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만병통치약?

2014.04.11 13:19:00

새벽에 일어나면 생각이 잘 떠오른다. 그 중의 하나가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였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공자께서 터득하신 말씀이다. 배우고 익히는 것이 기쁨이다. 교육이 만병통치약임을 가르쳐 주었다. 요즘은 겉으로는 멀쩡한데 정신병을 앓는 사람이 참 많다. 이들에게 치료약은 교육이다. 배우고 익힘이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기쁨이 없고 즐거움이 없다. 불안과 근심 걱정이 많다. 잠이 오지 않는다. 늘 비관적인 생각만 한다. 부정적인 생각이 자신을 지배한다. 이들에게 특효약은 배우고 익힘이다. 즉 학문이다.

그런데 왜 학문을 하지 않는가? 학문은 힘들기 때문이다. 학문은 역류하는 배가 같다. 배가 물이 흘러내리는 반대 방향으로 저어가려면 얼마나 힘이 드나? 땀을 흘리고 반복해서 노력해야 조금씩 진도가 나간다. 그러다가 조금만 멈추면 그만 후퇴한다. 배우고 다 잊어버리고 익힌 것 다 사라진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때때로’를 강조하셨다. 반복을 강조하셨다. 이렇게 배움이 힘드니 기쁘고 즐겁고 희열을 줌에도 불구하고 쉽게 다가가지 않는다.

선생님들이 건강을 유지하는 이유는 배우고 익히는 일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반복하기 때문에 어느 직업에 종사하는 이보다 건강하게 산다. 건강의 비결은 배움이다. 건강의 비결은 익힘이다. 건강의 비결은 교육이다. 건강의 비결은 반복이다. 건강의 비결은 어려움을 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있다.

학문은 등산하는 것과 같다. 요즘 봄철이라 등산하는 이들이 많다. 꽃도 보고 새순도 보고 싱그러움을 맛보기 위해 산을 오르고 내린다. 등산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목적지까지, 정상에까지 오르는 이는 잘 없다. 중도에 포기한다. 힘이 들기 때문이다. 쉬다가 올라가지, 하면서 포기하고, 밑에서 정상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하면서 포기한다.

학문을 이루는 것이 정말 어렵다. 하지만 끝까지 정상을 오른 사람은 쾌감을 누린다. 먼 곳을 바라다보는 망원경과 같은 눈을 가지게 되고 가까운 곳을 쳐다보는 현미경 같은 눈도 가지게 된다. 자기 마음을 내다보는 내면적인 눈도 가지게 된다. 시원한 바람을 만나게 되고 더러운 노폐물을 땀으로 내보내면서 기쁨을 누리게 된다. 산의 나무들이 품어내는 음이온을 마시면서 즐거움에 젖기도 한다. 이렇게 배움은 힘이 들지만 반드시 기쁨이 있다. 쾌감이 있다. 즐거움이 있다. 행복이 있다.

그래서 선생님은 배워야 하고 또 익혀야 한다. 그게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이다. 學然後에 知不足이요, 敎然後에 知困이라 (학연후에 지부족이요, 교연후에 지곤이라) 이 말은 가르치고 배우면서 함께 성장한다는 뜻이다. 배우고 나면 부족함을 알고 가르치고 나면 또 부족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반복해서 배우고 가르치고 한다. 즉 교학상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즐겨 쓰는 말 중의 하나가 교학상장이다. 배우고 가르치면서 함께 성장하면 꿩 먹고 알 먹고 식이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다. 내가 배움으로 실력이 늘어가니 좋고 학생들이 배운 것을 가르침으로 학생들의 실력이 늘어가니 좋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

늙어도 책을 가까이 하면 마음이 즐겁다. 그것 또한 60을 넘어서면 알 수 있다. 배워서 치매 방지되어 좋고 시간 낭비하지 않아서 좋고, 잡념을 물리칠 수 있으니 좋고, 망상을 물리칠 수 있으니 좋다. 책으로 배우기 싫으면 자연에게서 배워도 괜찮다. 자연은 모든 선생님 중의 선생님이다. 벚꽃을 보라. 요즘은 겸손을 가르친다. 그것도 싫으면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면 된다. 모든 교직원이 나의 스승이고 나의 지도자이다.

그 잘 나가던 벚꽃 녀석이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오늘 아침 읽은 글 중에 ‘인생의 세 가지 불행’이라는 글이 와 닿았다. 송나라 ‘정이’ 학자가 하신 말씀인데, 어린 시절 너무 빨리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오히려 불행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일찍 출세하면 교만해지기 때문이다. 벚꽃이 그렇다. 일찍 출세한 꽃이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꽃이다. 그런데 벌써 빛을 잃고 있다.

두 번째 불행은 부모를 너무 잘 만나는 것이라고 한다. 부모형제를 잘 만나는 것이 행복이기도 하지만 게으름을 생산하기 때문에 오히려 불행해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있는 말이다. 또 세 번째 불행은 뛰어난 재주와 문장력을 가진 것이 인생의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하였다. 재주가 출중하고 문장이 좋으면 그 재주와 능력을 믿고 안일함에 빠지고 노력을 게을리 하게 된다.

못 배우고, 병약하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것이 나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한 이도 있다. 일리가 있다. 처음보다 끝이 좋아야 하고, 처음보다 나중이 나아져야 한다. 잘 나가다 끝에 가서 망하면 부끄럽다. 처음보다 갈수록 후퇴하면 그것 또 창피하다. 배우고 또 배우는 일에, 익히고 또 익히는 일에 손을 놓으면 행복이 도망간다. 건강도 달아난다.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라.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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