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운위원장 생트집 부리며 퇴진요구 시위
교총이 변호사·소송비 지원하며 함께 싸워
대법에 이어 손해배상 소송까지 승소
[한국교육신문 정은수 기자] “살면서 경험할 분노와 슬픔을 다 겪고 자살하고 싶은 심정까지 느꼈어요. 교육청, 시의원, 구의원, 언론… 모두 제 편이 아니었습니다. 교총이 함께해주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소송에서 모두 이겼지만, 그보다는 그 학부모가 지금이라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꾸기를 바랄 뿐입니다.”
교육자로서 마지막 임기를 시골학교 아이들을 위해 보내려고 소규모학교인 대전 S초 교장 공모에 지원한 A교장은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학부모가 교장의 징계를 요구하며 교육청, 국민권익위, 국민신문고, 의회에 민원을 제기하고 피켓 시위, 현수막 설치, 언론 제보, 기자회견까지 하면서 학교를 곤경에 빠트렸기 때문이다.
수차례 학교 안에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고도 해 봤지만, 학교에 대한 피해는 커졌다. 그는 결국 S초 학생들의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서 문제 제기를 주도하는 학부모 4명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2015년 8월에 시작한 소송은 2년을 넘겨 2017년 11월 23일에서야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 판결이 났고, 올해 4월 10일에 손해배상 민사소송에서도 이겼다. 사건이 시작됐을 때부터 꼬박 3년이 걸렸다.
“제 사건 결과만 바라보고 있는 대전지역 공모학교 여교장들과 교권 피해 교사들을 위해서라도 꼭 이겨야 했다”면서 “이제 오늘을 마지막으로 이 사건은 잊고 싶다”고 소회를 밝히는 그의 표정에서 그간의 마음고생을 읽을 수 있었다.
2014년 3월 A교장은 S초 공모교장을 부임할 때만 해도 시골의 순박한 아이들을 만나길 기대하고 있었다. 첫해는 별일 없이 학교 발전을 위해 힘쓰며 보람된 시간을 보냈다. 오랜 기간 지역 운영위원을 하던 S초 동문인 학교운영위원장이 학교 운영을 적극적으로 잘 도왔다.
문제는 이듬해 학부모 B씨가 나이 많은 학교운영위원장이 젊은 학부모들과 소통이 안 된다는 명분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발생했다. A교장이 부임한 전년도부터 학교에서 학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4월이 되자 B씨가 이 사업에 문제를 제기하며 불참을 선언한 것이었다.
B씨는 봄을 맞아 연 체육대회에도 오지 않았다. 학교운영위원장 자리도 마련했기에 와달라고 부탁해 오게 했으나, B씨는 잠시 얼굴을 비치고는 교장과 인사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A교장은 이때까지만 해도 B씨가 학교운영위원장이니 불만이 있으면 와서 상의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B씨가 실제로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듣게 된 것은 5월 말이었다. B씨는 한 번의 상의 없이 A교장의 퇴직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하면서 학부모뿐 아니라 지역주민, 통반장협의회 등에 서명을 받고 있었다. 명분은 교장이 운영위원장인 자신을 배제하고 학부모회장과 공모해 마음대로 학교를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A교장은 B씨와 학교 안에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B씨는 A교장을 상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운영위원장의 권한을 이용해 긴급 안건이라며 교장 퇴출을 안건으로 학교운영위원회 임시회 개최를 시도했다. 다행히 B씨에게 동조하는 운영위원이 적어 임시회는 열리지 못했다.
B씨는 이어 동조하는 학부모와 함께 ‘S초 학부모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7월 6일 A교장의 징계를 요구하는 민원을 시교육청에 제출했다. 민원의 내용은 그간 A교장이 학부모나 학생에게 한 대화를 두고 막말로 인권침해를 했다고 주장하거나, 학교운영에서 논의만 한 사안을 교장이 강행했다는 식으로 해석한 것들이었다. 알고 보니 B씨는 교육청 민원뿐 아니라 SNS상의 학부모 단체 채팅방과 온라인 카페 등에도 이런 내용을 지속해서 공유하고 있었다.
A교장은 신분에 위협을 당하게 되자 대전교총에 도움을 요청했다. 대전교총에서는 하헌선 당시 회장과 홍상기 총장이 직접 현장을 찾아가 사안을 파악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했다. 이후 민원은 끊이지 않았고 B씨의 민원이나 B씨가 공유하는 내용을 대전교총에 전하고, 대응을 논의하는 것이 A교장의 일과가 됐다.
A교장은 급식 지도를 하던 중 배가 아픈 학생을 보건실로 보낸 후, 학부모를 불러 귀가토록 한 일을 두고 급식을 먹지 못하게 했다든지, 연주를 위해 악기 이동을 학생들이 한 일을 두고 강압적 인권침해라는 등의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B씨의 민원이 이어지자 대전교총은 8월 4일 보도자료를 내고 “무분별한 민원제기로 학교 구성원이 피해를 본다”면서 “교권침해에 대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B씨가 구성해 민원제기와 함께 피켓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학부모대책위원회’가 S초 학부모 전체의 의견을 수렴한 대표성을 갖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 와중에도 A교장은 교육과정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보고를 수시로 하고, 교사들은 방학 중에 사안 조사를 받아야 했다. A교장은 “당시에는 아무 죄도 없이 조사 받아야 하는 교사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너무 괴로웠다”고 했다.
