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래 교육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education)라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다. 교육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법원에 의탁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상황을 의미한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사법 권력이 확대되는 현상을 지칭할 수도 있다. 한편 교육의 법화(juridification of education)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사법 작용에 교육 문제 해결을 맡기는 일 외에 교육에 관한 법령이 증가하는 현상, 즉 과거에는 교사의 전문적 판단과 재량에 따라 해오던 활동을 법령에 의거하여 수행하는 일, 즉 법률이 규율하는 영역이 확장되는 현상도 포함할 때, 교육의 법화라고 한다. 교육의 법화는 교육의 사법화를 포함하는 더 큰 개념이다.
Rosén과 Arneback, 그리고 Bergh(2021)는 교육의 법화 개념을 다섯 가지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본다. 교육에 관한 각종 법 규범을 제정하고 헌법을 제정하는 일을 구성적(헌법적) 법화라고 하고, 법률이 규율하는 사항을 차별화하거나 기존에 법 규율 밖에 있던 사항을 법 규율 안으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법률이 수평적·수직적으로 팽창하고 차별화하는 양식의 법화가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교육의 사법화, 즉 사법부에 갈등 해결을 맡기는 경우가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사법 권력이 확대되는 현상도 법화에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교육과정에 관계된 사람들을 법적 질서라는 시각에서 이해하려는 경향, 즉 법적 프레이밍(framing)이 널리 퍼지는 현상도 법화의 한 가지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법화(法化)’는 독일어 ‘Verrechtlichung’의 번역어인데, 이 개념은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계급투쟁과 협상을 「단체협상법」이나 「노동법」이 대체하는 현상, 즉 노사 대립과 협상을 통한 임금 결정 등 문제해결이 법률에 따른 결정으로 변화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지칭한 것이었다. 여기서 ‘비판적’이라는 말은 「노동법」이 피고용자들의 이익을 옹호하기는 하지만, 노동조합의 전투적 행위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제한하여 사회적 갈등을 탈정치화하는 경향을 부정적으로 보았던 역사적 경위와 관련된다(Habermas, 1988).
법화는 유럽에서 절대주의 국가를 극복하고 사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장하는 법률과 공법을 토대로 부르주아 국가가 탄생하던 때부터 시작했다고 보지만, 근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법화는 20세기 유럽에서 탄생한 사회민주적 헌법 국가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복지국가가 급진전하고, 법률이 조절 매체(steering mdeium)로서 상당한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이 시기에 노동조합 결성과 임금 교섭은 물론 각종 사회 안전 문제가 법률의 규율 영역 안으로 들어온다(Habermas, 1988).
법화는 헌법 원칙을 사회 여러 부문에서 집행하는 일을 의미하고, 이 점을 법화의 긍정적 효과로 평가할 수 있다. 교육권이 헌법상 보장되어 있다고 해도, 의무교육제도가 법률적으로 보장될 때 교육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었다. 아동 권리와 아동 복지 역시 이를 법률이 보장할 때, 단순한 원리 원칙을 넘어 권리의 물질화를 실현할 수 있었다. 교육 영역에서도 이런 사실은 잘 드러난다.
과거 학교는 일종의 치외법권 지역과도 같았고, 특별권력관계론이 지배하는 학교에서 아동 권리는 자주 침해되곤 했다. 그러나 체벌을 금지하고, 아동의 권리를 명시한 법률을 시행하면서 학교에서도 아동 권리를 보장할 수 있었다. 또 여러 가지 의사결정 과정을 법률로 규정하면서 의사결정의 민주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여러 당사자 간의 신뢰를 높이는 데에도 법화의 기여는 명백했다(Magnussen and Banasiak, 2013).
그런데 법화는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 효과를 발생시킨다. 법화는 형식법을 물질화하는 과정인데, 이것은 과거 자기 규제가 인정되던 영역에 수많은 법적 통제와 개입이 이루어지는 변화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법이 사회 국가의 인도자 역할을 하지만, 정치 체제의 목적으로 도구화된다. 법이 사회국가의 정책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법 규범의 일반성은 약화하는 대신, 특수한 목적 지향성이 명확해지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결과 중심 사고가 강화된다. 법화는 개입주의적 사회국가에서 새로운 형태의 법, 즉 규제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의미한다(Teubner and Bremen, 1987).
