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애들의 참고 기다리는 능력을 실험한 바가 있다. 네 살짜리 애들에게 사탕을 앞에 놓아두고 이것을 30분 뒤에 먹으라고 하였다. 그런데 애들이 3분을 넘기지 못하고 사탕을 먹기 시작했다. 나중에 30%의 애들만 30분을 참았다. 그리고 10년 뒤에 이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 알아보았더니 30분 동안 참고 기다렸던 애들이 모든 면에서 두 배로 뛰어났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접하고서 아하 교육은 역시 인내구나. 선생님이든 학생이든 참고 기다려 줄 줄 알아야 하는구나. 그래야 자신도 성장할 수 있고 애들도 더 성장할 수 있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37년 6개월의 교직생활 중 후회하는 것 중의 하나가 참지 못한 것이다. 어려운 상황을 참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람들이 죽을 때가 되면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한다. 그 중 하나는 참을 것을 참지 못한 것, 그 다음은 잘 해 줄 걸, 또 하나는 좀 더 열심히 할 걸,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 중 처음의 교직생활 중 참지 못한 것을 후회할 것 같다. 지금도 교직생활에서 참아야 할 걸 참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데 인생을 마감할 때가 되면 오죽 하겠나?
시골에 가면 지금도 할머니, 어머니들은 가마솥에서 밥을 한다. 가마솥에 한 밥은 맛이 있다. 가마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면 고프던 배가 더 고파온다. 그러면 밥을 빨리 달라고 조른다. 밥을 빨리 달라고 하면 ‘좀 기다려라 뜸 덜 들었다. 뜸 들 때까지 기다려라’ 한다. 어떤 때는 뜸이 덜 들어도 밥을 달라 해서 먹으면 정말 맛이 없다. 참고 기다림이 미덕이다.
교육에도 마찬가지다. 인내가 꼭 필요하다. 선생님과의 관계에서도 인내가 필요하다. 학생과의 관계에서도 인내가 필요하다. 학부모님과의 관계에서도 인내가 필요하다. 주민들과의 관계에서도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하지 못하고 폭발하면 결국 자신이 손해다. 마음이 엄청 상한다. 몸도 상한다. 교육할 맛도 떨어진다. 선생님들도 보기 싫다. 교직원들도 보기 싫다. 학생들도 보기 싫다. 학부모님들도 보기 싫다. 주민들도 보기 싫다. 모두가 보기 싫다. 만사가 싫어진다. 인내가 참 중요하다.
전화상으로도 참아야 할 때가 있다. 선생님은 전화를 잘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전화를 받으면 열을 받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궂은 전화로 인해 화를 내게 되고 싸우게 된다. 작은 시비가 점점 큰 시비로 바뀐다. 그 때부터는 수업도 안 되고 교재연구도 안 되고 모든 것이 마비가 된다. 전화를 받을 때도 마음을 다 내려놓고 받아야 참을 수 있다.
예의도 없이 전화를 하는 이도 있다. 이럴 때면 더욱 화가 난다. 나를 무시하는 듯한 전화를 받으면 마음이 상한다. 무슨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하나, 온갖 생각이 다 난다. 그래도 참는 것이 자신에게 유익이 된다. 그래야 승리자가 될 수 있다.
忍은 마음속에 칼을 둔 것과 같다. 마음속에 칼을 품고 있어도 칼을 칼집에 꽂아두면 참는 것이 되지만 칼을 칼집에서 뽑아 휘두르면 인내하지 못한 것이 된다. 칼을 휘두르고 나면 자신도 상처를 입고 상대방도 상처를 입는다. 피를 흘린다. 나아가 생명까지 위협을 받는다. 인내는 파괴력이 엄청나다. 인내하지 못하면 자신도 망치고 가정도 망치고 내가 소속한 학교도 망친다. 인내하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젊었을 때, 선물을 받은 액자에는 이런 글이 써 있었다.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요,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라’ ‘한 번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고, 백 번 참으면 집안에 큰 평화가 있다’는 말이다. 이 글에서 핵심어는 勤과 認이다. 백 번이라도 참아야 가정에도 학교에도 아주 큰 평화가 있다. 교육은 인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