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문명의 불가사의 그리고 아름다움 페루 마추픽추 그리고 쿠스코

2023.01.05 10:30:00

페루, 아니 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 하면 마추픽추를 떠올린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곳이자 맨몸으로 오르기도 힘든 산꼭대기에 세워진 공중도시. 여행자들은 이 불가사의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직접 보고서도 믿을 수 없는 풍경
인천공항에서 미국 댈러스를 거쳐 페루 리마에 도착.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쿠스코로 날아가 미니밴과 기차를 이용해 마침내 마추픽추에 닿았다.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입구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객들로 가득하다. 입구에서 표를 제시하고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기를 10분. 드디어 마추픽추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몸에 전율이 일고 ‘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무수한 화강암 석축들과 건축물, 3,000개의 계단으로 이뤄졌다는 공중도시 앞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피로는 눈 녹듯 사라진다.


마추픽추는 페루 남부 안데스산맥에 자리한 유적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목록에도 등재되어 있다. 안데스산맥의 해발 2,430m에 세워진 잉카의 고대도시로, 15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남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했던 잉카족들이 살았다. 잉카제국 멸망 후 400년 동안 숨어 있다가 1911년 미국 고고학자이자 예일대학교 교수였던 하이럼 빙엄이 발견하면서 그 존재를 드러냈다. 


당시 산꼭대기에 숨겨진 도시가 있다는 말을 주민에게 들은 빙엄은 11살짜리 꼬마 가이드를 따라 올라갔다가 이 신비로운 고대도시를 발견하게 된다. 빙엄이 발견했을 때 도시는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우리가 마주하는 지금의 마추픽추는 오랜 세월 동안 복원한 것이다. 물론 당시의 모습 그대로다. 더 놀라운 사실은 현재 발굴된 것이 전체의 30%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나머지 70%는 여전히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1년 발견 당시 두세 가족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마추픽추에 서면 정면에 뾰족한 봉우리가 보인다. 잉카어로 ‘젊은 봉우리’를 뜻하는 와이나픽추(2,800m)다. 뒤쪽에 서 있는 봉우리가 마추픽추(3,000m)로 ‘나이 든 봉우리’라는 뜻이다. 도시는 와이나픽추와 마추픽추 사이에 계단식으로 펼쳐져 있다. 도시는 태양의 신전과 콘도르의 신전을 중심으로 주변에 주거지가 배치된 구조다. 총면적이 5㎢에 달하며, 유적 주위의 높이는 5m, 너비 1.8m의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옥수수 등을 재배하던 밭은 산의 몸통을 깎아 계단식으로 만들었는데, 산 아래까지 까마득하게 펼쳐져 있다. 


건축물들의 벽은 제각각 다른 모양의 돌들을 정교하게 맞췄다. 레고 블록을 쌓은 것처럼 보인다. ‘ㄱ’자 모양의 돌도 있고 ‘ㄷ’자 형태로 깎은 것도 있다. 들여다볼수록 그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마추픽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물은 태양의 신전이다. 반원형 건물인데 신전 돌벽에는 두 개의 창문이 나 있다. 정확하게 남쪽과 북쪽을 향해 나 있는데, 동지와 하지 때면 햇빛이 창을 통해 들어와 신전의 제단을 비춘다고 한다. 태양의 신전 위엔 거대한 돌을 길쭉하게 깎아 만든 석조물이 보이는데, ‘태양을 잇는 기둥’이란 뜻의 인티파타나다. 해시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추픽추를 안내하는 가이드는 ‘~였을 것이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기록으로 남은 역사가 없는 까닭에 마추픽추에 대한 모든 설명은 ‘추정’일 뿐이다. 가이드마다 마추픽추에 대한 설명이 조금씩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왜 이런 험한 곳에 거대한 도시를 만들었을까.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장 인정받고 있는 설은 잉카제국의 초대 황제인 파차쿠티가 세운 여름 별장이라는 것. 그는 우리나라 광개토대왕에 해당하는 왕으로 전쟁을 통해 잉카왕국의 영토를 확장한 인물이다. 13세기 초에 시작한 잉카문명은 스페인의 침공으로 멸망한 1533년까지 안데스를 중심으로 융성한 문명을 펼쳤는데, 그 전성기를 이끈 황제가 바로 파차쿠티다. 북쪽 해안의 치무와 서쪽의 창카, 정글의 강자 안티 등을 거푸 정복한 파차쿠티는 마침내 1438년 잉카제국을 건설하는데, 수많은 노예를 전리품으로 거둔 그는 이들을 데려다 마추픽추를 짓기 시작했다. 노예들은 1450년부터 1540년까지, 90년 동안 도시를 만들었다.

