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제 폐지…표준점수, 백분위 점수 병기해야"

2007.12.13 14:57:34

본지논설위원 그룹인터뷰 '수능등급제, 어떻게 해야 하나'
어느 나라도 성취도 평가에 사용 안해
대학 무시한 코드정책, 혼란 벌써 예견
사교육만 증가…대입 자율화로 풀어야

등급제 수능 첫해, 정시모집을 앞둔 수험생들의 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1점 차로 등급이 떨어진 수험생, 한 등급에 10만명이 분포한 상황에서 진학지도를 해야 하는 교사, 내신에 이어 변별력을 잃은 수능을 손에 쥐고 학생을 선발해야 하는 대학 모두 막막하다. 이에 본지는 등급제 수능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논설위원 그룹인터뷰를 13일 가졌다.

-수능 등급제 논란이 뜨겁습니다. 논란의 핵심과 원인을 짚어주시죠.

윤정일=우선 학생 입장에서 보면 1, 2점차로 등급이 달라져 2만등 혹은 10만등을 오르락내리락 하고, 동일한 등급 내에서도 10점~20점차가 나며, 원점수의 총점은 높은데도 등급이 낮은 현상이 나타나서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자신의 실력을 공정하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믿게 되는 거죠. 교사도 한 등급에 10만명 정도가 분포되는 경우 앞에서 적절한 진학지도를 할 수 없습니다. 종전에는 점수를 보고, 합격 가능성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어렵습니다. 또 대학 입장에서도 내신이 등급제인데다 수능마저 등급제가 돼 변별력이 없어지면서 논술, 심층면접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방법은 객관성과 신뢰성을 보장하기 힘듭니다.

송기창=등급제 도입 취지와는 달리 0.1점 차이로 탈락하는 경우가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수험생의 불만은 계속될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선발고사에서는 등급제가 부적절합니다. 등급제는 자격고사에 적당한 평가방식입니다. 수능시험은 선발을 목적으로 시행하는 시험이며, 따라서 수능시험의 핵심은 변별력에 있습니다. 결국 등급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이러한 등급제 논란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성태제=수능 9등급 점수는 세계 2차 대전 중 미 공군에서 사병들을 배치할 때 능력이 유사한 집단으로 묶기 위해 상대적 서열에 의하여 4%, 7%, 12%, 17%, 20%, 17%, 12%, 7%, 4%로 구분한 점수입니다. 이 스테나인 점수는 개인의 장래나 신상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사용한 점수 제도로 어느 나라에서도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평가하는데 사용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 점수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점수 분포가 좌우 대칭인 정상분포여야 하는데 우리는 과목마다 선택하는 학생들이 다양해서 이런 분포를 만들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등급 간에 점수 폭도 일정하지 않아서 등급 간 경계선에 있는 학생들에게 매우 불리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예견됐던 문제입니다.

김재춘=교육부는 수능 등급제라는 입시제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과도한 점수경쟁 및 석차경쟁을 완화하고 학교 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을 것으로 봤습니다. 그러나 대학이 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교육부는 각 대학이 교육부의 ‘정책’에 대한 ‘대책’을 만들 수 있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교육부가 어떤 정책이든 일단 만들면 대학이 이를 그냥 받아줄 것이라 생각한 교육부의 잘못이 큽니다. 이번 수능 등급제 논란의 일차적 책임은 대학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입시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교육부에 있습니다.

표시열=수험생들의 혼란은 결국 정책당국과 대학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정책당국은 수능점수에 의존하지 말고 다양한 방법의 선발․평가방식을 강조하고 있지만 대학들은 우수 인재를 선발하는데 수능점수를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수능 등급제와 내신 등급제로 변별력이 낮아지면서 대학은 ‘논술’을 강조하게 됐고, 결국 수험생들만 수능, 내신, 논술이라는 3중고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학생선발에 대해 정책당국과 주요 대학들이 실질적으로 합의하지 못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등급제 혼란을 부채질한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겠습니까.”

-폐지 여론이 높은 가운데 그대로 시행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김재춘=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면 곧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잡는 것이 현명합니다. 특정 정치 성향의 교육계 인사들과 여권의 고위 공직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된 수능 등급제는 사회적 합의 과정도 거치지 못했습니다. 수능 등급제를 즉각 폐지하고, 이전처럼 표준점수와 백분위 점수를 병기하는 방식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급한 불을 먼저 끈 다음에 고교교육과 대학입시를 연계시켜 동시에 개선하는 방안을 찾기 위한 국민대토론회를 개최,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할 것입니다.

송기창=등급제를 그대로 시행한다면 불이익을 받는 수험생은 매년 계속 생길 것입니다. 정책의 신뢰성 차원에서 등급제를 완전히 폐지하기는 어렵겠지만 점수제를 부분 도입해 개선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과목별 등급제를 유지하면서 표준점수나 원점수를 병기하는 방안, 과목별 등급제는 유지하면서 총점 원점수를 공개하는 방안, 과목별 등급제를 표준점수제나 원점수제로 바꾸면서 총점 등급제를 도입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합니다.

