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했다. 학생들은 방학을 해도 학교에 나와서 수업을 한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마음이 들떠 있고 좋아했다.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기말고사를 치러야 했고, 잠을 자지도 못했을 것이며, 엄한 기숙사 생활에서 며칠이라도 벗어날 수 있으니 해방이라는 생각도 들 것 같다.
방학식을 할 때 학생들은 지쳐 있다. 오래 서 있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각종 시상 때문에 많은 시간을 빼앗긴다. 빨리 마쳤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다. 교장의 훈화시간이 되면 또 죽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다. 훈화시간이 끝나면 또 학생부장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이것을 알고 가장 짧은 훈화를 했다. ‘일촌광음불가경 一寸光陰不可輕이라, 자투리의 시간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알았지요? 예, 이상.’ 이렇게 하고 나니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방학식 훈화는 짧을수록 좋음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했다.
성인은 仁한 자다. 사랑을 가진 자다. 나아가 仁을 실천하는 사람이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不仁한 사람에게 지지 않는다. <仁勝不仁, 인승불인> '仁이 不仁을 이김(勝)은 물이 불을 이김(勝)과 같다.'고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仁을 실천하는 사람은 한 잔의 물로써 수레 위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섶(땔나무)의 불을 끄는 것과 같거늘, 끄지 못하면 물이 불을 이기지 못한다고 말하니, 이는 또한 不仁을 편듦이 심한 者이다.'라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물이 불을 끄지 못하면 물이 불에 삼켜버리는 것이니 자신의 仁마저 잃어버리는 꼴이 되고 만다.
우리 선생님들은 仁을 실천하는 자다. 不仁한 학생들을 보면 그들을 仁한 자로 바꾼다. 仁을 실천하도록 한다. 不仁한 자의 편을 들지 않는다. 仁은 사랑이다. 仁은 도덕이다. 仁은 정직이다. 仁은 선이다. 仁한 사람을 만드는 이가 선생님이고 仁한 사람이 바로 우리 선생님이다.
仁 또한 충분히 여물게 하는 데에 있다. <仁亦在熟, 인역재숙> 성숙한 인재를 키우는 것이 교육목표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곡식이 여무는 것과 같이 仁이 여물도록, 즉, 성숙한 이가 되도록 가르치는 일에 힘쓰고 있다. 맹자 왈, "오곡五穀은 종자種子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나, 그것이 충분히 여물지 않는다면 비름과 피만도 못하다. 仁 또한 충분히 여물게 하는 데에 있을 따름이다"
聖人은 도를 따르는 자다. 道란 가야 할 길이다. 法道이다. 지켜야 할 규칙이다. 성인은 도를 버리지 않았다. 도를 버리면 가르칠 수 없다. 도를 버리면 배울 수도 없다. 가장 기본이 도를 실천하는 것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서 제자들을 가르칠 수 없다.<必志於彀 , 필지어구>란 말이 맹자의 <고자 상 제20장>에 나온다. ‘반드시 구彀에 지志하다’는 말이다. 구彀는 활시위를 당기는 정도 또는 한도, 화살을 맞히는 표준이란 뜻이고 지志 는 의향, 본심, 본의라는 뜻이다.
孟子께서 말씀하셨다. “예羿 (人名)는 남에게 활쏘기를 가르칠 때는 반드시 구彀에 지志하나니, 배우는 사람도 또한 반드시 구彀에 지志하여야 한다.” 남에게 활쏘기를 가르칠 때에도 정도에 맞게 가르친다. 모든 일도 마찬가지다. 법도가 있다. 규정이 있고 규칙이 있다. 이것을 잘 따라야 가르치는 선생님의 자격이 있고 배우는 학생의 자격이 있다. 법도를 어기면 선생님은 선생님의 권위를 상실하게 되고 제자들은 배울 수가 없다. 성인은 이것을 알기에 언제나 성인의 법도를 버리지 않았다. 늘 성인의 법도를 따랐다. 그래서 가르칠 때에 힘이 있었고 배우는 제자들도 잘 배울 수가 있었다.
성인 같은 선생님은 언제나 가장 작은 질서까지도 어기지 않으려고 애쓴다. 이렇게 함은 성인의 닮기 위함이다. 법을 잘 지키며 모범을 보이면서 살아간다. 이런 선생님은 성인 같은 선생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