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슈] 다시금 고맙고 행복한 5월

2019.05.03 10:00:00

저는 최근에 교육학의 기반인 인간발달학과 심리학 공부에 푹 빠져 있습니다. 매우 재미있는 행복에 대한 연구 결과 몇 가지를 선생님들께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거북해진 5월을 맞이한 선생님들께서 이 글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즐거우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육체적 웰빙, 정신적 힐링

심리학에 ABC가 있더군요. 심리학은 1900년대 초에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행동(Behavior, 신체)에 대한 연구를 필두로 철학에서 과학 학문으로 이전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컴퓨터 개발과 더불어 인지(Cognition, 생각)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였습니다. 주관적이어서 과학에서 배제되었던 감정(Affect, 정서)은 겨우 2000년대 초에 뇌과학의 도움을 받아 심리학에 포함되었습니다. 드디어 행복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본격화된 것입니다.

 

우리는 육체적 웰빙을 거처 정신적 힐링을 추구하지만, 행복은 여전히 요원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과학적 이유가 있는 게 매우 신기합니다. 우리 뇌는 신경계를 통해서 초당 1천 100만개의 체감 정보를 접수하지만 겨우 50개 의식할 수 있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종류의 체감 정보를 의식하게 될까요? 몸이 정상적일 때는 구태여 의식할 필요가 전혀 없지만 배고프거나, 무덥거나, 공격을 당할 때는 인지해야 합니다. 불편함과 위기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감각은 부정성에 우선적으로 반응하도록 세팅되어 있습니다.

 

아쉽게도 생각마저 부정에 치우쳐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 생각을 2만 5000번 내지 7만 5000번 한답니다. 흔한 표현 그대로 하루 평균 ‘오만가지 생각’을 하는 셈이니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요! 문제는 그 많은 생각 중에 70~80%가 부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은 곧바로 잊어도 되지만 부정적 생각은 해소될 때까지 붙잡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공부를 잘하면 일단 마음이 놓이며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지만 공부를 못하면 아이의 미래가 걱정이 되고 성적이 올라갈 때까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온종일 온갖 미해결 과제에 골몰하는 게지요.

 

결론적으로 인간은 불쌍하게도 부정적 감정에 매몰되게끔 편향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삶 자체가 괴로움(苦)이라 하는지도 모릅니다. 웰빙도 힐링도 다 찰나일 뿐 행복감을 지속시키기 어림없습니다.

 

행복의 비결, ABCD 모델

최근 연구에 의하면 행복이란 부정적 감정이 전무한 상태가 아니라고 합니다. 정말로 다행입니다. 만약 부정적 감정이 없어야 한다면 심한 스트레스로 가득 찬 세상에 살면서 행복하기란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행복의 비결은 부정적 감정보다 긍정적 감정을 더 많이 만나서 최소 1대3 비율을 유지하는 것이랍니다. 강력한 긍정적 감정 한방이 아니라 소소한 긍정적 감정을 자주 경험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마 그래서 요즘 ‘소확행’이 대세인 모양입니다. 향기로운 커피 한잔, 친구와 떡볶이 한 접시, 따뜻한 무릎담요 한 장이면 족합니다. 그러나 소확행은 빠르게 시시해지기에 우리는 점차 더 큰 자극을 찾게 됩니다. 그럼 진정한 행복은 어떻게 얻는 것일까요?

 

저는 ABC가 아니라 ABCD 모델을 제안합니다. 우리 정서(A)에 신체(B)와 인지(C) 영역 외에 영성(Divinity) 영역도 개입한다는 새로운 모델입니다. 영성은 가치관과 존재성에 대한 것입니다. 신체 영역에서 체감이, 생각(想) 영역에서 상감(想感)이 유발되듯이 영성 영역에서는 영감이 유발됩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을 세 가지 방법으로 확증합니다. 체험은 신체 영역의 활동으로 직접 보고 듣고 만져서 확신을 가지는 암묵지입니다. 경험(經驗)은 책(경서)을 공부함으로써 확증을 얻는 형식지입니다. 영험(靈驗)은 글과 말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초인지이며, 이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에 해당합니다.

 

영감과 영험은 나보다 더 큰 존재를 만날 때에 느낄 수 있습니다. 성인군자를 비롯하여 대자연을 접할 때 감동을 합니다. 감동이 바로 내적 동기유발이며 자율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하늘에 계시든, 친부모님이든, 또는 부모님 같은 선생님이든 그들에게 관리와 지시를 받는가, 아니면 관심과 지지를 받는가에 따라 아이의 기본 정서 상태가 달라집니다.

 

기본 정서를 결정하는 관심과 지지

관리와 지시는 무시하는 미움이고, 관심과 지지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미움을 받으면 피해망상에 패배주의적 사고방식이 생겨날 것이고 사랑을 받으면 행복하고 성공하는 삶의 방식을 터득할 것입니다. 미움에서 악함이 나오고 사랑에서 선함이 나옵니다. 저는 선함의 핵심은 감사함이라고 믿습니다. 감사함은 가치의 발견입니다. 처음에는 어느 무엇 때문에 감사하다가, 존재 자체가 감사하게 느껴지고, 그 상태가 지속되면 어느덧 내 마음에 감사함이 가득 찹니다. 예를 들어 따듯한 밥상을 차려주신 부모님이 감사합니다. 헤아려보니 밥상을 2만 번이나 차려주셨습니다. 또한 보살펴주시고 등록금도 주셨습니다. 이 하나하나에 대해 감사함을 곱씹다보면 어느새 부모님이라는 존재 자체가 감사하게 다가옵니다. 깨닫고 보니 동생도 고맙고, 친구도 고맙고, 이웃도 고맙고, 선생님도 고맙습니다. 비가 내려도 고맙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도 고맙습니다. 이렇게 감사함을 두루 느낄 때 어느새 내 마음이 감사함으로 충만해집니다.

 

감사함을 느낄 것인가 말 것인가는 오로지 내 마음이며, 어느 정도 느낄 것인가 역시 내 마음껏 입니다. 끝없이 채울 수 있는 긍정적 감정이 감사함이어서 행복비율 1:3을 쉬이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선한 상태가 되면 동물같이 생존 본능에 머물거나 부정적 미해결 과제에 매몰되지 않고 창의적이며 희망찬 비전에 몰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럴 때에 배려하고 베풀고 기여하는 행위로 절로 이어지게 됩니다.

 

저는 교직 생활을 할 수 있는 게 감사합니다. 방학이 있어서 감사하고, 연금이 있어서 감사하고, 아직 날 필요로 하는 학생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교사가 세상 드물게 우수한 인재집단이라는 사실이 감사하고, 학부모의 교육열이 감사하고, 교육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이 감사합니다.

 

학생들도 감사함으로 충만해지는 방법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이 아무리 지식을 많이 쌓고 분석을 잘하고 계산을 잘해봤자 인공지능 발끝도 따라갈 수 없는 세상입니다. 어차피 학생들이 필요한 지식은 그들 스스로 맘껏 접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이제 우리는 지식 전달에서 해방되고 지혜 전달에 치중하면 됩니다. 그래서 다시금 우리가 학생들에게 큰 존재가 되어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 스승이 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그날이 바로 이번 5월이면 참 좋겠습니다. 그럴 때 5월이 우리 모두에게 감사하고 행복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조벽 숙명여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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