성태제=특히 수리 ‘가’의 경우 선택과목이 미분과 적분, 확률과 통계, 이산수학으로 동일한 문항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점수를 가지고 9등급 점수를 산정한다는 것이 교육측정학적으로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사용하고 있는 9등급 점수는 재검토 하고 종전의 표준점수로 환산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윤정일=수능등급제를 즉각 폐지하고 표준점수와 원점수를 표기해야 한다. 수능등급제가 실효를 거두려면 입시전형에서 수능 등급이 점수로 환산되지 않고 지원 자격을 부여하는 등급이 되던지 혹은 단계별 입시 전형방식으로 전환해 1단계는 내신 등급만으로 선발하고, 2단계는 수능 등급만으로 선발하며, 3단계는 대학별 논술과 면접으로 최종 선발하는 제도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 때 내신 등급과 수능 등급은 지원 자격기준이라고 할 수 있고, 단계별 선발기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표시열=수능등급제의 보완방법으로 2005~2007학년도처럼 표준점수와 백분위 점수를 병기해주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점수와 등급을 병기했을 때, 대학이 점수위주로 선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떤 제도건 장․단점이 있고, 제도 도입초기에는 다소의 혼란이 있을 겁니다. 등급제의 문제점을 점검, 보완해야겠지만 금년에 당장 하기보다는 내년에 반영하는 것이 순리라고 봅니다.

-내신 비중 확대와 사교육 경감이라는 수능등급제의 취지가 달성됐다고 보십니까.

성태제=각 대학의 등급 간 점수 반영 폭이 다른 상황에서 수험생들은 1등급을 받기 위해 대 수능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없고, 특히 상대 비교에 의한 평가이므로 이에 대한 사교육이 줄어든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고교내신은 9등급으로 늘어나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그 준비에 사교육비가 증가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정 고교의 특정 교과의 내신을 준비하는데 사교육비가 고1과 고2에서 더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서도 있습니다.

송기창=내신등급제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내신은 기본적으로 대학입학시험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고교 교육과정을 이수했다는 자료이기 때문에 변별력보다 기준학력 달성여부가 중요합니다. 내신비중은 수능등급제 시행으로 확대되는 것이 아니며 내신의 신뢰성이 확보되면 자연적으로 확대되는 것입니다. 또한 수능등급제와 내신등급제의 도입이 사교육경감을 가져왔다고 볼 근거는 없다고 봅니다. 점수에 대한 불확실성은 수험생에게 불안감을 조장해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윤정일=그렇습니다. 내신비중을 확대하려면 고교 간 차이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제도를 택해야지 수능등급제를 한다고 높아지지 않습니다. 대학 입장에선 내신등급도, 수능등급도 믿을 수 없는 실정입니다. 실제로 입학사정을 해보면 현 입시제도는 학생 변별력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학이 논술에 집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으며, 학생들이 논술학원으로 몰려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수능등급제는 학생들로 하여금 학원에 가서 입시준비를 하도록 부추기고 있습니다.

김재춘=저 역시 도입 취지가 실현되지 못했다고 봅니다. 수능 등급제의 도입으로 사교육비가 줄기보다는 사교육이 내신과외, 논술과외 등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돼 더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학교교육 정상화도 기대와 달리 학생들은 여전히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감옥에 갇혀 지내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내신을 이전보다 중요하게 여기지만 대학의 실질반영률은 미미합니다. 수능 등급제가 적용되는 시점에서도 내신보다 수능이 당락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아 도입 취지가 달성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표시열=제 생각에는 지금 당초 목표를 달성했느냐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몇 년간 시행한 다음에 평가할 문제라는 거죠. 이 문제의 핵심요소는 대학들이 정부의 정책에 얼마나 호응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변별력이 약한 내신 반영을 회피하는 마당에 이제는 수능까지 변별력이 약해져 ‘논술’로 변별력을 찾고자 하는 대학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수능등급제는 당초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등급제 논란을 비롯, 해마다 되풀이되는 대입논쟁을 장기적으로 풀어낼 해법은.

김재춘=고교 교육과 대학 입시가 잘 연계되도록 고교 교육과정과 입시제도를 동시에 개편해야 합니다. 특히 고교 2, 3학년 과정에서 공부하는 내용의 60~70% 이상이 대학입시와 연계되도록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는 2, 3학년에서 공부하는 시간의 약 30%만 대학입시와 연계되기 때문에 교육이 부실해지고 계획과 운영간의 괴리가 생기는 겁니다.

윤정일=대입논쟁을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인 방안은 대입자율화와 고교에서 입시준비를 철저히 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일반계 고교는 성격상 종국학교가 아니라 대학에 가기 위한 준비학교입니다. 학생이나 학부모는 대입에 초점을 두는데 학교가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니까 학원을 찾는 것입니다. 우수 대학 진학을 놓고 고교 간 경쟁이 있어야 사교육을 경감시킬 수 있습니다. 대학이 설립이념이나 교육목표에 부합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자율권에 속한다고 봅니다. 헌법에서도 대학의 자율권을 보장하고 있는데, 그 자율권의 첫째가 학생선발권이고, 둘째가 교육과정 운영권이며, 셋째가 등록금 책정권인 것입니다.

성태제=대입제도는 종합적으로 구안돼야지 하나만을 수정하면 다른 곳에서 문제를 발생합니다. 단견으로 혹은 어떤 특정 계층이나 집단만을 위한 입시제도를 추진한다면 교육전반에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니까 다양한 입시제도가 실시돼야 합니다. 국가 정책일 경우 국립대학은 이를 수용하고 사립대학이나 특수 목적 대학은 그에 부합하는 전형제도를 만들어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대입전형제도는 국가와 사회에 큰 재앙을 주지 않는 한 대학 자율에 맡기고, 책무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입니다.
조성철 chosc1@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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