을 같이 있어도 구분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 목동은 잘 구분하였다. “그거야 학교 선생 제 아이들 얼굴 아는 것과 한가지지. 남의 소를 맡아 키우긴 하지만, 다 내 손에 달린 목숨들인데 몰라서야 되나. 모양새도 모색(毛色)도 조금씩 다르고 뿔 생긴 모양만 해도 가지가지여….”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위로 솟은 뿔, 뒤로 젖혀진 뿔, 앞으로 굽은 뿔, 양옆으로 곧게 뻗은 뿔, 하나는 위로 솟고 하나는 아래도 처진 것, 넘어져 뿔 하나 꺾어진 놈… 이러한 소를 모두 구분하는 노인 목동은 감동을 주는 목자임에 틀림없다.
우리 선생님들도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맡겨진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고 학생들의 특성을 하나하나 잘 파악해 두고 특성에 맞게 잘 지도하면 학부모님들은 안심 놓고 학생들을 학교에 맡길 수 있을 것이다.
목동에게는 어려움이 참 많다.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곳에 테우리막을 지어서 거기서 소들과 함께 생활한다. 외로움과 싸워야 하고 두려움과도 싸워야 한다. 추위와도 싸워야 하고 비바람과도 싸워야 한다. 생명을 걸고 도둑을 막아야 하고, 소를 잃어버리면 온갖 고통을 감내하면서 찾아다녀야만 한다. 이 노인 목동에게는 죽을 각오와 희생이 있었기에 200 마리의 소를 잘 지켜낼 수 있었다.
소를 잃으면 목동은 애를 먹는다. 소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목장 주변을 다 찾아다닌다. 포기할 수 없다. 생후 이 개월짜리 송아지를 도둑맞았다가 이년 후 한라산 너머의 어느 목장 소떼에 붙어 있는 걸 우연히 지나다가 찾아낸 적도 있었다. 평소에 송아지의 특징을 잘 기억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징을 가진 사람 찾기도 어려운데, 특징을 가진 송아지를 찾다니! 남다른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한 번은 도둑에게 끌려가는 송아지를 도중에서 되빼앗기도 했다. 두 사람의 도둑이 칼을 들고 소를 잡아, 고기로 가져가려고 하는데 노인 혼자서 어떻게 소를 찾을 수 있겠는가? 지혜를 발휘했다. 큰 소리로 ‘어이 태문이! 너도 들었지? 틀림없이 요 근처여. 새끼들, 여기 숨은 게 확실해. 자, 몽둥이를 단단히 잡으라구!’ 이 소리를 들은 도둑은 달아났다고 한다. 자기의 생명도 아끼지 않았다. 선생님들에게도 목동과 같은 지혜, 희생의 정신이 있으면 학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첫 눈 내리는 날, 없어진 소를 찾으러 온 산야를 헤매다가 낙심해서 돌아오면 소가 먼저 집에 와 있더라는 이야기, 안개 속에 사라진 소를 하루 종일 찾아다니다가 지쳐 주저앉아 있는데 안개가 걷혀 보니까 자기 옆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는 이야기, 소들 중에는 여름에 그늘을 좋아하여 한라산 숲으로 들어가 애먹이는 놈들이 있는데, 그러다가 바위틈에 발목 끼인 채 굶어죽는 수도 있다는 이야기, 목장에 벼락이 떨어져 바로 앞에서 소 두 마리 타죽고 자기는 손끝과 발바닥에만 화상 입어 오른손 검지 끝이 뭉뚱하게 모지라진 이야기…. 이야기마다 눈물과 웃음이 없으면 들을 수 없는 감동을 주는 이야기였다. 우리 선생님들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좋은 선생님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