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은 풍로와 같다. 옛날 공간이 빈 풍로는 바람을 일으키는 데 요긴하게 사용된 도구다. 풍로는 돌리면 돌릴수록 바람이 나온다. 그 바람으로 불을 피운다. 성인 같은 선생님이 속이 늘 빈 것처럼 보여도 선생님만큼 실력이 알찬 이는 드물다. 유익을 주는 이도 없다.
성인은 눈에 잘 뛰지 않는 자연과 같다. 산보다 계곡이 되고 싶어 한다. 성인은 늘 낮은 곳을 차지한다. 산 중에도 가장 낮은 계곡이 되고 싶어 한다.
선생님의 겸손도 성인의 겸손과 다를 바 없다. 어디 선생님이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가? 누가 선생님인지 아닌지 쉽게 아는가? 잘 모른다. 유명한 정치인들은 이름도 알고 얼굴을 알지만 선생님은 아무리 뛰어난 선생님이라 해도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른다. 그래도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인부지이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 어디 선생님이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느냐? 부끄럽게 여기느냐? 신경을 쓰느냐? 아무도 그렇지 않다. 선생님의 겸손함이 계곡만큼이나 돋보인다.
谷神不死(곡신불사)라, 是謂玄牝(시위현빈)이라. 곡신은 죽지 않으니 이것을 현빈(玄牝)이라고 한다. 곡신(谷神)은 아무것도 없는 계곡의 중앙을 말한다. 계곡의 중앙이 죽지 않는다는 말은 자신의 할 일을 다하고 있다는 뜻이다. 비만 오면 물을 계곡의 중앙으로 모아들인다. 그리고는 아래로 더 낮은 곳으로 내려 보낸다.
현빈(玄牝)이라는 말은 만물을 산출하는 신비한 힘이라는 뜻이다. 모성의 역할을 한다. 물이 없으면 만물이 소생할 수 없다. 물이 없으면 생명이 없다. 물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물이 없으면 죽음을 몰고 온다. 어머니의 역할은 어린 아기를 살리는 역할을 한다. 먹이고 입히고 재운다. 어린 생명이 유지되는 것은 어머니의 힘 때문이다.
선생님은 곡신(谷神)이고 현빈(玄牝)이다. 어머니의 모성애와 같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런 선생님이 존경스럽지 않으면 그건 이상한 것이다. 낮은 곳을 처하고 자기 할 일을 하고 생명을 살리고 학생들을 성장시키고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선생님! 이런 선생님이 계시기에 우리 학생들은 건강하게 잘 자란다.
성인은 대나무와 같다. 대나무는 희망의 주는 나무요, 꿈을 주는 나무다. 대나무의 바람 소리는 희망을 품고 왔다. 푸른 바람이 되었다. 꿈이 많은 바람이었다. 서로 스치면서 꿈을 나누기도 한다. 대나무 잎사귀들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음악소리는 어떤 악기의 소리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그만큼 아름다운 玉과 같은 소리임에 틀림없다. 꿈을 주는 소리는 아름답다. 꿈이 있는 소리는 희망차다. 꿈이 있는 소리는 용기가 있다. 꿈이 있는 소리는 위풍당당하다. 늘 푸른 잎이 주는 희망은 바로 우리들의 바람이다.
대나무는 유혹에 넘어지지 않는 나무다. 대쪽 같다는 말은 바로 대나무의 덕목을 말해준다. 대나무는 바람이 불면 부러질지언정 휘거나 꺾이지는 않는다. 정도를 걷고 조금도 어긋남이 없고 어떤 유혹에도 넘어지지 않는다.
대나무는 헌걸차다. 대나무 앞에 가면 인간은 한없이 작아 보이고 나약해 보인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만 간다. 매우 풍채가 좋고 의기가 당당한 듯하다. 이런 대나무를 보고 사람들은 배운다. 헌걸찬 모습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면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대나무는 악기다. 대나무는 아름다운 선율을 선보이는 피리와 같은 악기가 되어 사람들을 아름답게 만든다. 이 아름다움은 모든 사람을 유쾌케 하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준다. 또 대나무는 무기다. 대나무는 불의를 행하는 이들에게, 침략을 하는 이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무기가 되어 준다.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기쁨이 되어 주지만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슬픔이 되어준다. 또한 대나무는 영양제다. 어릴 적 죽순, 竹筍은 자신을 희생함으로 사람들에게 영양제가 되어준다. 유익을 준다. 생명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