사회국가에서 규제법은 다양한 목적을 실현하고자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 영역을 해체할 뿐만 아니라 규제법 자체를 해체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것을 규제의 트릴레마(trilemma of regulation)라고 한다(Teubner and Bremen, 1987). 법과 사회의 관계에서 상호 무시, 사회를 통한 법 해체, 그리고 법을 통한 사회 해체가 그것이다. 상호 무시는 사회와 정치, 그리고 법이 서로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상호 관련이 없어져 버리는 사태를 의미한다. 정책이 너무 자주 바뀌어서 법률이 이에 대응할 수 없게 되고, 결과적으로 법과 사회가 관련을 형성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회를 통한 법 해체는 여러 가지 사회적 요구에 법률이 문제해결 수단으로 동원되는 과정에서 법 체계성이나 보편화 가능성을 잃어버리는 경우다. 마지막으로 법을 통한 사회 해체는 규제적 법이 사회의 하위 체계에 개입하게 되면서, 본래 자율적으로 자기를 조직화하고 재생산해 왔던 규제 대상이 파괴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하버마스(Habermas, 1987)는 이런 현상을 생활세계의 식민지화(colonization of life world)라고 부른다.
우리는 법화의 양면성을 경험하고 있다. 아동과 보호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하기 시작하면서 분명 이들의 권리가 신장되고, 과거의 부조리한 현실을 상당히 개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법률은 자제력을 잃고 교수·학습과정으로까지 침투해 들어온다. 교수·학습과정이 법률의 규율 영역에 들어간다는 것은 교육의 관료화 심화를, 그리고 장기적으로 교육의 사법화를 초래한다.
또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이 많아질수록, 집합적 조직이 정치를 행할 공간은 축소된다. 학부모 개개인의 권리를 보장할수록 학부모회의 활동 공간이 왜소화될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교육에 관한 교사회와 학부모회 같은 조직체 사이의 공적 토론은 약화되거나 탈정치화한다(Magnussen and Banasiak, 2013).
복지 영역에서 극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지만, 「사회복지법」에서의 개인화, 즉 수혜 자격을 설정하고, 그 범주에 속하는 사람에게 보조금을 주는 법률은 사익을 추구하여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법적 주체에게 수혜 자격을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또 법의 조건으로서의 일반성은 관료들의 편의적 집행에 맞추어지고, 이 과정에서 폭력적 추상화(violent abstraction)가 일어난다. 법화의 중요한 부정적 결과 중 하나가 관료화의 심화다(Habermas, 1988).
아울러 법화의 결과, 새로운 유형의 법적 인간이 탄생한다(Rosén, Arneback and Bergh, 2021).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과 신념으로 희생하면서도 법적 의무만을 수행하고자 하는 교사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법률이 금지하지 않은 것이면 어떤 일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교사와 학부모를 만날 수도 있다. 법률에 규정된 것만 하겠다는, 그밖에 다른 어떤 일도 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도 나타난다.
오늘날 법화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에 따라 진전하고 있다(김용, 2017). 아동 권리 운동가들과 학부모 운동가들은 아동과 학부모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입법 운동을 펼쳐왔다. 근래에는 보호자들의 부당한 민원에 시달려온 교사들의 생활지도마저도 법의 규율에 두기를 원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법을 많이 만들고, 자주 바꿀수록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언론이 이런 풍조를 부추긴다. 이런 흐름이 결합한 결과 수많은 법률이 만들어지고, 과거에는 학교 내에서 자율적으로 수행해 온 일이 법의 규율 영역에 들어간다.
그런데 그 결과 전례 없는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어떤 요구나 거침없이 할 수 있는 것을 자신의 권리로 여기는 보호자들, 방어적 교육활동에 함몰되어 있는 교사들, 어떤 문제든 법률을 만능 해결책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관료와 정치인들, 교육의 사법화를 새로운 시장으로 개척하는 법률가들, 이들이 빚어내는 새로운 환경에서 교육이 신음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