 
마추픽추는 잉카인의 신기에 가까운 돌 다루는 솜씨와 잉카에 정복돼 노예가 된 부족들의 피와 땀이 더해진 결과다. 잉카는 뛰어난 문명을 자랑했지만, 철·화약·문자·바퀴가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바퀴도 없이 이 엄청난 크기의 돌덩이, 그것도 20t이 넘는 돌들을 해발 2,400m의 산비탈까지 어떻게 수십㎞ 밖에서 옮겨왔을까. 산에 있던 바위를 깼다고도 하고, 통나무를 밑에 깔고 밀어 아래서부터 가져왔다는 설명도 있지만 이 역시 모두 추측일 뿐이다. 잉카인과 노예들은 파차쿠티가 죽은 뒤에도 파차쿠티가 환생할 것이라고 믿고 마추픽추 조성 노역에 시달렸는데, 그들은 침략한 스페인 군대가 쿠스코에 있던 파차쿠티의 미라를 불태우자 마침내 마추픽추를 떠났다고 한다.  

 

잉카와 스페인이 어우러진 도시
마추픽추에 닿기까지 여러 도시를 거치는데, 출발점이 되는 도시가 쿠스코다.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1535년 리마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잉카제국의 수도로 군림했던 곳이다. 원주민들이 쓰는 케추아어로 ‘세계의 배꼽(중심)’이란 뜻이다.


당시 잉카제국은 페루를 비롯해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칠레 북부까지를 차지했던 대제국이었다. 쿠스코 인구만 100만 명이었다. 현재 인구가 15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그 규모와 영화를 짐작할 수 있다. 쿠스코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4,000㎞에 달하는 도로까지 나 있었다. 이 길 중 일부가 지금의 ‘잉카 트레일’로 조성돼 전 세계 도보 여행자들을 불러들인다.


쿠스코가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정복당한 후 도시는 잉카문명에 스페인풍이 더해져 새롭게 재탄생한다. 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도시는 그만의 독특한 풍경으로 채색되어 여행자들을 매료시킨다. 넓게 베란다를 내고 스페인 특유의 주황색 지붕을 얹은 원색의 이층집 사이를 전통 복장을 입은 원주민들이 걸어 다니는 풍경은 쿠스코 아니면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풍경이다. 


쿠스코에서 살아가는 잉카의 후예들은 아직 전통 방식의 삶을 고수하고 있다. 여자들은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리고 그 위에 몬테로 또는 멕시코풍의 솜브레로를 쓴다. 어깨엔 숄의 일종인 이크야를 두르고 통이 넓은 치마인 포예라를 입는다. 신발은 둥글넓적한 우수타를 신는다.  


도시 곳곳에 자리한 성당·교회·수도원 등도 이색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시대에 만들어진 건물들을 파괴해 그 위에 그들의 건물을 지었다. 대표적인 건축물이 산토도밍고 성당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코리칸차(태양의 신전)를 약탈한 뒤 그 위에 성당을 지었다. 이 때문에 성당 안에 신전 건물 일부가 남아있다. 1650년과 1950년 쿠스코에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산토도밍고 성당이 붕괴됐는데, 그때 코리칸차가 그 존재를 드러냈다. 무너진 스페인식 건물 아래 잉카의 거대한 돌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마추픽추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잉카인들의 돌 다루는 기술은 신기에 가깝다. 돌들을 면도날로 잘라내듯 정교하게 다듬어 각을 맞추고 하나의 거대한 건축물을 조각조각 이어 붙인다. 이 신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는 곳이 ‘12각돌(La Piedra de Los Doce Anquios)’이다. 쿠스코 광장 뒤편 골목에 자리한 ‘12각돌’은 고대 석조기술의 절정을 보여준다. 크기도 모양도 일정치 않은 돌들이 주변의 돌과 빈틈없이 맞아떨어지며 하나의 벽을 이룬 광경은 그저 감탄스럽기만 하다. 1950년 발생한 쿠스코 대지진에도 이 벽은 약간의 뒤틀림조차 없었다고 한다. 반면 스페인 침략 후 지어진 건물 대부분은 무너져 내렸다.


쿠스코 뒤편 산자락에 자리한 요새 겸 신전인 삭사이와만(3,700m)의 거석들도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1536년 잉카의 부흥세력과 스페인군이 최후의 전투를 벌인 곳으로 유명하다. 잉카인들은 이곳에 최대 120t에 달하는 돌을 옮긴 뒤 높이 7m, 길이 500m에 달하는 성벽을 세웠다. 게다가 지진에 견디게 하기 위해 성벽을 지그재그로 쌓았다니 그 기술에 찬탄만 나온다. 이곳에서는 쿠스코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안데스의 거친 산들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고 그 산비탈을 따라 들어선 쿠스코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최갑수 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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