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날씨가 포근한 편이다. 이런 좋은 날씨에 건강관리를 위해 산을 찾는 것도 좋고, 산책을 하는 것도 좋고 운동장을 찾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제 운동장을 찾았다. 얼마 되지 않지만 운동장을 열심히 돌고 있는 분들이 보였다. 그 중의 한 분에게 눈이 갔다. 손발이 마비가 되어 겨우 걷고 있음을 보았다. 이런 분들을 볼 때 마음이 편치 않다.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런 불편한 분과 같은 이가 되지 않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일흔 되시는 교장선생님의 일생을 자주 듣는다. 교직에 대한 이야기, 가정 이야기, 그 외의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고 배우게 된다. 이 교장선생님은 둘째 아들이었는데 시골의 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서울에서의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다시 시험을 쳐서 인천 강화도로 갔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정말 감동이 되었다. 대단하신 분으로 느끼게 되었다. 어디 장남도 아닌데 시골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서울에서의 교직생활을 마감한다는 게 쉬운 일인가? 모든 사람들이 반대를 해도 그렇게 해서 시골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효의 교육에 대한 좋은 사례가 아닌가 싶다.
한번은 일흔 되시는 교장선생님께서 서울에 볼 일이 있어 가셨는데 지하철에서 노인 좌석에서 한 노인의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내가 며느리에게 쫓겨났다고 했다. 돈도 벌지 못하고 치매가 오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도움이 되지 못하고 며느리의 짐이 되어 나를 쫓아내었다’고 하셨다.
이 이야기를 듣고 현대판 고려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늙고 쇠약한 부모를 산에다 버렸다고 하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들도 있는데 아들은 무엇을 했을까? 함께 동의를 했을까? 살아남기 위해 묵인을 했을까? 아내에게 이기는 남편이 없다고 하니 자기도 살아남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눈을 감아줬을까? 아무튼 이 상처 입은 노인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하소연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고 하니 이 노인 한 분만의 이야기일까?
우리들은 학생들에게 효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효는 옛날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하는 젊은 학생들이 많다. 내가 부모님에게 피해만 안 주어도 그것이 효라고 생각하고 부모님이 잘 살든 못 살든 그것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공부를 시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남은 여생은 부모님이 알아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병이 들어도 모르고 몸이 나약해져도 모른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도 모르고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는 것에 대한 것에도 관심이 없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지 않으려면 효의 교육이 다시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부모없는 자식이 어디 있으며, 부모를 모르는 자식이 장차 이 나라의 무슨 지도자가 될 것이며 나라의 건강한 사고를 가진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결혼을 해서도 부모님보다 자식에 더 관심이 많고 부모님이 오랜만에 자식에게 가면 푸대접하고 부모님에 대한 관심은 없고 자기 자식에 대한 관심만 있다. 어머니가 내가 어렸을 때는 어떠했다고 하면 긍정보다 부정이 앞선다. 그건 어머니 세대이라고 하면서 면박을 준다.
학생들에게 효 교육을 철저히 시키지 않으면 부모님도 힘들고 자식도 힘들어진다. 부모님을 부모로 여기지 않고 부모를 자기 자식보다 더 우습게 본다. 아무리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부모님을 잘 공경하는 가운데 자녀교육을 시키도록 해야 제대로 된 효 교육이 된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다. 예절을 모르는 나라가 되면 안 된다. 부모님에 대한 예절, 웃 어른에 대한 예절, 선생님에 대한 예절, 대통령을 위시한 지도자에 대한 예절 등을 잘 가르쳐야 자기도 나중에 지도자가 되면 대접을 받는다. 자기가 대접을 하지 않고 남에게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면 말이 되겠나?
다른 나라가 대한민국은 예절을 잘 지키는 세계 으뜸가는 나라라고 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외국인에게 보여줘야 한다. 보여주기 위한 교육이 꼭 좋은 교육은 아니지만 우리의 전통적인 예의 교육, 효의 교육은 너무나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기에 꾸준히 시켜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