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의 ‘태형’이 주는 교훈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나’와 영감(노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애국심을 배워야 하겠다는 점이다. 이들은 무슨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간 것이 아니고 단지 대한독립만세를 불러서 감옥에 간 사람들이다. 이들의 용기가 대단하다.
감옥에 가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유를 잃고 힘들게 살다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는 것을 알고 있었다. 5평 남짓한 감방에는 20명, 24명, 34명, 40명이 한 방에 갇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공판을 받으면 사형도 받을 수 있고 도형, 유형, 장형, 태형으로 목숨까지 잃게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았다. 독립을 위해서 고귀한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분들이었다. 이분들의 애국심이 빛난다.
또 한 가지 배워야 할 점은 영감(노인)의 희생정신이다. ‘774호!’ 영감을 부른다. 영감은 대답이 없다. 내가 옆구리를 찌르자 영감은 겨우 대답을 한다. 그러나 늙어서 그런지 행동이나 말이 굼뜬 영감은 기어이 채찍으로 맞는다.
나이 많은 영감이 ‘내 나이 이렇게 많은데 맞다가 죽을 거야’라는 걱정 때문에 다시 공소를 하려고 하자 함께 감방에 있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두 아들도 총살을 당했으니 어서 태형을 받으러 가 죽으라고 닦달을 한다. 영감은 자신보다 감방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다시 공소를 하지 않고 태형을 받아들인다.
한 명이 없다고 감방이 넓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들을 배려하는 마음 때문에 매를 맞고 있는 것이다. 태형 90 대면 젊은이도 살기가 힘든데 늙은이는 말할 것 있겠는가?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는 그 마음이 돋보인다.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신의 희생이 많은 사람들을 감동케 하고 변화시키며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극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는 자신의 이기심만 나타나게 되어 있지만 영감(노인)은 그들을 위해 희생을 선택함으로 감방에 있던, 돌같이 굳은 마음을 녹여준 것이었다. 발을 뻗고 잠을 잘 수 없고 감방의 열기로 늘 더위에 시달려야 하고 찌는 듯한 더위는 감방 안의 사람들 생각을 마비시켰다.
벽에 기대고 잠들기는 예사고 변기 위에서 자기도 한다. 자고 일어나면 수많은 다리들이 몸을 덮고 있다. 이런 날이 반복되었기에 그들은 한 명이라도 빠져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도덕윤리가 땅에 떨어졌다. 어른공경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것을 안 영감(노인)은 그들의 마음을 시원케 해주기 위한 선택이 공소를 다시 하지 않고 90대의 태형의 맞는 것이었다.
영감의 태형 선택이 나를 비롯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작은 깨달음이 오게 했다. 고개를 숙일 줄 알았고 부끄러운 짓을 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짐승보다 못한 선택을 하지 않아야 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
감방 속에서 그들의 생각은 보고 싶은 아내라든지 자식이라든지 이런 생각이 아니고 오직 그리운 것은 표주박이었다. 물이었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은 것이다. 가장 행복한 삶은 물과 같은 삶이다. 선생님이 가져야 할 자세는 물과 같은 자세라는 뜻이다. 물의 성질 중 하나가 물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많은 식물과 생물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선생님은 언제나 학생을 살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 물은 언제나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 겸손의 자세다. 내가 물처럼 낮은 자세를 취하면 학생들은 선생님을 엄청 좋아한다. 동료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학부모님도 마찬가지다. 물은 남에게 유익을 주지만 언제나 드러내지 아니하고 낮아지기만 한다. 감방에 있는 분들이 물을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이 있어야 더위를 이겨낼 수 있고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