지속적인 민원에도 불구하고 A교장 징계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B씨 일행은 교육지원청, 대전시교육청, 교육부 정문 앞에서 A교장의 징계를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면서 언론에 일방적인 주장의 제보를 했다.
피켓과 기사에는 A교장이 교육장인 남편과 공모해 학교를 폐교하고 노인요양병원을 지으려 한다는 주장도 담겼다. 이는 5월 18일 A교장이 대전동부교육지원청 관내 5지구 자율장학협의회에서 S초 등 소규모학교 학생 수 감소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나온 얘기로 A교장이 소규모 학교 통폐합에 대해 우려하던 맥락은 생략한 채 A교장의 의도를 곡해한 것이었다.
급기야 B씨는 교육감이 인근 공원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난입해 교장의 징계를 요구하기도 했다. A교장은 교육감과 면담을 했고, 교육감은 A교장의 고통을 덜기 위해 전보를 가라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A교장은 “인간적으로 도와주려는 마음은 고맙지만 내가 떠나면 앞으로 누가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며 “교육의 본질이 흐려지고 학부모 한 명에 의해 학교가 끌려다니게 되면 후임자가 일을 할 수 없다”면서 거절했다.
8월 27일 B씨 등이 지역 내 시민단체를 모아 기자회견을 개최하기로 하자, 대전교총과 학교의 정상적인 운영을 바라는 학부모들이 현장을 찾아가 B씨가 주도하는 학부모대책위 자료를 반박하는 유인물을 배포했다. B씨의 횡포에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이 어려워지자 학부모들이 단합해 A교장을 돕기로 한 것이었다.
하 전 회장은 그 자리에서 “일부 학부모의 민원 제기로 모든 구성원이 피해를 보고 있으며 당사자인 학교장은 정신과치료까지 받고 있다”며 “민원제기에 이은 교육청 앞 피켓·플래카드 시위에 이어 사회단체가 참여하는 기자회견까지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강경발언까지 했다. A교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하 전 회장이 사실상 목숨을 건 분위기”였다며 “그 많은 시민단체 사람들과 언론 앞에서 나를 대변해준 것이 지금도 감사하다”고 했다.
B씨로 인해 학교운영이 너무 어렵고, 수차례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이뤄지지 않자, A교장은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대전교총을 통해 변호사를 소개받아 명예훼손으로 B씨 등 학부모 4명을 고소했다.
명예훼손으로 고소되자, B씨를 제외한 3명의 학부모는 “B씨의 말만 듣고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서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A교장은 3명의 학부모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
그러나 A교장이 8번이나 그간 했던 발언을 철회하고 용서를 구하면 소를 취하하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B씨는 강경했다. 2017년 1월에 마지막으로 B씨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했으나, B씨는 학부모회를 없애달라는 황당한 요구만 했다.
결국 재판은 진행됐다. 검사가 벌금 50만 원을 구형했지만, 대전지방법원은 1월 26일 학교운영위원장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의혹을 제기할 수 있어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취지로 무죄 판결을 했다.
검사는 즉시 항고했고, 고등법원은 B씨의 행동이 인신공격의 목적을 띄고 있었다면서 9월 14일에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11월 23일에는 대법원이 B씨의 상고를 기각하며 고등법원 판결을 확정했다. 이후 A교장은 올해 4월 10일 손해배상 200만 원을 청구한 민사소송에서도 승소를 확정했다.
A교장은 그간의 과정을 돌아보며 “이번 사건을 겪는 과정에서 학부모의 교권 침해로 인한 피해를 겪고 있는 교원들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면서 “그분들을 생각해서라도 물러설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교총의 도움으로 승리하면서 이번 사건이 계기가 되어 대전시교육청에서도 교육활동 전담 변호사 채용, 교원배상책임보험 가입, 교권 SOS 등 교권 사건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했고, 피해 교원들을 위한 심리상담도 지원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A교장은 소송 이후 B씨의 방해에 굴하지 않고 2017년 2월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학교를 지켰다. 그는 “공모학교 교장들이 여기서 물러서면 앞으로 공모교장은 자율경영을 못 하고 학부모에 의해 끌려다니게 된다며 그것만은 막아달라고 부탁했다”면서 끝까지 학교를 지킨 이유를 설명하고는 교권 침해를 당한 동료 교원들을 위한 당부를 남겼다.
“스승의 날을 맞아 교사들이 매일매일 무사히 넘어가기만을 바라며 지낸다는 기사를 보고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저보다 더 심한 일을 겪고도 아무 데도 말을 못하고 끙끙 앓다가 명퇴하신 분도 있어요. 저도 이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으면 사표를 내고 집에서 앉아 평생 정신과를 다녔겠죠. 하지만 한두 명의 학부모에 의해 평생 지켜온 스승으로서의 사명감과 자존감을 꺾어서야 되겠습니까. 교권 침해가 있을 때는 교총에 문을 두드리세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 뒤에 있다는 사실을 선생님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교총에 가입하셔서 꼭 도움을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